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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당선M (T · C) 2013년 1월 20일 (일) 12:28 (KST)

인터위키 추가 방법 알림편집

인터위키 추가 방법이 바뀌었습니다. 위키백과:인터위키를 참고하여 인터위키 추가 방법을 숙지해 주십시오. 이미 새로운 방식으로 인터위키가 추가된 상태에서 오래된 방식의 인터위키 추가 방법을 수행하신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Ykhwong (토론) 2013년 3월 21일 (목) 23:12 (KST)

토막글은 분류 아래에 놓지 않습니다. 바깥 고리와 주석 단락 등의 위치 또한 권장되는 편집 스타일이 있습니다. 위키백과:편집 지침/구성을 참고해 주세요. --Ykhwong (토론) 2013년 3월 21일 (목) 23:15 (KST)

재차 말씀 드립니다. 백:편집 지침/구성에 따른 스타일을 따를 것을 권장하며(순서: 바깥 고리 단락을 아래에 주석이나 참조 단락을 바깥 고리 단락 위에 올려 주시되) 주석이나 참조 단락 아래에는 <references/>를 추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기여를 확인해 주세요. --Ykhwong (토론) 2013년 3월 24일 (일) 11:04 (KST)

분류 안내편집

고대의 말은 분류:말 대신 분류:고대 말 분류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 ChongDae (토론) 2013년 3월 28일 (목) 12:49 (KST)

감사합니다. -- Almust (토론) 2013년 3월 28일 (목) 12:50 (KST)

분류:기상 악화편집

해당 분류의 인터위키가 있다면 추가해주세요. 위키백과:인터위키를 참고해주세요.--A. W. ROLAND ː <RECENT> 2013년 3월 31일 (일) 19:55 (KST)

토막글편집

"토막글"이라는 의미는 짧은 내용을 담고 있어 앞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문서를 가리킵니다. 한 문서에는 최대 2개의 토막글만 추가할 수 있습니다. 한 문서에, 그것도 많은 내용이 포함된 문서에 토막글 틀을 심지어 3개씩이나 추가하신 것을 자주 확인하여 말씀 드립니다. 과거에 토막글 남용에 대하여 많은 문제들이 제기되어 왔고 (비록 합의에 이르른 것은 아니지만) 토막글 남용이나 문서의 가시도와 관련하여 토막글 틀을 없애자는 의견까지 나온 바 있습니다. 따라서 토막글 틀을 사용하려면 꼭 필요한 곳에만 사용하실 것을 부탁 드립니다. 토막글을 1개, 2개 추가하는 방법, 또 이와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위키백과:토막글을 참고해 주세요. --Ykhwong (토론) 2013년 4월 3일 (수) 16:07 (KST)

대한민국 여성부 문서와 관련해서편집

안녕하세요. Idh0854 (토론)님이 대한민국 여성부 문서를 되돌리기한 것에 대해 화가 나셨다고 해도 상대방이 토론을 요구한 이상 받아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위키피디아는 누구에게나 편집권이 보장되므로 그로 인해서 충돌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럴 때는 토론을 통해서 풀어나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Idh0854님의 토론방 사용자토론:Idh0854#대한민국 여성부 문서와 관련해서에 참여하셔서 자신의 의사를 확실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Sjsws1078 (토론) 2013년 4월 6일 (토) 07:58 (KST)

여성부 문서를 되돌리기 하는 것보다 대한민국 내무부 문서와 대한민국 건설부 문서가 존재하는데도 사용자:Idh0854님은 자신의 주장만 고집하며 다른 사용자들의 편집을 무시하고 독단적인 태도를 보이는 점이 문제입니다. -- Almust (토론) 2013년 4월 6일 (토) 11:39 (KST)

총무처하고 대한민국 국무원 사무처, 대한민국 국무원 사무국이 더 있었네요. -- Almust (토론) 2013년 4월 6일 (토) 11:43 (KST)

일단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제외하고 일부만 복원하였습니다. 이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상진화 Sangjinhwa (토론) 2013년 4월 6일 (토) 17:23 (KST)

문서를 편집하실 때편집

허근욱이라는 문서에다가 굵은 글씨로 되어있던 표제어 부분과 문서 마지막 항목에 있던 주석까지 이런 식으로 제거하셨는데 문서 첫 머리에 있던 표제어 부분을 원래 굵은 글씨로 표시하는 것이고 주석이 달려있을 경우에는 <references/> 라는 태그를 추가하는 것입니다.--121.67.254.4 (토론) 2013년 4월 12일 (금) 20:01 (KST)

