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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살 사건 ====
[[1930년]] [[1월 24일]] 중동철도선 산시역(山市驛) 부근 정미소에서 [[고려공산청년회]]의 회원 김봉환 일명 김일성 -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는 다른 인물임. *관련기사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7286)- 의 사주를 받은 공산당 주중청년협회 회원 [[박상실]](朴尙實) 등이 쏜 총격을 받고 피살되었다. 김좌진은 사망하기 직전 “할 일이…. 할 일이 너무도 많은 이때에 내가 죽어야 하다니. 그게 한스러워서….”란 말을 남겼다. 장례식은 한족총연합회와 현지 교포들에 의해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그의 장례에 참석한 중국 사람들은 고려의 왕이 죽었다고 애도하였다. 그의 아들 [[김두한]]은 그때만해도 아버지인 김좌진이 [[친일파]]의 손에 사망한걸로 알고있었다.
 
[[1933년]] 경성에 있던 부인 [[오숙근]]이 일제를 피해 그의 시신을 찾으러 만주로 다시 가서 상자에 김좌진의 유해를 위장하여 반입, [[충청남도]] [[홍성군]] 서부면 이호리에 밀장한 뒤 [[1957년]] [[김두한]]에 의해 지금의 장소로 이장 되었다. 이듬해 사망한 부인인 [[오숙근]]은 남편 김좌진과 함께 합장(함께 묻히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