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蔡禑, 미상 ~ 1316년 7월 20일(음력 7월 1일)[1])은 고려의 관리이다. 본관은 평강이며, 채인규의 아들이다.[2]

생애편집

1288년(충렬왕 14년)에 동진사(同進士)에 수석으로 과거에 급제했다.[3]

1299년(충렬왕 25년)에 감찰사(監察史)로 있을 때 좌창(左倉)에서 관리들의 녹봉 지급을 감독했는데, 어떤 내수(內豎)가 쌀 몇 곡(斛)을 나인들에게 실어다주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채우는 "오늘 지급하는 것은 부위(府衛)에서 근무하는 관리들의 녹봉으로 이것을 거두어가다가 나인에게 주면 주상의 덕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거절했다. 이에 왕은 노해서 그를 바다의 섬으로 유배를 보냈다.[4]

1310년(충선왕 2년)에는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로 임명되었다.[5]

1311년(충선왕 3년)에는 밀직사(密直使)로 임명되었다.[6]

1312년(충선왕 4년)에는 삼사사(三司使)가 되었으며, 원나라로 파견되어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게 했다.[7]

1316년(충숙왕 3년) 7월 20일(음력 7월 1일)에 사망했다.[1]

참고 자료편집

  • 《고려사》
  • 〈채인규 묘지명〉(김용선 엮음, 《역주 고려 묘지명 집성 (개정3판)》, 한림대학교출판부, 2021에 수록됨)

각주편집

  1. 《고려사》 권34, 〈세가〉34, 충숙왕 3년(1316년) 7월 1일(신축)
  2. 1남 9녀 중 유일한 아들이다. 〈채인규 묘지명〉을 참조할 것.
  3. 《고려사》 권73, 〈지〉27, [선거1], 과목(科目)1, 충렬왕 14년(1288년) 9월
  4. 《고려사》 권106, 〈열전〉19, 추적 부 채우; 《고려사》 권31, 〈세가〉31, 충렬왕 25년(1299년) 9월 8일(병술)
  5. 《고려사》 권33, 〈세가〉33, 충선왕 2년(1310년) 9월 11일(을유)
  6. 《고려사》 권34, 〈세가〉34, 충선왕 3년(1311년) 4월 21일(임술)
  7. 《고려사》 권34, 〈세가〉34, 충선왕 4년(1312년) 2월 1일(정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