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노 미후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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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일본기]](續日本紀)》의 졸전(卒傳)에 따르면, 그는 총명하고 예민한 성품이었고 많은 책을 독파하였으며 책을 저술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당대에 이소노카미노 야카쓰구(石上宅嗣)와 함께 「문인의 으뜸(文人の首)」으로 불렸다고 야카쓰구의 졸전에는 전하고 있다.
 
젋었을 때는 승려였던 경력도 있었으며, [[신라]]의 승려 [[원효]](元曉)가 지은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을 읽고 감탄한 나머지, [[호키]](寶龜) 10년([[779년]])에 일본을 방문한 신라 사신단의 판관(判官) 설중업(薩仲業)이 원효의 손자라는 사실을 알고 그에게 한시를 지어주기도 하는 등, 외전(外典)이나 한시(漢詩)에도 뛰어났다. 그의 한시 5수가 《경국집(経國集)》에 실려 있으며, 현존하는 일본 최고(最古)의 한시집(漢詩集) 《회풍조(懐風藻)》의 찬자로 보는 설도 있다. 또한 《[[일본서기]](日本書紀)》의 주석서인 《석일본기(釋日本紀)》에 인용된 《사기(私記)》에는 [[진무 천황]](神武天皇)에서 [[겐쇼 천황]](元正天皇)에 이르는 역대 천황(고분 천황弘文天皇과 [[몬무 천황]]文武天皇을 제외)의 중국풍 시호(諡號)를 모두 찬진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호키]](寶龜) 10년([[779년]])에는10년에 당나라에서 도래한 승려 간진(鑑真)의 전기(傳記)인 《당대화상동정전(唐大和上東征伝)》을 저술하였다. 《속일본기》 전반부 편집에도편집도 미후네가 관여했다고 여겨진다.
 
《일본고승전요문초(日本高僧傳要文抄)》에 『엔랴쿠 승록(延曆僧録)』이 지은 「담해거사록(淡海居士錄)」이 일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