문서 맨 뒤에 <references/>라는 태그는 삭제하지 말고 남겨두어야 합니다. 만약 그 부분을 삭제하면 다음과 같은 오류가 발생합니다.
인용 오류: <ref> 태그가 존재하지만, <references/> 태그가 없습니다.
참고하세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3년 4월 14일 (일) 02:39 (KST)

로버트 저메인 토머스편집

이 사람의 죽음이 개신교 선교활동에 의한 순교냐, 동승한 배의 선원들과 함께 단순히 살해된 것이냐에 대해 엄연히 한국내에서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개신교계와 역사학계의 입장이 판이하게 다르며 해당 문서에도 출처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백:종교중립에 맞추어 편집한 타 사용자의 기여를 아무런 부연설명 없이 되돌리기하는 것은 자제해 주세요. --월/남/스/키/부/대 (이야기·발자취·편지) 2013년 4월 14일 (일) 21:11 (KST)

내각사무처 공보실장편집

'대한민국 내각사무처' 문서에 공보실장이라는 문단을 새로 만드셨던데요, 제가 찾아보니까 원충연 대령은 국가재건최고회의 대변인격인 공보실장으로 임명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세히 찾아볼 시간이 없어서 다 뒤져보지는 못했지만 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대변인이 '내각사무처 공보실장'이라는 직함을 가졌다고 나와있는 출처(기사 등)를 보여주실 수 있으신지요? -- Sjsws1078흑메기 (토론) 2013년 5월 20일 (월) 19:26 (KST)

제가 찾아보니 국가재건최고회의법 제22조에 국가재건최고회의에 공보실을 두며 공보실장 1인을 둔다고 규정되어있는데 혹시 이 부분과 내각사무처 공보실장이 같은 직함인가요? -- Sjsws1078흑메기 (토론) 2013년 5월 20일 (월) 19:46 (KST)

국가재건최고회의 공보실은 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찾아보도록 하지요. -- Almust (토론) 2013년 5월 20일 (월) 19:49 (KST)

위안부편집

위안부 (동음이의)위안부 이동처리를 요청합니다. 부적절 하군요.

아니요 그 말이 아니고 위안부 (동음이의)라는 항목 내용을 위안부로 옮기라는 말입니다. --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61.252.233.213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프랑스군 위안부편집

Bordel은 곧 brothel, 매춘소를 가리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Bordel militaire de campagne"가 "프랑스군 위안부"(1:1 한국어 대응 제목)라는 직접적인 출처를 찾을 수가 없는데 작성자로서 출처를 제공해 주실 수 있나요? "강제 징집" 등의 문구에 대한 출처를 제공해 주신 문헌만으로는 백:확인 가능에 의거하여 직접 확인이 어려운데, 쪽 번호를 제공해 주신다면 확인이 쉬워지리라 생각합니다. 또, 문서 제목의 경우 일본군 위안부에서 위안부로 옮기는 것은 이미 총의로 결정이 났었는데(토론:위안부토론:대한민국 군 위안부로 이어지는 링크) 다시 문서 토론에 특별한 언급도 없이 바로 일본군 위안부로 옮기신 것에 대해서는 조금 불쾌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Ykhwong (토론) 2013년 5월 26일 (일) 22:29 (KST)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7112900209203019&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7-11-29&officeId=00020&pageNo=3&printNo=10831&publishType=00020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107170032920701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1-07-17&officeId=00032&pageNo=7&printNo=7935&publishType=00020

미군 위안부입니다. 타 군에서도 위안부의 존재가 있던 것이 확인되었으니 일본군 위안부만을 위안부로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군인을 상대로한 매춘부이기 때문에 프랑스 매춘부 라고 번역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Almust (토론) 2013년 5월 26일 (일) 22:34 (KST)

