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주 (조선귀족)
이병주(李丙周, 1913년 6월 20일 ~ ?)는 일제강점기의 조선귀족이자 대한민국 사람, 한국계 일본인으로, 본관은 우봉, 본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옥인동이다. 후작 이완용의 손자이며, 남작 이항구의 차남이다.
이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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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용 가족 사진. 앞줄 왼쪽의 사람이 이병주이다. | |
조선귀족 남작 | |
전임 | 이항구 |
신상정보 | |
출생일 | 1913년 6월 20일 |
출생지 | 일제 강점기 조선 경성부 |
사망일 | ? |
국적 | 일본 |
부모 | 이항구(부), 김진구(모) |
1945년 3월 6일 아버지 이항구의 사망으로 남작작위를 습작했으나 곧 광복되었다. 1949년 반민특위에 제소됐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대구 갑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이후의 행적은 미상이다. 1962년 일본 국적을 취득하고 1983년 4월 27일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했다.
생애
편집아버지는 이항구이고 어머니는 김문규의 딸 안동김씨 김진구이다. 이완용의 손자이다. 형 이병길은 백부 이승구의 양자로 입양되었으므로 그가 아버지 이항구의 계승자가 되었다.
일본에 유학, 일본 도쿄 가쿠슈인 고등과를 졸업했으며, 1935년 4월 당시에는 일본 정부로부터 귀족 사자(嗣子)로서 종5위에 서위되어 있었다. 1939년 10월 5일에 설립된 합자회사인 부영기업사(富永企業社) 대표를 역임했으며, 1945년 6월 1일 자신의 아버지였던 이항구가 받은 남작 작위를 승계받았다.
광복 이후인 1949년 7월 26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송치되기도 했으며, 이후의 행적은 미상이다.
1950년 4월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대구시 을구 출마가 예상되었으며[1], 5월의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대구시 갑구에 무소속 후보자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2]
1962년 9월 21일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3] 1983년 4월 27일 대한민국 국적 상실로 인해 호적에서 제적되었다는 기록만 있을 뿐 그 이외의 행적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3] 일본 국적 취득 이후의 행적은 알려진 것이 없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가족 관계
편집흥선대원군 (興宣大院君) (운현궁 가계도) | 이호준 (李鎬俊) | 조병익 (趙秉翼) | |||||||||||||||||||||||||||||||||||||||||||||||||||||
이씨(李氏) | 이윤용 (李允用) | 이완용 (李完用) 이호석(李鎬奭)의 차남으로 출생 이호준의 아들로 입적 | 조씨(趙氏) | 조민희 (趙民熙) | |||||||||||||||||||||||||||||||||||||||||||||||||||
이명구 (李明九) | 이승구 (李升九) | 임걸귀 | 이항구 (李恒九) | 김진구 (金鎭九) | 조중수 (趙重壽) | ||||||||||||||||||||||||||||||||||||||||||||||||||
이병태 (李丙台) | 이병길 (李丙吉) 이승구의 아들로 입적 | 이병희 (李丙喜) | 이병주 (李丙周) | 이병철 (李丙喆) | 이병오 (李丙吾) | ||||||||||||||||||||||||||||||||||||||||||||||||||
각주
편집참고 자료
편집-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2009). 〈이병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12》. 서울. 897~8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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