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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규(蔡仁揆, 1230년 ~ 1303년 12월 7일(음력 10월 28일))는 고려의 문신, 재상(宰相)이다. 본관은 평강(平康)이며, 평장사(平章事) 채정(蔡禎)의 아들이다. 벼슬은 도첨의중찬(都僉議中贊)에 이르렀다. 시호는 양정(良靖)이다.

생애편집

의장부산원(儀仗府散員) 등을 지내고, 1270년(원종 11) 음력 5월 16일 왕이 용천역(龍泉驛)에 도착하자 우승선(右承宣)으로서 정당문학(政堂文學) 유천우(兪千遇)와 함께 어가를 영접하였다.[1]

채인규의 딸이 우정(于琔)의 처(妻)가 되었는데, 1273년(원종 14) 우정(于琔)이 주살(誅殺)될 때 추밀사로서 연루되어 영흥도(靈興島)에 유배되었다.[2]

1288년(충렬왕 14) 9월에 아들 채우(蔡禑)가 동진사(同進士)의 수석[同進士頭]으로 급제하였는데, 충렬왕이 재상(宰相) 채인규의 아들을 병과로 올려 합격시켰다.[3]

1289년(충렬왕 15)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로 있을 때 딸을 원나라(元) 승상 상가(桑哥, 셍게)에게 시집보냈다.[4][5]

도첨의중찬(都僉議中贊)으로 치사(致仕)하였고, 1303년 원나라 사신에게 오잠(吳潛)의 치죄를 주청하기도 했다.

1303년 음력 10월 28일(양력 12월 7일) 졸(卒)하였다.[6] 시호는 양정(良靖)이다.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