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현 (국악인)

조상현(趙相賢, 1939년 11월 7일~)은 대한민국의 국악인이자, 판소리 대명창이며, 본관한양(漢陽)이다.

조상현
기본 정보
출생1939년 11월 7일(1939-11-07)(84세)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보성군 겸백면 평호리 오호마을
성별남성
거주지대한민국 전라남도 고흥군 동강면 마륜리
직업판소리 국악인, 대학 교수
장르한국 전통 음악
활동 시기1950년~현재
학력전남목포고등학교 졸업(1956년 2월)
가족아버지 조기원(별세)과 어머니 문향지(별세)의 3남 1녀(4남매) 가운데 막내(삼남)
관련 활동전남대학교 국악학과 대우교수
웹사이트마니아 데이터 베이스 - 판소리 대명창 조상현 선생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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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현 선생은 1939년 11월 7일(1939-11-07), 전라남도 보성군 겸백면 오호리에서 부친 조기원(본명: 조성관 → 개명: 조성원 → 조기원)과, 모친 문향지(남평 문씨 부인)의 3남 1녀 중 막내(삼남, 네번째)로 태어났다. 전남보성율포중학교와, 목포고등학교졸업했다. 1950년에서부터 7년간[1] 정응민에게 판소리(강산제)를 배웠다. 20세(1958년)부터는 광주의 호남국악원(1958년)과 광주국악원(1959년)에서 생활하면서 박봉술 명창을 만났고, 임방울 명창과도 교류했다. 1965년 5월 당시 명창 박녹주 선생의 수제자(首弟子, 또는 수양아들)가 되어 1968년 5월까지 어언 3년간 독공했다. 1974년 문공부 장관 주최 제1회 전국판소리 명인명창대회(남원, 현재는 춘향국악대전)에서 1등을 차지했다.[2]심청가》에 장하며 웅대한 성량으로 임방울 이후 당대 최고의 남성 명창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국립창극단 단원, (사)한국판소리보존회 이사장을 지냈다. 전남대학교 국악학과에서 전임강사, 대우교수 등을 지냈고 광주시립국극단 단장을 지냈다.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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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고로, 조상현이 태어난 전남 보성의 겸백면 오호리는, '보성소리'의 원가인 회천면 영천리와는 오히려 거리가 있는 면계 지역이다.[1]
  • 그는 국민학교 1학년 때인 6세 때(1944년)부터 가내에서 글(한학)을 읽어 사서(四書)에 능통하였다. 지금까지도 국악계의 보기 드문, 이른바 숨은 한문 학자에 속한다.[1]
  • 《(사) 한국판소리보존회》를 설립하고 나서 이사장을 30여년간 지냈고, 이후 전남대학교 국악학과 대우교수 등도 지냈다.
  • 조상현의 창제는 '보성소리'로 분류되는 강산제에 해당한다. 우람장중하고도 묵직한 철성을 단전에서 끌어올리는 동편제와도 다르고 계면조에다가, 애원성과 감칠맛이 넘실대는 서편제와도 다르다. 국민학교를 졸업하던해(1950년)에 정응민(1896년~1964년) 선생을 찾아가 소리를 배웠다. 아무리 율포중학교와 목포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두 계절 방학 때에는 정응민 선생 집에서 하루 10시간 이상의 혹독한 소리 학습을 1958년 1월까지 어언 8년여간 하였다.
  • 태권도 3단이다.[1]
  • 1961년 1월부터 1964년 1월까지 군대복무 이후, 1968년 3월 TBC 동양방송 공연장에서 우연찮게 만난, 당시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지대한 배려와 관심으로, 황금 같은 전성기를 맞았다. 국립창극단에서도 모든 주역을 맡아 오며 정계와 재계 등 비롯한, 각계 최고위 지도층 인사들과 많은 교류를 했다.[1]
  • 제자로는 염경애, 주소연, 박춘맹, 윤상호, 마미숙, 이숙영 등이 있다.
  • 1958년 1월 이후부터 아직까지도, 대한민국 최고의 국창으로의 활동과 후진 양성 등에 힘을 쓰고 있다.

주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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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상현 심청가(1976년)/오아시스레코드사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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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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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전통 예인 백사람, 이규원, 초판 1995, 4쇄 2006, 현암사]
  2. 신동아, “藝人의 자존심은 연습량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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