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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하(趙鏡夏, 일본식 이름: 靑橋鏡夏, 1888년 3월 28일 ~ 1941년 1월 11일)는 일제 강점기의 관료로, 본적은 경성부 서대문정이다.

생애편집

1908년 1월 보성전문학교 법과를 졸업했으며 1909년 10월 사립광성학교를 졸업했다. 그 뒤 마포보통학교와 양주보통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고 1911년 9월 문관보통시험에 합격했다. 1912년 6월 28일 경기도 양주군 서기로 임명된 이래 경성부 서기(1913년 11월 3일, 1915년 8월 12일 임명)와 경기도 고양군 서기(1914년 7월 10일 임명)로 근무했고 1920년 10월 9일 조선총독부 내무국 제1과 및 지방과 속(屬)으로 임명되었다.

1921년 4월 조선총독부 도 참여관과 군수 30명이 조직한 내지시찰단의 인솔자로 일본을 방문했다. 1922년 5월 30일 경상북도 봉화군수로 임명된 뒤부터 청도군수(1923년 12월 27일 임명), 성주군수(1928년 3월 15일 임명), 영천군수(1931년 12월 28일 임명), 달성군수(1933년 7월 26일 ~ 1939년 4월 26일)를 차례로 역임했고 1928년 11월 16일 일본 정부로부터 쇼와대례기념장, 1930년 6월 12일 훈6등 서보장, 1935년 6월 11일 훈5등 서보장을 받았다.

1935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로부터 시정 25주년 기념표창과 은배 1조를 받았으며 1937년 8월 2일 고등관 3등, 1940년 9월 25일 정5위에 각각 서위되었다. 1939년 4월 26일부터 1940년 9월 1일까지 충청남도 참여관 겸 산업부장, 충청남도 사무관, 충청남도지방미곡통제조합연합회 회장으로 근무했고 충청남도방공위원회 위원, 충청남도 농회장(1939년 10월), 충청남도유도연합회 부회장(1939년 12월), 충청남도임금위원회 위원(1940년 1월) 등을 역임했다.

경상북도 달성군수와 충청남도 참여관 겸 산업부장 재직 시절 군용물자 조달 및 공출, 군인 및 유가족 위문, 국방사상 보급 및 선전, 국방헌금 모집에 관한 업무를 수행했으며 1940년 4월 29일 중일 전쟁에 협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정부로부터 훈5등 쌍광욱일장을 받았다. 1940년 9월 2일부터 1941년 1월 11일 사망할 때까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했다. 친일파 708인 명단의 조선총독부 사무관 부문, 도 참여관 부문, 중추원 부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중추원 부문, 관료 부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참고자료편집

  •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2009). 〈조경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16》. 서울. 607~6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