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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연(李海燕, 1924년 6월 13일[2] ~ )은 일제 강점기에 데뷔하여 1960년대까지 활동한 대한민국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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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연
李海燕
기본 정보
출생1924년 6월 13일(1924-06-13) (95세)[1]
일제 강점기 황해도 해주
직업가수
장르트로트, 신민요
활동 시기1941년 ~ 1960년대
배우자베니 김
가족백일희(누이동생)
김파(첫째아들)
김단(둘째아들)
김선(딸)
종교개신교(장로회)
대표곡
뗏목 이천 리 1942년11월
소주 뱃사공 1942년12월
황해도 노래 1943년4월
아리랑 풍년 1943년8월
단장의 미아리 고개 1954년
울어라 대동강 1957년
압록강 칠백 리 1960년

생애편집

1924년 일제 강점기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학력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1941년 10월 콜럼비아레코드에서 군국가요인 <백련 홍련>을 취입하며 데뷔하였다. 이해연은 당시 활동하던 다른 가수들에 비해 비교적 늦은 시기에 데뷔했다. 이후 <뗏목 이천 리>, <소주 뱃사공>, <아리랑 풍년>, <황해도 노래> 등을 발표하며 일약 인기 가수가 되었다. 또한 일제 강점기에 <청란의 꽃> 등 군국가요를 여러 곡 취입하였다.

신민요를 주로 불렀으며 해방 후에는 악극단 무대에서 활약하였는데 1956년6.25 전쟁의 비극적인 아픔을 그린 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의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불러 대히트를 기록했다. 1950년대 후반에는 작곡가 박춘석과 같이 작업을 하였으며 1950년대 말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1960년대 초까지 음반을 취입하였으며 1984년에는 손인호와 함께 히트곡집을 발매하였다. 현재는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이해연의 여동생 백일희1955년 <황혼의 엘레지>를 부른 가수이고, 남편 베니 김은 치과 의사 출신이며 1950년대 미8군 무대에서 트럼펫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유명세를 떨쳤다.또한 자녀들은 김트리오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연안부두>를 불러 히트시켰다.1979년에 발표한 <연안부두>는 응원가로도 많이 쓰이며 오늘날까지도 많이 불리는 국민 가요이다.

가족 관계편집

  • 여동생: 백일희
  • 남편 : 베니 김 (본명: 김영순)
    • 장남 : 김파
    • 장녀 : 김선
    • 차남 : 김단

각주편집

  1. 호적상의 출생년월일은 1926년 6월 12일임.
  2. 호적상의 출생년월일은 1926년 6월 13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