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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주산성(竹州山城)은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에 있는 고려시대의 산성이다. 1973년 7월 10일 경기도의 기념물 제69호로 지정되었다.

죽주산성
(竹州山城)
대한민국 경기도기념물
종목기념물 제69호
(1973년 7월 10일 지정)
시대고려시대
위치
안성 죽주산성 (대한민국)
안성 죽주산성
주소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양대로 111-71 (매산리)
좌표북위 37° 5′ 21″ 동경 127° 25′ 47″ / 북위 37.08917° 동경 127.42972°  / 37.08917; 127.42972좌표: 북위 37° 5′ 21″ 동경 127° 25′ 47″ / 북위 37.08917° 동경 127.42972°  / 37.08917; 127.42972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개요편집

해발 372m인 태봉산 아래 위치한 죽주산성은 안성시 이죽면 죽산리, 매산리에 걸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은 충청북도 청주와 충주가 만나는 중부 내륙의 길목이어서 일찍부터 서울 혹은 삼남으로 통하는 중요한 곳으로 여겨져 왔으며, 성 인근에 고려 시대의 진전 사원의 하나였던 봉업사터를 비롯하여 석탑, 불상, 절터 등 많은 불교 유적들이 흩어져 있다.

성의 축성 연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으며, 2001년도에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에 의하여 성터 일부에 대한 발굴 조사와 함께 간략한 지표조사가 실된 바 있는데, 대체로 백제 때에 처음 축조되어 이후 군사적 용도로 계속해서 사용되었고 여러 차례 수축을 거쳤던 것으로 판명되었으나, 무기류는 확인되지 않았다. 2001년의 학술조사 결과 성이 내성, 중성, 외성의 삼중으로 구축되었으며, 그 시기를 달리하여 3차에 걸쳐 축조되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는데, 고려 시대의 상태는 중성이고 내성과 외성은 조선 시대에 쌓았다는 의견이다.[1] 내성은 1,125m, 중성은 1,322m, 외성 602m으로 문터는 내성에 두 개, 중성에 네 개, 외성에 한 개 이렇게 모두 일곱 개가 확인되었으며, 수구문과 더불어 외성의 남쪽 성벽의 양쪽 끝과 동쪽 성벽의 북쪽 끝에서는 도합 세 개의 치성이 확인되었다.

성벽의 높이는 2.5m 정도이며 부분적으로 수리를 많이 하였다. 남문 성 바깥에 물길을 돌린 도랑의 흔적이 있다. 그리고 북문 옆에는 네모진 주춧돌과 기와 조각이 흩어져 있다. 다만 2001년 발굴조사 당시 내성 구간 북벽 395m는 종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을 새롭게 발견한 것이었는데, 그 당시 죽주산성에 대한 복원작업 도중으로 내성의 상당부분이 작업을 마친 상태였고, 성벽의 상태가 정확히 확인되지 못한 상태에서 복원작업이 진행되어 도리어 성곽의 원형이 훼손되었다는 지적도 따르고 있다.[2]

고려 고종 23년(1236년) 3차 몽골 침입 당시 죽주방호별감으로 파견되어 성을 지키고 있던 송문주가 몽골군을 상대로 15일 동안을 항전하여 몽골군을 격퇴한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성 안에는 송문주의 전공을 기리는 사당이 있다. 조선시대에도 이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이 강조되어 성을 보수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조도사 전이중이 이곳에서 왜병과 대치하였고 병자호란 때에는 진을 치기도 하였다.

각주편집

  1.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 《안성 죽주산성 지표 및 발굴조사 보고서》 2002, pp.41~50.
  2. 윤용혁 《삼별초 - 무인정권·몽골 그리고 바다로의 역사》도서출판 혜안, 2014년, 146쪽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