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도르 뒤부아
프랑수아 클레망 테오도르 뒤부아(François Clément Théodore Dubois, 1837년 8월 24일 ~ 1924년 6월 11일)는 프랑스의 작곡가, 오르가니스트이자 음악 교육가이다.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5/5e/Theodore_Dubois.jpg/220px-Theodore_Dubois.jpg)
뒤부아는 Marne의 Rosnay에서 태어났다. 그는 Reims 성당의 성가대 지휘자인 Lousi Fanart로부터 음악을 배웠다. 파리 음악원에 들어가서 앙브로즈 토마에게 작곡을 배웠다. 1861년에 로마대상을 수상하였다. 1868년에 성 마들렌 교회의 성가대 지휘자가 되었고, 1871년에는 세사르 프랑크의 후임으로 성 크로틸드 예배당의 오르가니스트가 되었다. 1877년에는 다시 성 마들레느 교회로 돌아가 카미유 생상스의 후임 오르가니스트가 되었다. 1871년부터 파리 음악원의 교수가 되었고 그의 제자 중에는 폴 뒤카, 제오르제 에네스쿠, 알베릭 마냐르(Albéric Magnard: 1865~1914) 등이 있다.
1896년에 토마의 뒤를 이어 파리 음악원장이 되었다. 하지만 모리스 라벨의 로마대상 수상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1905년에 로맹 롤랑에게 비판을 받아 사임해야만 했다. 가브리엘 포레가 후임을 맡았다.
뒤부아는 많은 오페라, 오라토리오와 세 개의 교향곡(바단조, 라장조(제2번), 가단조(제3번))을 작곡했다. 그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오라토리오 《Les sept paroles du Christ》(1867)이다. 하지만 현재 그의 작품이 연주되는 일은 거의 없다. 한편 그의 음악교재가 더 널리 쓰이는데, 《대위법과 푸가 교본(Traité de contrepoint et de fugue)》과 《화성학 교본(Traité d'harmonie théorique et pratique)》이 현재에도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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