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유엔사령부(United Nations Command (UNC)) 혹은 국제연합군사령부한국 전쟁을 계기로 설립된 유엔군사 작전사령부이다. 주한 미군의 사령관이 겸직한다.

Picto infobox military.png
유엔사령부
United Nations Command
UNC 겸 ROK-US CFC을 방문한 힐러리 국무장관과 군인들, 2009년 2월 20일 촬영
UNC 겸 ROK-US CFC을 방문한 힐러리 국무장관과 군인들, 2009년 2월 20일 촬영
활동 기간 1950년 7월 24일 ~ 현재
국가
종류 사령부
명령 체계 주한 미군
본부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 기지
별명 UNC
유엔군
       하늘색, 하양
참전 한국 전쟁

역사편집

자유 진영 중 한국 전쟁에 동참한 참전 16개국 등의 군대를 통솔하기 위해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1950년 7월 24일 도쿄에서 유엔사령부 총본부가 설립되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 27일에 유엔사령부의 전력은 총 932,964명으로 가장 많았다. 1957년에 유엔사령부는 미국 제8군과 함께 용산기지로 이전하였다. 사령부가 옮겨갈때, 일부 소규모 부대가 일본에 남아 후방사령부가 되었고 캠프 자마에 주둔하다가, 2007년 11월 2일 요코타 공군기지로 옮겨갔다.

중화인민공화국유엔 총회 결의 제2758호에 상임이사국이 되면서 공산진영과 이들에 동조하는 비동맹 국가들이 계속 UN군사령부를 해체하기 위해 노력을 하였다. 1974년 제29차 총회에서 한국문제를 둘러싼 표대결은 계속되어 자유 진영을 중심으로 남한 측이 상정한 한반도 평화통일촉진을 위한 남북대화 재개 촉구내용의 결의안은 채택되었으나, 북한을 위시한 공산 진영 측이 비동맹 세력의 도움을 받아 상정을 시도하였던 외국군 철수와 유엔군사령부의 해체를 요구하는 결의안은 정치위원회에서 부결되었다. 1975년 8월 페루에서 개최된 비동맹 외상회의에서 베트남과 북한이 비동맹 회원국으로 가입하기로 결정됨으로써, 비동맹내 좌익세력의 영향력이 최고조에 달하였고 이를 배경으로 1975년 제30차 유엔총회에서 남·북한 지지세력간 일대 외교 대결이 전개되었다. 1975년 9월 22일 제30차 유엔총회에서 남한 측은 남북대화의 계속 촉구, 휴전협정 대안 및 항구적 평화 보장 마련을 위한 협상 개시 내용의 결의안을 제출하였고, 북한측도 유엔군 사령부의 무조건 해체, 주한 외국군 철수, 휴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 대체 등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상정하였다. 상기 양 결의안이 표결에 부쳐진 결과 우리측 결의안 (제3390 A호)과 북한측 결의안(제3390 B호)이 동시에 통과됨으로써 유엔의 한국문제에 관한 해결기능이 한계에 도달하였음을 보여주었다.[1] 그 예 중 하나는 '타방 직접 관계 당사자들이 정전협정 유지를 위하여 상호 수락할 수 있는 대안에 동의한다면, 미국정부는 1976년 1월 1일자로 유엔군사령부를 종료할 용의가 있음이라는 '1975년 6월 27일자 미국정부의 안보리의장앞 공한'이다.[2]

유엔사는 1978년 한미연합군사령부에 한국군과 주한 미군에 대한 지휘권을 넘긴 이후 군사정전위원회의 가동, 중립국 감독위원회 운영,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경비대대 파견 및 운영, 비무장지대(DMZ) 내 경계초소 운영, 북한과의 장성급 회담 등정전협정과 관련한 임무만 맡고 있다.[3]

조직편집

지휘부편집

부대편집

기구편집

시설편집

한국 전쟁 당시 유엔군 참전국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보관 된 사본”. 2017년 2월 2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7년 2월 20일에 확인함. 
  2. 이시우 (2002년 11월 19일). “<특별기고> 유엔사는 왜 아직도 유엔총회의 해체결의를 이행하지 않고 있나(75매)”. 통일뉴스. 2019년 5월 12일에 확인함. 
  3. “주한 유엔군사령부”. 시사상식사전. 2019년 5월 12일에 확인함.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