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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쌍릉(益山 雙陵)는 전라북도 익산시 석왕동에 있는 한 쌍의 능이다. 대왕릉은 백제 무왕의 능으로 알려져 있지만, 소왕릉은 도굴 상태가 심해서 밝혀져 있지 않다.

익산 쌍릉
(益山 雙陵)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사적
종목사적 제87호
(1963년 1월 21일 지정)
면적
  • 문화재구역 : 14필지 55,892m2
  • 보호구역 : 81필지 190,935m2[1]
시대백제
위치
익산 쌍릉 (대한민국)
익산 쌍릉
주소전라북도 익산시 석왕동 산55번지 등
좌표북위 35° 58′ 44″ 동경 127° 1′ 53″ / 북위 35.97889° 동경 127.03139°  / 35.97889; 127.03139좌표: 북위 35° 58′ 44″ 동경 127° 1′ 53″ / 북위 35.97889° 동경 127.03139°  / 35.97889; 127.03139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역사편집

2기의 무덤이 남북으로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 형태이다. 무덤의 봉분과 돌방의 크기가 큰 북쪽의 것을 대왕묘라 하고, 남쪽의 작은 것을 소왕묘라고 부른다. 크기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2기 모두 원형의 봉토무덤으로 흙을 높이 쌓아 만든 봉분 이외에 별다른 장식이 없다.

무덤 안의 구조는 능산리 고분과 비슷한 백제 후기 양식의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이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서는 백제 무왕의 무덤으로 설명하며 도굴된 적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1917년 야쓰이 세이이치(谷井済一)가 발굴할 때에도 도굴이 심한 상태라고 기록했다. 다행히 대왕묘 안에서 나무로 만든 관의 일부가 발견되어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나무관은 바닥면보다 위쪽 면이 약간 넓고, 뚜껑의 윗면이 둥근 모양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관고리에는 8쪽의 꽃잎을 가진 연꽃무늬가 있었던 것도 확인되었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87호로 지정되었다.

능의 주인을 백제 무왕으로 추정하는 학설이 많은데, 그 근거로는 이 무덤을 무왕의 능으로 기록한 사료가 있는 점, 백제 후기 양식의 왕릉급 무덤인 점, 무왕이 세운 미륵사 근처에 자리잡고 있는 점 등이 있다. 특히 2018년 대왕릉에서 발굴한 유골을 분석한 결과 추정 연대 · 연령 · 골격 등이 무왕에 대한 기록과 일치하며 유골 주인의 식생활이 고급스러웠다는 것이 밝혀졌다.[2][3]

소왕릉의 주인은 무왕의 왕후일 것으로 추정된다. 무왕의 비는 《삼국유사》의 서동요 설화에 따르면 선화공주, 미륵사지 석탑의 기록에 따르면 사택왕후이다.

현지 안내문편집

이 두 능은 대왕능(大王陵)과 소왕능(小王陵)을 가리키는 것으로 백제발기 무왕(武王 600~641)과 선화공주(善花公主)의 능으로 추정되며, 좌향은 남향이다. 1917년 발굴조사 결과에 의하면 원형의 봉토(封土) 주위에는 호석(護石)을 두른 흔적이 있으며, 내부에는 석실(石室)이 마련되어 있다.[4]

대왕능의 현실은 장방형으로 벽은 화강암 판석을 다듬어 세웠으며 천정과 벽 사이에 육각형의 말각부재(抹角部材)를 끼워 구축하였다. 현실 중앙에는 화강암의 관대(棺臺)가 있는데,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모양으로 그 위에 둥근 뚜껑을 덮은 목관이 놓여 있었다.[4]

소왕능은 전면 중앙에 짧은 연도가 있으며 입구는 판석으로 막아 놓았다. 현실의 길이는 3.16m, 너비 1.24m, 높이 1.58m이다.[4]

두 능은 모두 동시대의 것으로 발굴조사 이전에 도굴 당하였으나, 부패된 목관과 토기 등이 수습되어 현재 국립전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출토유물과 현실의 규모 및 형식이 부여 능산리 고분과 비슷하여 백제 말기의 형식으로 추정된다.[4]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문화재청고시제2018-175호(익산 쌍릉 등 3건 문화재구역 및 보호구역 조정), 제19405호 / 관보(정호) / 발행일 : 2018. 12. 21. / 238 페이지 / 985.8KB
  2. 이성준 외 (2018). “익산 쌍릉과 출토 인골의 성격에 대한 연구”. 《한국고고학보》 (한국고고학회) 109: 292-325. 
  3. 권오영 (2019년 2월 23일). ““백제 무왕이십니다”…뼛조각에 학자들 고개 숙이다”. 《한겨레》. 
  4. 현지 안내문 인용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