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필 드 비오
테오필 드 비오(Théophile de Viau, 1590~1629)는 프랑스의 시인이자 극작가이다. 동시대 작가 프랑수아 드 말레르브보다도 더 널리 읽혔음에도 불구하고 17세기 후반의 고전주의 작가들에게 비판받아 잊혀졌으며, 후대에 와서야 바로크와 리베르탱 계열의 작가로 재평가받았다.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9/90/Daret_-_Th%C3%A9ophile.png/220px-Daret_-_Th%C3%A9ophile.png)
잠시 루이 13세의 비호를 받기도 했으나 일생동안 추방, 옥살이, 사형선고 등을 겪었는데, 이는 예수회를 풍자하는 작품을 쓰고, 그 성품이 동성애적, 반종교적이라는 죄명하에서였다. 그러나 이러한 탄압은 사상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알력에 기인한다는 것이 현대의 주된 해석이다.
작품관
편집비오는 리베르탱, 즉 자유사상가였으며, 고전주의의 기반을 닦은 동시대의 말레르브와는 달리 고전주의 문학의 속박을 싫어했다. 고전 작가들의 작품은 당대에는 새로운 것이었으나, 동시대인들은 낡은 문학만을 하고 있다며, 고전문학에 반대하며 '자연스럽고 쉬운' 문체로 창작할 것을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