저는 미군 위안부에 대해서는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왜 이 단락을 썼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Ykhwong (토론) 2013년 5월 26일 (일) 22:36 (KST)
오해가 있을까봐 다시 말씀 드립니다. 저는 프랑스 매춘부로 옮기자는 의견을 둔 적이 없습니다. militaire de campagne라는 제목이 있기 때문입니다. "해당 문구와 1:1 대응하는 한국어 제목이 프랑스군 위안부"라는 출처가 없어서 출처를 요구했습니다. 둘째, 프랑스군 위안부에 제공해주신 참고문헌은 쪽 번호가 제공되지 않아 책을 통째로 읽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백:확인 가능에 따라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쪽 번호를 요구한 것이고요. 이 토론에 제공해 주신 것은 신문기사인데 갑자기 뜬금없이 미군 위안부가 왜 나오나요? 셋째, 문서 토론에 진행 중인 상황을 읽어보지도 않으시고 (기존 총의가 있었음에도 불구), 문서 토론에 제목 변경에 대한 어떠한 조그마한 언급도 없이 문서 제목을 이동한 것에 대한 저의 불쾌함을 말씀 드린 것입니다. --Ykhwong (토론) 2013년 5월 26일 (일) 22:41 (KST)
"타 군에서 위안부의 존재가 있던 것이 확인되었으니 일본군 위안부만을 위안부로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라는 의견 또한 Almust님의 유일한 의견이 아닙니다. 기존 토론에서 언급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반적으로 위안부는 일본군 위안부를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타 언어의 인터위키에도 맞는) 문서 제목을 위안부로 하자는 총의가 형성되어 위안부로 문서가 이동된 것입니다. --Ykhwong (토론) 2013년 5월 26일 (일) 22:44 (KST)

부흥부 장관 목록 수정 부탁을..편집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부흥부 장차관 목록도 수정해주실 수 있나요? 2공 시대의 장관 목록이 잘못되어 있어서 수정하려 했는데 힘들어서.. 폐가 안 된다면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 Sjsws1078흑메기 (토론) 2013년 5월 30일 (목) 17:29 (KST)

네 -- Almust (토론) 2013년 5월 30일 (목) 17:41 (KST)

일베 (동음이의)편집

  1. Irbe는 이르베로, 이미 한국어판에는 이르베 해협 문서가 있습니다. 이를 일베 해협이라 주장하는 것은 억지 주장입니다.
  2. 일본의 이루베 사이트는 저명성이 없기 때문에, 한국어 위키백과에는 기술할 수 없습니다.
  3. 각 언어별로 특정 단어를 어떻게 부르느냐는 위키낱말사전에서 할 일이지, 위키백과에서 할 일이 아니기 때문에, 몽골어 기술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4. 과거의 저장소로서의 일베는 저명성이 없기 때문에, 따로 기술할 수 없으므로, 이 역시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일베 (동음이의) 문서는 부적절합니다. --가람 (논의) 2013년 6월 5일 (수) 11:44 (KST)

일본에도 일베라는 유명 사이트가 있습니다. 한국의 일베와는 관련없는 곳입니다. 허위사실도 아니고 이미 존재하는 유명 사이트를 임의로 저명성을 논하십니까? -- Almust (토론) 2013년 6월 5일 (수) 11:45 (KST)
2번에서 이미 언급했습니다. 저명성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기술할만한 가치가 없고, 또한 유명한 사이트라는 것 역시 자의적인 해석일 뿐입니다. 가능하다면, 여기서도 일베식 팩트를 제시해주셨으면 좋겠군요. --가람 (논의) 2013년 6월 5일 (수) 11:46 (KST)
일본의 이루베 사이트는 저명성이 없기 때문에 라는 근거를 먼저 제시해 주십시오? -- Almust (토론) 2013년 6월 5일 (수) 11:47 (KST)
위키백과:확인 가능의 서문 참고. --가람 (논의) 2013년 6월 5일 (수) 11:48 (KST)
증거가 불충분합니다. 그리고 해당 사이트 링크가 있습니다. http://ill-be.cocolog-nifty.com/blog/2007/03/post_5d47.html 내가 알지 못하면 저명성이 없는 곳입니까? -- Almust (토론) 2013년 6월 5일 (수) 11:50 (KST)
위키백과:독자 연구 금지#자신의 연구 성과를 사용하는 것 참고. --가람 (논의) 2013년 6월 5일 (수) 11:51 (KST)
이미 존재하는 사이트가 무슨 연구 성과입니까? 사실을 그대로 알리는 것이 연구 성과입니까? -- 2013년 6월 5일 (수) 11:51 (KST)
위키백과:확인 가능을 여전히 읽지 않으셨군요. 단순히 진실이라는 이유 만으로는 위키백과에 기술될 수 없으며, 작성자는 위키백과:저명성에 따라 저명성을 입증할 의무가 있습니다. --가람 (논의) 2013년 6월 5일 (수) 11:53 (KST)

