윤반웅(尹攀熊, 1910년 7월 1일 ~ 1990년 7월 22일)은 대한민국장로교 목회자이자 반(反)독재 운동가이다.

생애 편집

함경남도 신창군유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김재준의 영향으로 장준하와 함께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전도사를 거쳐 장로교 목사가 되었다.

함경북도 웅기군에서 목회를 하다가 한국 전쟁 때 월남하였다. 초기에는 여러 지역을 돌면서 피난민을 상대로 목회를 하였으며, 서울에 교회를 두 곳 세워 정착했다. 이후 현재의 동녘교회인 신흥교회에 재직하면서 유신체제에 대한 항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1974년민주회복국민선언1976년명동구국선언에 모두 참여했고, 1975년에는 정치범 석방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가 구속되기도 하였다. 명동구국선언 때는 서명을 한 상태에서 박정희와 그 일당을 제거해 달라는 기도 적발로 먼저 체포되어, 본 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했다.[1] 윤반웅은 명동구국선언 구속자 11명 가운데 최고령이었다.

다음은 윤반웅이 명동구국선언과 관련하여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을 때 법정에서 한 발언 중 일부이다. 발언 가운데 "박정희 씨"라는 표현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다.

내가 박정희 씨를 몰아내 달라고 기도를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런 학정도 이런 통치자도 원치 않습니다. 또 대통령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제5공화국에서도 집권 신군부 세력에 대한 반대 운동을 계속했다. 다음은 1982년의 주일예배 중 기도의 일부이다.

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서 정치하는 사람들을 회개시켜 주옵소서. 속임수를 버리고 국민을 우롱하는 행동도 다 버리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게 해 주시고, 특별히 전두환 그 사람을 회개시켜 주시고, 회개하지 않으면 그 사람을 오늘이라도 하나님의 권능으로 몰아내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래야 이 나라가 바로 되고 이 국민이 살 것입니다. (중략) 아버지 하나님, 또한 광주 피해 가족들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습니까? 그 가족들을 위로해 주시고 그들의 피의 소리를 들으셔서 이 나라를 바로 잡아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1990년 7월 22일 서울특별시 동대문구의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2]

참고자료 편집

  • 조항철 (2002년 9·10월). “윤반웅 일화십선”. 《씨알의 소리》 (제168호). 

각주 편집

  1. 정병진 (2003년 10월 30일). “[민주화 발자취] <24> 3·1 민주구국선언(명동 선언)”. 한국일보. 2008년 8월 14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2.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72400289113007&ed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07-24&officeId=00028&pageNo=13&printNo=678&publishType=0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