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趙禹, ? ~ ?)는 전한 중기의 관료로, 우부풍 태현(斄縣) 사람이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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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함으로 명성을 떨쳐 태위 주아부를 섬겼고, 주아부가 승상이 된후 그의 사(史)가 되었다. 승상부의 관리들은 조우의 청렴하고 공명정대함을 칭찬하였으나, 주아부만은 그를 신임하지 않고 이렇게 말하였다.

조우가 뛰어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법을 너무 엄격히 적용하니 상급 관부에서 일할 사람은 못 된다.

무제 때 조우는 승진을 거듭하여 어사(御史)가 되었고, 곧 능력을 인정받아 태중대부(太中大夫)가 되었다. 또 장탕과 함께 여러 율령을 논의하고 견지법(見知法)[1]을 제정하여 관리들이 서로 감시하게 하였다. 조우와 장탕은 가까이 지냈고, 장탕은 조우를 형으로 모셨다.

조우는 한때 벼슬을 그만두었으나, 정위로 복직하였다. 이후 연로함을 이유로 연나라재상으로 좌천되었고, 몇 년 뒤 정신이 혼미해져 죄를 짓고 고향으로 쫓겨났다. 장탕이 죽은 지 십여 년이 지난 후, 천수를 다하여 집에서 죽었다.

조우는 소부가 된 후 과연 주아부의 말대로 대단히 냉혹하게 일을 하였으나, 만년에는 도리어 부드러워져 공평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후배 왕온서 등이 조우보다도 일을 엄하게 처리하였다.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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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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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른 사람의 죄를 알고도 고발하지 않으면 자신도 같은 죄를 지은 것으로 간주되는 법률.
전임
한안국
전한중위
기원전 129년 ~ 기원전 126년
후임
이식
전임
전한소부
기원전 124년 ~ 기원전 115년?
후임
전임
왕온서
전한정위
기원전 113년 ~ 기원전 109년
후임
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