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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편집

인천 강화군의 빈농 가정에서 태어나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채 어렵게 성장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릴 때부터 생계를 위해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태평양 전쟁 종전 후인 미군정 시기에 삼팔선 이북의 정치를 동경하여 좌익 운동에 입문했고 한국 전쟁 중 월북했다. 조선로동당 간부로서 건설 부문에서 일하며 함경남도 흥남시의 흥남비료공장 건설 등에 참여하였다.

결혼하여 정착해 살던 중 1950년대 후반에 공작원으로 소환되어 남파되었으며 별다른 활동은 하지 못하고 체포되어 복역하였다. 수감 기간 중 전향을 권유받았으나 그러지 않고 약 40년 동안 수감 생활을 했다. 비전향 장기수 가운데서도 수감 기간이 긴 초장기수에 속한다.[1]

1998년에 70세 이상 고령자로 분류되어 대전교도소에서 풀려났다. 그러나 석방 후에도 보안관찰법에 의거한 감시를 받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남겨두고 온 가족 이야기를 한 것이 문제가 되어 조사를 받기도 했다.[2]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에 의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되어 가족과 다시 만났고, 다른 장기수들과 함께 조국통일상을 받았다. 이듬해인 2001년에 송환된 장기수 가운데 이종환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죽어 애국렬사릉에 묻혔다. 뇌경색으로 죽기 직전인 2001년 6월에 〈운명의 태양을 받드옵니다〉라는 글을 발표하여 김정일에 대한 지지를 밝힌 바 있다.[3]

각주편집

  1. 김당 (1995년 8월 10일). “분단국의 비극 장기 양심수 - 김선명씨 등 장기 복역자 전국에 74명…“이번 8·15 사면 때는 석방돼야””. 《시사저널》 (제302호). 
  2. 박용현 (1999년 3월 4일). “더 이상 ‘사육’하지 말라 - 출소 뒤에도 감시·통제·협박하는 보안감찰제도는 없어져야 한다”. 《한겨레21》 (제247호). 
  3. “운명의 태양을 받드옵니다 - 비전향장기수 윤용기 글”. 조선중앙통신. 2001년 7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