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程秉, ? - 242년[1])은 중국 삼국 시대 동오의 학자이자 관료로, 덕추(德樞)며 예주 여남군 남돈현(南頓縣) 사람이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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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을 사사했다.[2] 후에 교주로 피란해, 유희(劉熈)와 함께 경전의 대의를 논하여 마침내 오경에 통달했다.[2] 교지태수 사섭에게서 장사로 등용되었다.[2]

손권은 정병이 이름 높은 유학자임을 듣고 예를 갖추어 초빙해 태자태부를 삼았다.[2] 황무 4년(225년) 손권이 선태자의 아내로 주유의 딸을 맞이하여, 정병에게 태상을 맡아 오군에서 태자비를 데려오게 하고, 손권은 친히 정병의 배에 탔다.[2] 돌아온 후 선태자에게 조용히 혼인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규방에서도 예의와 교화를 존숭하기를 권했으며, 선태자는 이를 좋게 여겼다.[2] 재직 중에 병으로 죽었다.[2]

정병은 《삼국지》에 열전이 수록된 인물들 중, 자신의 열전을 제외한 어떤 곳에도 기록이 없는 유일한 인물이다.[3]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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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적》, 《상서효》, 《논어필》 등 3만 여 말을 남겼다.[2]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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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엄준, 감택과 함께 한 시대의 유자로 정병을 평가했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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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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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몰년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이해에 감택이 태자태부가 되었으므로 그 전에는 죽었을 것이다.
  2. 《삼국지》 권53 장엄정감설전
  3. 사카구치 와즈미(坂口和澄), 《정사삼국지군웅명명전》 (正史三国志群雄銘銘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