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나카소네 내각

제2차 나카소네 내각(일본어: 第2次中曽根内閣)은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제72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임명되어, 1983년 12월 27일부터 1984년 11월 1일까지 존재한 일본의 내각이다.

제2차 나카소네 내각
내각총리대신제72대 나카소네 야스히로
성립연월일1983년 12월 27일
종료연월일1984년 11월 1일
여당·지지기반자유민주당·신 자유 클럽
내각각료명단 (총리대신 관저)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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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12월 18일에 실시된 제3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유민주당이 대패했기 때문에 신 자유 클럽과의 각내 연립 정권을 맺었다. 그로 인해 1955년 이후 28년 지속된 자유민주당 단독 정권은 일단 종료됐다.

1984년 1월 5일, 나카소네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고 당 대회에 있어서 ‘전후 정치의 총결산’을 표명했다. 행정관리청 등의 폐지와 총무청의 발족에 따라 행정관리청 장관인 고토다 마사하루가 7월 1일부터 총무청 장관으로 취임했고 8월에는 일본전매공사 민영화법을 성립시켰다. 자유민주당내 반주류파에 의한 니카이도 옹립 구상을 끝까지 밀고 나간 나카소네는 10월 말에 치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 무투표로 재선에 성공하여 제1차 내각 개조를 단행했다. 12월에는 일본전신전화공사 민영화법을 성립시켰다.

1985년 2월, ‘다나카소네 내각’[1]으로 비유될 정도로 정권에 영향력이 있었던 다나카 가쿠에이뇌경색으로 장기 입원했다. 이로 인해 ‘포스트 나카소네’를 노리는 ‘뉴 리더’들의 파워 밸런스 위에 나카소네가 서는 형태가 되면서 나카소네의 리더십이 강화됐다. 같은 해에 나카소네는 당 세미나에서 방위비 1% 범위를 철회하는 의견을 제출했다.

종전기념일 40주년이 된 1985년 8월 15일, 나카소네가 현직 총리로서는 최초로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했고 나카소네를 비롯한 내각의 전체 각료들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참배의 여파로 중국 공산당에서 대일 우호 정책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나카소네와 인연이 있던 후야오방이 실각되는 원인이 됐다. 그해 연말에는 제2차 내각 개조를 단행했다.

이듬해 1986년 5월, ‘민간 사업자의 능력의 활용에 의한 특정 시설 정비의 촉진에 관한 임시 조치법’(민활법)이 제정됐고 그해 도쿄에서는 G7 정상회의가 개최됐다. 같은 해 7월, 중참 동시 선거에서 자유민주당은 대승했고 이 내각부터는 각료 자산 공개가 시작됐다.

각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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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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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12월 28일에 임명됐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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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별명을 ‘직각 내각’(直角内閣)이라고도 불렸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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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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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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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역대 내각        
전임 내각
 제1차 나카소네 내각 
 제2차 나카소네 내각 
 1983년 12월 27일 ~ 1984년 11월 1일 
후임 내각
 제2차 나카소네 내각 (제1차 개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