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

다른 사람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

연민(憐憫/憐愍)은 다른 사람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상대의 슬픔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감정이기도 하다.

공포와 연민 편집

공포와 연민(恐怖와憐憫)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비극을 경험하는 요소이다. 인간의 내면에서 공포와 연민이 일어나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극의 등장인물을 동정하여 비극을 느낀다고 하였다.

거미줄 편집

의상대사화엄사상을 정립한 것으로 존경받는데 이는 마치 거미줄의 한편에서 신음하는 괴로움이 다른 반대편 거미줄에서도 그 고통이 전해지는 것처럼 이 세상이 거미줄의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짜여 있어서 그 어느 하나라도 홀로 있거나 저혼자 일어난 일은 없으며 이 모두가 연관되어 끝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로의 원인과 결과로 얽히고 섥혀있는바 자신의 욕망을 위해 악을 선택하기보다는 서로에게 연민을 갖고 어렵지만 선을 베푸는 것이 결국 모두를 위해 선한 곳으로 만들 수 있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평화롭게 함께 살 수 있는 길이라는 맥락의 언급을 한 바있다.[1]

연민 편집

남을 위한 선한 행동으로서의 연민에 대해서 주역에서 이를 언급한 바있다.

積善之家,必有餘慶, 積不善之家,必有餘殃。(주역 곤 문언전)[2]
선을 쌓는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의 여유가 있는 바인 것이다. 선행을 행하지 못하여 선이 쌓이지 않으면 반드시 넘치는 재앙이 있는 것이다.

이는 '받은 선행보다 준 선행이 많으면 남는 선행이 있고 받은 악행보다 준 악행이 많으면 남는 악행이 있다. 남는 것이 적으면 자신에게서 그치나 남는 바가 크면 세상에 미친다'는 맥락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의 연민 편집

프로테스탄트이자 청교도토머스 굿윈그리스도를 연민의 표상으로 제안한바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이 인류사적으로 유일한 십자가 사건에서 확인되는 바와같이 지극히 온전하고 연민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묘사는 사랑으로 표현되는 보다 더 상대방의 감정을 같이 느끼는 공감능력을 보여주는 그리스도로 본 점에서 인성도 그 결정성이 얼마나 이타적으로 최고조에 이르는 연민의 감정으로 가능할 수 있는지를 잘 언급하고 있다.[3][4]

같이 보기 편집

참고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