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대프랑스 동맹

영국,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등이 프랑스 혁명에 대항해 결성한 최초의 반국가동맹

제1차 대프랑스 동맹(First Coalition, 1793년 - 1797년)은 프랑스 혁명이 국왕의 처형으로 이어지자 위기감을 느낀 유럽의 군주들이 프랑스 혁명 세력을 굴복시키기 위해 결성한 군사동맹이다. 1789년 7월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이 1791년 후반에 입헌군주제로 이행할때만 해도 대부분의 유럽 군주들은 경각심을 가지고는 있었으나 대체로 관망하는 자세를 취했다.

제1차 대프랑스 동맹
프랑스 혁명 전쟁의 일부
Valmy Battle painting.jpg
프랑스군이 승리한 발미 전투
날짜1792년 - 1797년
장소
서부 유럽, 서인도 제도
결과

바젤 조약, 캄포포르미오 조약

교전국

신성 로마 제국 신성 로마 제국

영국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프랑스 왕국 프랑스 왕당파
스페인의 기 스페인 (-1795)
포르투갈 왕국의 기 포르투갈 왕국
사르데냐 왕국의 기 사르데냐 왕국 (-1796)
시칠리아 왕국의 기 시칠리아 왕국
나폴리 왕국의 기 나폴리 왕국
교황령의 기 교황령 (-1796)
베네치아 공화국의 기 베네치아 공화국 (-1796)

네덜란드 네덜란드 공화국 (-1795)

프랑스 왕국 프랑스 입헌왕국 (1792)
프랑스 프랑스 제1공화국 (1792-)
스페인의 기 스페인 (1796-)
바타비아 공화국의 기 바타비아 공화국 (1795-)
이탈리아 이탈리아 종속국

폴란드 폴란드 지역군 (1797)
지휘관

신성 로마 제국 프란츠 2세
프로이센 왕국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영국 조지 3세
영국 소 윌리엄 피트
스페인 카를로스 4세 (-1795)
포르투갈 마리아 1세
사르데냐 왕국 비토리오 아마데오 3세

네덜란드 빌럼 5세

프랑스 왕국 루이 16세 (1792)
프랑스 자크 브리소 (1792-3)
프랑스 M. 로베스피에르 (1793-4)
프랑스 폴 바라스 (1795-)

스페인 카를로스 4세 (1796-)

그러나 1793년 1월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가 참수당하자 충격을 받은 군주들은 자국민들이 혁명사상에 영향을 받아 동요할 것을 염려하여 이를 차단하고자 했다.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프랑스 혁명세력을 타도하기 위해서 유럽 국가들이 대불동맹을 결성하여 해상과 육상에서 프랑스를 공격하였으며 혁명에 반대하는 프랑스내 왕당파들과도 연합하였다. 대불동맹 결성에는 영국이 적극적으로 주도하였는데[1] 이는 프랑스가 92년 11월에 벨기에를 강제 합병하여 영국의 대륙 무역에 있어서 주요 교역로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1차 대프랑스 동맹은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원정에서 성공하면서 1797년에 사실상 해체 되었다.

역사적 배경편집

1789년에 발발한 혁명으로 프랑스 왕국에서는 봉건제 폐지, 인권선언, 교회재산 몰수등 실로 혁명적인 사회개혁 작업이 전개되었으나, 바렌사건에도 불구하고 1791년 9월에 헌법을 통해 입헌군주제가 실시되며 군주제 자체는 유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 사상의 전파를 염려한 유럽군주들의 반발은 거셌다. 특히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양국은 1792년 2월 동맹을 체결하여 혁명정부를 압박하였다.

프랑스 혁명정부는 오스트리아의 《필니츠 선언》과 망명 귀족들의 선동이 혁명 성과를 위협하는 요소로 판단하고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에 선전포고를 하였다.[2] 전쟁 초기에 혁명에 반대하던 귀족출신 장교들이 무더기로 망명하고[3] 군 기강이 문란해지며 프랑스 군이 연패하여 위기에 처한다. 국가적 위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병력증원을 위한 의용군 모집에 대해 루이 16세가 거부권을 행사하자 왕실이 외국 군대와 내통한다고 의심하고 있던 시민들은 분노하였다. 패전과 식량부족, 물가폭등 때문에 민심이 극도로 흉흉한 가운데 도시 노동자들의 주도하에 구성된 상퀼로트들이 92년 8월, 왕궁을 공격하고 왕실 일가를 탕플탑에 유폐시켰다.[4] 이들의 협박에 굴복한 의회 역시 군주제를 폐지하고 92년 9월 21일에 제1공화국을 출범시켰다.[5]

92년 9월, 발미전투에서 승리한 혁명정부(국민공회)는 프랑스 군을 공세로 전환하고 국경을 넘도록 명령하였다.[1] 혁명 세력은 승전의 기쁨속에 혁명사상의 전파와 인민 해방등 혁명적 낭만주의에 사로잡히며 급진화 되더니 혁명의 후퇴를 막고 혁명 성과를 공고히 한다는 명분하에[1] 1793년 1월 21일 루이 16세를 재판에 회부한뒤 참수하기에 이른다.

