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보라 화산(인도네시아어: Gunung Tambora)은 인도네시아 숨바와섬 북부에 있는 높이 2,821m의 활화산이다. 백류석(白榴石) 베이사나이트와 백류석 테플라이트(모두 알칼리 화산암)를 주로 하는 성층화산이다. 오랜 휴식 후, 1812~1815년에 분화했다. 가장 최근의 분화는 1967년이다

탐보라산
1815년 대분출로 형성된 칼데라
최고점
고도2,722 m (8,930 ft)
돌출높이2,722 m (8,930 ft) 위키데이터에서 편집하기
지리
위치인도네시아 숨바와섬
지질
산 형태성층 화산
최종 분화1967년

세계사를 바꾼 화산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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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년 4월 지수 7로 대폭발을 하여, 일반적인 플리니식 분화보다 거대한 울트라-플리니식 분화가 일어났고 화산쇄설류는 화산 근처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갔다. 대폭발로 높이 4,000m 이상이나 되었던 산체(山體)의 상부 1천 470m가 날라가 탐보라산의 높이가 4,200m에서 2,730m로 낮아져 현재의 높이로 되었고 지름 6∼7km의 칼데라가 생겼다. 화산에서 나온 약 150억 톤으로 추정이되는 화산재는 인도네시아 전역을 뒤덮었고 성층권까지 뚫고 올라가 전 세계에 퍼졌고 인근은 화산재로 인해 3일 간 어두웠다.

이 당시의 분화는 커다란 인명 피해를 불러왔다. 사망자 수는 무려 92,000명에 달했는데, 1만 명은 화산에 의해 즉사, 나머지 8만 2천 명은 질병과 굶주림에 의하여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화산재가 인도네시아의 다른 화산들과 전체를 뒤덮었다. 이날의 분화는 최악의 화산 폭발로 기록되고 있으며, 산 정상부가 날아가 칼데라가 생겼다

탐보라 화산은 152년 동안 잠잠하다가 1967년부터 다시 분화를 시작, 1987년에 완전히 끝났다.

이 분화의 규모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다르나, 최대는 분출물 총량 약 150㎦로 세계 최대의 분화이며 분화의 총 에너지는 1027erg(에르그)로 계산된다. 폭발음은 1,500km 떨어져 있는 지역까지 들렸고 500km까지 화산재가 쏟아졌다. 화산전문가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자연재해 가운데 하나로 기록된 탐보라 화산 폭발의 위력을 히로시마에 투하했던 원자폭탄 17만 개가 동시에 폭발한 것과 맞먹는다고 묘사했다. 탐보라 산 폭발 이후 전 세계의 평균 기온이 약 5도 낮아졌다. 19세기에선 가장 강력한 화산 폭발이었다. 토바호 다음으로 가장 큰 폭발을 한 것이다. 지금은 정상에 칼데라가 있는 거대한 성층 화산으로, 아직도 활동중이다

화산에 의한 기후변화로 잘 알려져 있다.

화산폭발로 인한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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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보라 화산 폭발 당시 화산쇄설류로 인하여 숨바와섬 인구 12,000명 가운데 대부분이 사망하였고 생존자는 단 26명 뿐이었다. 인도네시아 언론은 1815년 당시 탐보라 화산 폭발과 관련 직접 피해로 숨진 주민만 7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보도했다.[1]

막대한 양의 화산재는 대류권을 넘어 30~40㎞의 성층권으로 올라가 지구 주위를 돌면서 태양에너지를 차단해 지구의 기온을 낮췄고, 인도네시아뿐만 아니라 유럽과 한반도까지 영향을 미쳐 이상기후와 흉작의 원인이 됐다. 화산 폭발 이듬해인 1816년은 유럽인들에게 '여름이 없었던 해'로 기억된다. 1816년, 뉴잉글랜드와 캐나다에서는 농작물이 서리 피해를 입으면서 심각한 식량부족 사태가 일어났다. 유럽의 상황은 더욱 심해 추운 날씨와 폭우 탓에 기근이 만연했다. 프랑스와 스위스에서는 식량 폭동이 일어났다. 아일랜드에서는 1816년 여름의 153일 중 142일 동안 차가운 비가 쏟아졌고 6만 5000명이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죽어갔다. 이 전염병은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퍼졌고 결국 2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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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성철 (2015년 4월 10일). “인니 탐보라 화산 대폭발 200주년…관광지로 부활”. 2021년 5월 20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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