김대중 문서편집

고의적으로 특정 단체에 유리한 방향으로 수정하는 듯하여, 우려를 금치 못합니다. 그리고 김대중 자신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칭한다고 하는 것과, 그 사람이 평균적인 페미니스트의 기준에 부합하느냐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생각하시어, 편집에 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람 (논의) 2013년 6월 5일 (수) 18:26 (KST)

이제는 고의적으로 특정 단체에 유리한 방향으로 수정하는 듯하여라며 색칠까지 하시는군요. 이런 편파적인 사각을 가지신 분이 롤배커라는 지위를 갖고 계신것이 더 유감입니다. -- Almust (토론) 2013년 6월 5일 (수) 18:27 (KST)
글쎄요, 롤배커라는 기능을 내려놓은지는 꽤 되었습니다만. 그건 그렇고, 김대중 이야기로 넘어가자면, 히틀러가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칭했지만, 그 누구도 히틀러를 사회주의자라고 여기지 않는 것과 같이, 김대중 역시도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했다고 한들, 페미니스트라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가람 (논의) 2013년 6월 5일 (수) 18:30 (KST)
그것은 독자 연구, 독자 판단입니다. 독자 연구를 하시려면 블로그나 카페에서 하세요.-- Almust (토론) 2013년 6월 5일 (수) 18:31 (KST)
위키백과:독자 연구 금지에서 말하는 바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계십니다. 저 정책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제대로 파악해주시기 바랍니다. --가람 (논의) 2013년 6월 5일 (수) 18:32 (KST)
자의적으로 해석하시는 분은 제가 아니라 귀하입니다. 타인의 의견은 들을 의향이 없는 분이니 소모성 토론은 하지 않으렵니다. -- Almust (토론) 2013년 6월 5일 (수) 18:33 (KST)
되묻겠습니다. 제가 위키백과:독자 연구 금지의 어느 부분을 위배하고 있는 지를 한 번 짚어보시기 바랍니다. 이를 짚지 못한다면, 귀하께서는 해당 정책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타인을 매도했다는 것을 시인하는 꼴이 되겠지요. --가람 (논의) 2013년 6월 5일 (수) 18:35 (KST)
출처를 갖고 왔고 그 대로 분류하고 적을 뿐입니다. 함부로 매도하지 마십시오. -- Almust (토론) 2013년 6월 5일 (수) 18:36 (KST)
제가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제가 한국어 위키백과의 어떠한 정책의 어느 부분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였는가를 짚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것을 짚어주신다면, 제가 매도했다고 주장되는 일도 더 이상 없지 않겠습니까? --가람 (논의) 2013년 6월 5일 (수) 18:40 (KST)
책에도 김대중이 스스로 페미니스트라 했고 뉴스에도 부인 이희호씨가 페미니스트라고 했군요. 그렇다면 페미니스트라고 볼 수 없는 근거는 있습니까? 히틀러가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칭했지만, 그 누구도 히틀러를 사회주의자라고 여기지 않는 것과 같이, 김대중 역시도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했다고 한들, 페미니스트라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독자 판단에 독자 연구입니다. -- Almust (토론) 2013년 6월 5일 (수) 18:42 (KST)
역사학자들에 의해, 이후에 평가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서서도 말씀드렸는데, 자신이 모른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귀하께서 주장하신 바가 아닙니까? 그리고, 부인이 평가하는 것이 객관적인 판단입니까? 부인은 회고록을 작성할 수는 있지만, 학자로서 평전을 작성할 수는 없습니다. --가람 (논의) 2013년 6월 5일 (수) 18:45 (KST)
김대중을 옆에서 44년간을 봐 온 이희호가 김대중 평전을 작성 못한다고 볼 이유 있습니까? 누구보다도 김대중을 옆에서 본 사람입니다. -- Almust (토론) 2013년 6월 5일 (수) 18:47 (KST)
그러니까, 감정에 호소하지 마시고, 위키백과의 정책과 지침에 의거하여 말씀하여 주십시오. 저는 현재 귀하께서 하시는 말씀이 위키백과:독자 연구 금지#자신의 연구 성과를 사용하는 것에 위배되기 때문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가람 (논의) 2013년 6월 5일 (수) 18:49 (KST)
그러니까, 감정에 호소하지 마시고 저는 감성에 호소한 적 없습니다. 한쪽으로 몰고 가지 마세요. -- Almust (토론) 2013년 6월 5일 (수) 18:50 (KST)
그렇다면, 정책과 지침에 의거해서 반박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수 없다면, “감정에 치우친” 무조건적인 되돌림은 삼가시기 바랍니다. --가람 (논의) 2013년 6월 5일 (수) 18:51 (KST)
토론하실 마음이 없는 분이니 더는 무의미한 토론은 하지 않겠습니다. -- Almust (토론) 2013년 6월 5일 (수) 18:36 (KST)
지나가다 남깁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여성부를 만드는 등의 행위에서 페미니즘이 옅보인다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여기여기를 읽어보셔도 되겠고, 연세대학교김대중도서관장이면 학자라도 봐도 되나요? 여기에서도 페미니스트라는 언급이 있습니다. 그냥 페미니스트 성향이 있다고라고 써도 될법하네요.--아드리앵 (토론 · 기여) 2013년 6월 5일 (수) 21:26 (KST)
서술하는 것에 대해 뭐라한 바는 없으며, 이미 본문에는 수록이 되어 있기까지 합니다. 제가 문제를 삼는 부분은, 그것을 통해 분류:대한민국의 페미니스트라는 분류를 부착하려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 적어도, 제3자가 참여함에 있어서, 명확하게 맥락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가람 (논의) 2013년 6월 6일 (목) 12:12 (KST)

