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고려 문신)
이천(李蒨, ? ~ 1349년 7월 14일)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군실(君實)[1], 호는 국당(菊堂), 본관은 경주(慶州). 국당공파(菊堂公派) 파조(派祖). 이달충(李達衷)·이성중(李誠中) 형제의 아버지이다.
생애
편집1299년(충렬왕 25) 국자감시(國子監試)에 합격하였고[2], 그 후 문과에도 급제하였다.[3]
1321년(충숙왕 8) 우사보(右司輔)로 있었는데, 폐인(嬖人) 이인길(李仁吉)의 첩의 아버지인 서경낭장(西京郎將) 최득화(崔得和)가 수주수령(隨州守令)으로 임명되었으나, 좌사보(左司補) 왕백(王伯)과 고신(告身)에 서명하지 않아 곤장을 맞고 섬에 유배되었다.[4]
1344년(충혜왕 복위 5) 동지공거(同知貢擧)로서 문과를 주관해, 하을지(河乙沚) 등 33인에게 급제를 주었고[2], 도첨의상의(都僉理商議)로 원에 가서 교사(郊赦)[5]를 하례하고 돌아왔으며, 왕이 서연을 설치하자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로서 아들인 전리정랑(典理正郞) 이달충(李達衷)과 함께 서연관 중 하나가 되었다.
이듬해 도첨의참리(都僉議參理)에 임명되었으며[6], 후에 추성보리공신(推誠輔理功臣)에 책록되고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졌다.[7] 1349년(충정왕 원년) 졸했다.[8]
시호는 문효(文孝)이다.[7]
가족 관계
편집- 증조 - 이득견(李得堅)[7] : 상의직장동정(尙衣直長同正)
- 조부 - 이핵(李翮)[7] : 증(贈) 좌복야(左僕射)
각주
편집- ↑ 『제정집』에 '하군실형 남달충 괴사마시(賀君實兄男達衷魁司馬試)'라는 이제현(李齊賢)의 시가 실려 있어 자를 알 수 있다.
- ↑ 가 나 『고려사』, 「선거지」
- ↑ 가 나 『고려사』, 「이달충전」
- ↑ 이 이야기는 『고려사』, 「조렴전」에 나오는데, 본문에는 이름이 이청(李菁)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다.
- ↑ 하늘에 제사지내고 죄인들에게 사면을 베푸는 일
- ↑ 『고려사』, 「충목왕세가」
- ↑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자 차 카 타 파 하 거 너 『씨족원류』
- ↑ 『고려사』, 「충정왕세가」
- ↑ 『태종실록』
- ↑ 『윤지표 묘지명』
- ↑ 윤지표의 후처였는데, 후사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