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창

최경창(崔慶昌, 1539년 ~ 1583년 음력 3월[1])은 조선의 문신이자 시인이다. 자는 가운, 호는 고죽, 본관은 해주이며, 사후 이조판서증직되었다. 이민서는 그의 생손(甥孫)이다.[2]

생애편집

1568년(선조 원년)에 문과에 급제했다.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쳐 1582년(선조 15년) 종성 부사를 거쳐 1583년 (선조 16년) 방어사의 종사관에 임명되어 서울로 올라오던 도중 사망하였다.[1]

일화편집

기생 출신의 첩 홍랑[3]과 시문을 교유한 일화[4]가 유명하다. 시를 잘 지었으며 피리도 잘 불었다. 어려서 영암 바닷가에 살 때 해적의 무리에게 포위되자 퉁소를 구슬프게 불었는데, 그 연주법이 너무 뛰어나 해적들은 신이 부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모두 흩어져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1]

조선 중기 팔문장계편집

문장에 뛰어나 이이, 송익필, 이달, 최립, 백광훈, 이산해, 하응림 등과 함께 팔문장계로 불렸다.[1]

저서편집

참고 자료편집

각주편집

  1. 박세채, 《남계집》 권12, 고죽시집 후서
  2. 이민서, 《서하집》 권12, 최경창의 고죽집 발문[崔孤竹集跋]
  3. 선조실록, 선조 9년(1576) 5월 2일(갑오) 2번째 기사; 선조 12년(1579) 6월 8일(임오) 2번째 기사
  4. 남학명, 《회은집》 권5, 잡설, 사한(詞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