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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금연(成錦鳶, 1923년 5월 9일 ~ 1983년)은 대한민국국악인으로 가야금 산조의 명인이다.[1] 본명은 성육남(成六男)이다. 담양에서 태어나, 가야금 명인 조명수와 안기욱을 사사하였다.[2] 어려서부터 최옥산, 안기옥에게 가야금 산조를 배운 후 방송공연을 통해 뛰어난 기량이 알려져 명성을 얻었다. 1938년 서울로 올라와 조선성악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였고, 경기 민속음악인 지영희와 결혼하여 함께 활동하였다. 안기옥 류 가야금 산조를 경쾌하고 화려하게 재구성해 성금연 류 가야금 산조를 만들었다.[3]

성금연
출생 1923년 4월 1일
전라도 담양
사망 1986년
하와이
분야 가야금 산조
배우자 지영희
기타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및병창 산조(散調) 보유자

1968년에 중요 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예능보유자가 되었으나, 1974년시나위 예능보유자인 남편 지영희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며 보유자 인정이 해제되었다.[A] 이후 사망할 때까지 하와이에서 가야금 전수에 힘썼다. 그녀는 13현 가야금, 15현 가야금, 가야금과 같은 개량 가야금을 만들었고 가야금 독주곡으로 춘몽 꽃의향기 흥 살푸리 새가락별곡 눈물의진주를 작곡하였다. 가야금 산조는 짧게 7분에서 20분. 40분.으로 이어져 1시간 20분까지 작곡하였다. 특히 가야금산조 휘모리부분을 만들었으며 그 중 뒤에 이어지는 휘모리는 1960년 당시 트위스트가 티비에서 나오는것을 보시고 흥미를 느끼시고 그 박자에 맞춰서 만드신것이다. 그 곡을 들으면 트위스트가 연상되는 곡이다. 그리고 눈물의진주는 자식들에게 남길것이 없어 눈물이 진주가 된다면 많은 눈물을 남기겠지만 그것을 남길수가 없으니 이곡을 너희들에게 남긴다. 하며 만드신 곡이 눈물의 진주입니다.(테입으로 유언을 남기신 말씀입니다).그리고 두분은 (지영희.성금연) 미국으로 이민을 가신게 아니였다. 잠시 다니러 가신다고 작은가방 2개를 가지고 가셨는데 그때 당시에는 3개월만 있으면 자녀들이 영주권을 받을수 있어 자녀중 한 사람이 미국을 가길 원했는데 그사람 때문에 가게 된일이다. 이민을 가는사람이 모든 재산을 한국에 두고 나가는 사람이 있겠는가? 시기질투하는 사람의 행동으로 싸움을 할줄 모르는 성금연은 미국으로 되돌아가라는 사람들(그당시 많은 사람들이)에게 당하고 미국으로 들어가셨다. 국악을 더많이 보급을 시켰을 두분을 그렇게 떠밀어 나가시게 한것이다. 그리고 성금연은 박상근에게 가야금을 배운게 아니다. 박상근은 남편 지영희의 친구로 당시에 북으로 넘어간 사람의 이름을 대면 빨갱이로 몰리기 때문에 북으로간 안기옥선생님이름을 못되고 그사람 박상근의 이름을 댄것이다. 내가(지윤자) 직접 성금연선생님께 들은 이야기이다. 성금연 살아생전에 박상근이라고 쓴책은 이름을 다 없애게 하였다. 그 산 증인으로 이재숙씨가 있다. 그분 책에 보면 박상근이라는 이름이 없어졌음을 알것이다. 성금연선생에게 이재숙씨가 배우러 왔을때 박상근의 이름을 넣고는 한가락도 가르쳐주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셔서 다 고친것으로 안다. 아직도 박상근에게 배워서 성금연가락이 화려하게 변했다고 하는 것은 없어야 하겠다. 아울러 박상근은 성금연과 하등 관계가 없음을 밝히고 성금연류를 배우는 사람들은 성금연자신이 손가락이 피가 터지도록 거야금을 뜯어 가락을 만든것임을 알기를 바란다.[3]

각주편집

내용
  1. 1968년 12월 23일 지정되었으며,[4] 해외이민으로 1975년 5월 30일 보유자 인정이 해제되었다.[5]
출처
  1. 이봉석 (2006년 6월 28일). “성금연 명인 20주기 추모공연”. 《연합뉴스》 (서울). 2017년 12월 4일에 보존된 문서. 2017년 12월 4일에 확인함. <전략> ... 남편 지영희(1908-1980) 명인 
  2. 김귀자, 성금연 가야금 창작곡집, 도서출판 어울림, 2006년
  3.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n.d.).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음악/한국음악/한국음악가/민속악의 명인#성금연.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2017년 12월 4일 확인함.
  4. 문화공보부장관 (1968년 12월 23일). “문화공보부고시제13호(중요무형문화재지정)”. 《국가기록원 관보》. (1968년 12월 26일 관보 제5133호 8면(3182),9면(3183)). 2017년 12월 4일에 보존된 문서. 2017년 12월 4일에 확인함. 成錦鳶(本名成文男), 女, 1923.5.9, 散調 
  5. 문화공보부장관 (1975년 5월 30일). “문화공보부고시제310호(중요무형문화재보유자인정해제)”. 《국가기록원 관보》. (1975년 6월 12일 관보 제7070호 15면(4039)). 2017년 12월 4일에 보존된 문서. 2017년 12월 4일에 확인함. 지정명칭: 가야금 산조 및 병창, 보유자성명: 성육남(예명: 성금연), 해제일자 1975.5.30, 해제사유: 해외이민. 

참고 문헌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