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복귀운동

조국복귀운동(일본어: 祖国復帰運動 (そこくふっきうんどう) 소코쿠훅키운도[*])은 태평양 전쟁 이후 미국의 시정권(施政権) 하에 놓인 오키나와에서 조국(일본)으로의 복귀를 촉구하여 전개된 사회운동이다.[1] 1972년 5월 15일 오키나와 반환으로써 목표가 달성되었다.

1954년 10월, 일본으로의 즉각복귀를 촉구하는 서명운동.

2차대전 종전 이후 오키나와에서는 일본으로 복귀해야 할지, 독립해야 할지, 혹은 국제연합신탁통치 하에 놓일지 등 "귀속문제"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 이후 미국의 장기지배가 확실시되고 군사 우선 정책의 방향성이 밝혀지면서, 오키나와 여론 상당수가 독립이나 신탁통치가 아닌 일본 복귀를 향하게 된다.[2] 이후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극동지역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주충미군 병사의 사건사고가 잇따라 많은 주민 희생자가 나오면서, 주민운동을 중핵으로 일본복귀운동이 전개되었다.[1] 또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일본에도 미국에도 속하지 않는 오키나와의 애매한 지위 역시 복귀운동의 원동력이었다.[2]

미국은 오키나와에 대한 시정권 유지를 주충미군기지의 기능유지와 분리할 수 없는 문제로 인식하고, 일본으로의 복귀운동을 미국의 시정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 혹독히 탄압했다. 그러나 미국이 시정권을 방패로 강권적 정책을 취할수록 오키나와인들의 일본복귀 요구는 오히려 고조되었다.[2]

각주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