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지영희(池瑛熙, 1909년 8월 14일 ~ 1980년)는 대한민국의 전통음악가로 해금산조와 피리 시나위의 명인이다. 본명은 지천만(池千萬), 본관은 충주(忠州)이다.

지영희
본명 지천만
출생 1909년 8월 14일
경기도 평택
사망 1980년 2월2일
분야 해금 산조, 피리, 시나위
배우자 성금연
기타 중요무형문화재 제52호 시나위 보유자[A]

목차

생애편집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나 경기 민속음악 및 무속음악, 무용 등을 폭넓게 익힌 후 1930년대 중반부터 서울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1937년 조선음악연구소에 입소하여 악사가 되었고, 1938년에는 한성준무용단(韓成俊舞踊團)의 반주악사로 활약하였으며, 1946년에는 서울중앙방송국 전속국악사가 되었다.

1960년대부터는 서울국악예술학교의 설립에 동참하여 후진을 양성하였고, 1966년에는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을 창설하여 초대상임지휘자로 취임하였다.시립관현악단을 창설하기위해 매일 시청을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면서 국악관현악단을 허락해달라고 하셨다 한다. 그당시 시립교향악단은 있는데 국악관현악이 없는게 말이되냐며 몇달을 매일 쫓아다니셔서 사람을 모을수 있냐고 묻는 말에 할수 있다고 하여 남산 야외음악당에 국악인들을 모두 모아놓고 그곳에서부터 시작을 하게된 동기이다. 누가 어떻게 관현악단을 만들었는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였다. 지금 각곳에 있는 관현악단들은 지영희선생을 위해야 한다. 그리고 예능보유자는 다시 인정을 해야 한다. 미국으로 가시게 된 이유도 있다. 국악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 만든 민속학회를 불만품은 사람들 때문이다. 지영희선생님은 각 악기들을 다루셨다. 해금 대금.피리.태평소.가야금.춤.장고.소리. 어느거 하나 못하시는게 없으셨다. 문화재로 지정할때 무엇으로 해야 할지 고심하다 시나위로 지정을 하셨다.시나위는 각종 악기 를 연주하는데 서양의 재즈같이 각자 놀아도 하나로 어우러지는 그런 음악이 시나위다. 한국에 계셨으면 국악계가 더 많이 발전이 될터인데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197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2호 시나위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고, 1975년 해외이민으로 보유자 인정이 해제되었다.[A]

해금피리 시나위를 바탕으로 해금산조와 피리산조를 완성하면서 산조의 대가로 이름을 날렸다.[3]

가족편집

부인은 중요무형문화재 23호인 가야금산조 및 병창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은 성금연(成錦鳶)이다.자녀로는 지수남.지수복.지성자. 지미자. 지순자.지윤자.지명자.지재현이있다.손자 강봉천이 국악작곡으로 활약을하고 김귀자. 최희연 등이 대를 잇고 있다 이철희 이상윤이도 미국에서 대를 잇고 있다[2][4]

각주편집

내용
  1. 1973년 11월 11일 지정되었으며,[1] 해외이민으로 1975년 5월 30일 보유자 인정이 해제되었다.[2]
출처
  1. 문화공보부장관 (1973년 11월 5일). “문화공보부고시제249호(중요무형문화재지정변경)”. 《국가기록원 관보》. (1973년 11월 9일 관보 제6596호 8면(5100)). 2017년 12월 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7년 12월 4일에 확인함. 
  2. 문화공보부장관 (1975년 5월 30일). “문화공보부고시제310호(중요무형문화재보유자인정해제)”. 《국가기록원 관보》. (1975년 6월 12일 관보 제7070호 15면(4039)). 2017년 12월 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7년 12월 4일에 확인함. 지정명칭: 시나위, 보유자성명: 지천만(예명: 지영희), 해제일자 1975.5.30, 해제사유: 해외이민. 
  3. 김귀자, 성금련 가야금 창작곡집, 도서출판 어울림, 2006
  4. 이봉석 (2006년 6월 28일). “성금연 명인 20주기 추모공연”. 《연합뉴스》 (서울). 2017년 12월 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7년 12월 4일에 확인함. <전략> ... 남편 지영희(1908-1980) 명인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