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전투한국 전쟁 초기인 1950년 8월 5일부터 9월 19일까지 유엔사령부와 북한군 사이에서 일어난 교전으로, 대한민국의 마산시낙동강 인근에서 벌어졌다. 낙동강 방어선 전투의 일부이며, 마산에서 전투가 일어나고 있을 때 인근에서도 크고 작은 교전이 계속 일어났다. 한 달이 넘게 지속되었던 이 전투는 많은 수의 미국 육군(US)이 조선인민군(KPA) 2개 사단의 계속되는 공격을 막고 격퇴할 수 있게 하며 UN의 승리로 끝났다.

마산 전투
부산 교두보 전투의 일부

마산 전투 당시 촬영된 전차
날짜1950년 8월 5일 - 9월 19일
장소
교전국

유엔 유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지휘관
미국 윌리엄 B. 킨 방호산
백낙칠
군대

미국 미 제25보병사단

  • 제24보병연대
  • 제27보병연대
  • 제35보병연대
  • 제5보병연대전투단
대한민국 대한민국 해병대[1]
대한민국 대한민국 경찰[2]
제6사단
제7사단
병력
~15,000명 20,000
피해 규모
1,057명 사망
3,085명 부상
20명 실종
11,000명 사망과 이탈
3,000명 포획

부산 교두보의 최남단에서 활동 중이었던 미국의 25보병연대는 인근 서북산을 거점으로 하여 24보병연대와 5보병연대전투단, 그리고 시의 서쪽에 위치한 남강을 근거지로 하는 35보병연대를 중심으로 한국의 마산시 주변에 연대를 배치하였다. 6주간 이어진 전투 내내 조선인민군의 제6사단제7사단은 유엔군을 돌파하고 부산을 공격하기 위하여 25사단의 연대를 공격하였다.

마산 전투 당시 논 속에 매복한 국군의 모습

마산에서 이뤄졌던 유엔군의 초기 반격은 조선인민군의 남진을 막는 데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 뒤 이어진 전투에서 35보병연대는 남강 전투에서 조선인민군을 격퇴할 수 있었고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하지만 전투산 전투함안 전투에서 24보병연대가 매우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고, 25보병연대는 조선인민군에 대항하기 위해 예비군을 소집하였다.

킨 특수임무부대 편집

킨 특수임무부대(Task Force Kean)는 한국 전쟁 당시 1950년 8월 6일부터 8월 12일까지 경남 진주에서 7일간 전개된 미 제 25사단장 소장 윌리엄 B. 킨(Willian B. Kean)의 이름을 따서 만든 특수임무부대로 진주 탈환 작전을 펼쳤다.

  1. 미 제25보병사단 배속
  2. 미 제25보병사단 배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