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둔자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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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 ==
만주지방에서는 3·1운동 이후 고조되던 항일 열기를 이어받아 무력으로 일제와 싸우려는 분위기가 확산되어갔다. 이때 만주 지역에는 크고작은 독립군이 조직되었고, 동만주지방의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 안무(安武)가 이끄는 국민회군, 최진동(崔振東)이 지휘하는 군무도독부군은 [[1920년]] 초부터 서로 연결, 연합하여 활동하였다. 삼둔자 전투에서의 첫 승리는 만주 독립군들로 하여금 사기를 올려 곧이어 벌어진 [[봉오동 전투]]에서 승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일본군은 [[1919년]] [[3.1 운동]] 이후 독립군의 국내 진입전과 국경지대에 출몰하는 독립군의 활발한 활동에 대해 이들을 위협 세력으로 간주하고 방비책을 강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강양동의 전투는 일본군이 독립군 토벌에 나서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