대불 동맹 전쟁편집

동맹 결성편집

루이 16세의 처형은 유럽의 각 왕국에 위기감을 안겨 줬다. 프랑스 혁명 정권이 왕정을 부정하게 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왕권신수설을 신봉하는 그들 입장에서는 국왕없이도 국가가 통치될 수 있다는 생각은 매우 불온한 사상이었다. 혁명 사상이 자국에 파급될까 두려워한 여러 왕국은 동맹을 맺어 프랑스 혁명 정부의 타도를 목표로 했다. 제1차 대프랑스 동맹에 참가한 국가는 다음과 같다.

전쟁의 시작편집

동맹군은 지중해에서 프랑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공화국라인 강에서 공격했고, 영국은 해상 봉쇄를 시작하여 프랑스 해군의 거점인 툴롱 항을 포위했다. 프랑스는 1793년 3월 18일네르빈덴 전투〉의 패배 후 이어진 뒤무리에의 투항으로 대외적으로 열세에 놓이게 되었다.

또한 국내에서도 서부 방데 지역과 남동부 리옹 등에서 왕당파의 선동에 의한 반란이 일어났고, 툴롱 항에서도 도시 내의 왕당파가 영국과 스페인 함대를 입항시키는 등 내우외환을 안고 있었다. 같은 해 4월 6일, 혁명 정권은 공안위원회를 조직하여 내부의 긴축을 도모함과 동시에 8월 23일, '국민 총동원령'을 의결하여 상실한 병력의 복구를 시도했다.[7]

1793년 말부터 프랑스는 반격에 나서 국내에 침공했던 동맹군을 모두 국외로 쫓아냈다. 같은 해 12월 19일, 나폴레옹은 툴롱 탈환에 중요한 역할을 하여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8] 이후에도 프랑스의 공세를 계속하여, 1795년 4월 6일에 프로이센과 《바젤 조약》을 체결하고 라인란트를 얻었다. 같은 해 5월 남부 네덜란드에 위성국인 바타비아 공화국을 건국했다. 스페인도 《제2차 바젤 조약》으로 프랑스와 휴전했다. 1795년 10월 26일, 프랑스국민 공회가 해산되고 총재정부가 성립되면서 프랑스군은 독일과, 북부 이탈리아의 정복에 착수했다.

동맹의 붕괴편집

1796년 3월,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나폴레옹은 알프스 산맥을 우회하여 이탈리아로 진군했다. 나폴레옹의 군대는 각 방면에서 동맹군을 격파하고 1797년 4월 7일, 《레오벤 조약》으로 오스트리아와 임시휴전하고 1797년 10월 17일캄포포르미오 조약》의 체결로 완전 휴전하면서 많은 영토를 할양받았다. 이것으로 제1차 대프랑스 동맹은 붕괴되었고, 영국만이 전쟁을 계속하게 되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다니엘 리비에르 <프랑스의 역사> 까치글방 2013.3.11 p264
  2. [네이버 지식백과] 입법국민의회 - 인민주권과 자유의 보장 그리고 대외전쟁 (프랑스 혁명, 2007. 7. 5., 서정복).....의회는 왕의 제의에 따라 4월 20일에 오스트리아 황제인 프란츠 2세에 대한 선전포고안을 전적으로 통과시켰다.
  3. [네이버 지식백과] 입법국민의회 - 인민주권과 자유의 보장 그리고 대외전쟁 (프랑스 혁명, 2007. 7. 5., 서정복).....이러한 상황에서 왕당파 장교 9000명 가운데 무려 6000명이 망명길에 올랐다.
  4. EM번즈外 <서양 문명의 역사 3> 소나무, 1996년 4월 5일, p834
  5. 다니엘 리비에르 <프랑스의 역사> 까치글방 2013.3.11 p263
  6. 김용구. 《세계외교사》, 1995(上 · 下 合本), 서울대학교 출판부, 4쪽. ISBN 89-7096-413-4 "그리하여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對프랑스연합전선을 결성하게 되었다.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바덴(Baden), 뷔르템베르크(Würtemberg), 바기게슺(Bavaria), 포르투갈, 피에몬테(Piedmont), 교황령(Papal States) 그리고 나폴리왕국 등이 연합전선에 참여하였고, 러시아는 프랑스와의 무역을 단절하였다.“
  7. 다니엘 리비에르 <프랑스의 역사> 까치글방 2013.3.11 p267
  8. 다니엘 리비에르 <프랑스의 역사> 까치글방 2013.3.11 p269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