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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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편집1925년에 강원도 고성군 외금강에서 태어났다. 1943년에 이화여자전문학교(현재의 이화여자대학교)에 입학하였고, 학교측의 강요로 정신대 자원서를 쓴 직후 아버지의 권유로 자퇴를 하고 가족과 함께 금강산으로 피신하였다가, 해방 후에 재입학하여 졸업한 후 미국 유학을 다녀왔다.[3][2]
1953년에 이화여자대학교 강사가 되었고 1958년에 이화여자대학교 영문학과 교수가 되었다. 1980년에 일본군 '위안부' 조사를 시작하였다. 1988년에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주최 세미나에서 정신대 답사 보고를 하였다. 이후 한국교회여성연합회에 정신대연구위원회 설치하였다. 1990년에 한겨레신문에 정신대 취재기를 게재하였다. 1990년 11월 16일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결성하였고 그 공동 대표가 되었다. 2006년에 베트남을 방문하여 베트남 전쟁시 한국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해 조사하였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지도위원으로서 활동하였다.[4][5][2] 그러나 1994년 일본 무라야마 총리의 위안부에 보상 성격의 아시아여성기금 위로금을 수령하는가에 대한 문제로 당시 위안부 피해 생존자 46명 중 33명과 크게 불화가 있었다.[6]
상훈
편집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挺對協, 유엔인권위 참석 보고대회. 연합뉴스. 1996년 4월 23일.
- ↑ 가 나 다 이은경. “할머니들 다 돌아가셔도 내가 끝까지 할거야” Archived 2013년 11월 3일 - 웨이백 머신. 여성신문. 2013년 10월 22일.
- ↑ 박길자. "할머니들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어떻게 부인해?". 노컷뉴스. 2007년 10월 8일.
- ↑ 지명훈. 제2회 유관순賞 윤정옥씨…정신대 국제이슈화 헌신. 동아일보. 2003년 2월 28일.
- ↑ 안인용. “베트남전 성범죄를 사죄하자”. 한겨레21. 2006년 5월 9일.
- ↑ “윤미향, 위안부 할머니 이용 논란...이미 2004년 위안부 할머니들은 정대협(정의연 전신)을 분노에 찬 눈으로 바라봤다”. 2020년 5월 10일. 2020년 5월 10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