김대중 문서에 다음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유림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족법을 개정했으며, 대통령에 당선된 후 여성부를 신설했고, 페미니스트 운동가 출신의 한명숙을 초대 장관으로 임명했다." 관련 내용을 조사해 본 결과,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 '페미니스트'로 평가할 수 있고, 또한 해당 분류를 추가해도 될 것 같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3년 6월 7일 (금) 04:18 (KST)

페미니스트 분류에 들어갈 만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구체적으로 정할 필요가 우선하지 않을까요? 페미니즘 철학 사상가이거나, 페미니즘 운동을 한 activist거나 등등. 김대중은 이 둘 중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페미니즘에 호의적 또는 페미니스트인 한명숙을 총리로 임용했다고 그 사람 역시 페미니스트라고 판단하는 건 지나친 비약이 아닐까요. Ø᚛ᚄᚙᚂᚖᚋᚙᚅᚇᚖ᚜ (토론 / 기여) 2013년 6월 8일 (토) 02:21 (KST)

로고교체 참여해주세요편집

안녕하세요? 위키백과:사랑방/2013년 제23주#로고 교체에 참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아드리앵 (토론 · 기여) 2013년 6월 9일 (일) 14:28 (KST)

네. 한번 보고요. ^^-- Almust (토론) 2013년 6월 9일 (일) 14:29 (KST)

부총리 문서편집

부총리 문서는 실제 부총리로 불렸던 경제·교육·과기·통일부총리를 다루는 곳입니다. 정보부장과 안기부장은 단순히 부총리급 대우를 받은 직책일 뿐입니다. 부총리 문서에서 정보부장과 안기부장을 다루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부총리급 예우를 받았던 직위' 문단에 정보부장과 안기부장을 올려놓고서는 부총리 문서에 그 내용을 첨가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덤으로 1공 시절 외무장관이 부총리급 대우를 받으셨다는 출처를 제공하주실 수 있으신지요? -- Sjsws1078흑메기 (토론) 2013년 7월 1일 (월) 15:52 (KST)

예. 외무부장관을 국무총리 외에 수석국무위원으로 임명했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 Almust (토론) 2013년 7월 1일 (월) 15:54 (KST)

최항순, 《발전행정론》 (신원문화사, 2006) 382페이지, 역사문제연구소, 《한국정치의 지배이데올로기와 대항이데올로기》 (역사비평사, 1994) 92페이지 하고 서중석,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웅진지식하우스, 2005) 178페이지 에 외무부장관으로 수석국무위원에 임명되었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그밖에 내각수반을 지낸 허정씨 회고록에도 그와 같은 내용이 언급되어 있는데 허정씨 자서전은 지금 구할 수가 없네요. 이 세 책의 내용으로 갈음합니다. -- Almust (토론) 2013년 7월 1일 (월) 15:57 (KST)

수석국무위원으로 외무장관이 임명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근데 수석국무위원제가 만들어진 것은 55년 정조법 개정 이후부터입니다. 그리고 당시 국회에서 '외무장관이 아니라 내무장관이 수석국무위원을 겸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 것을 볼 때, 수석국무위원은 부총리급이라기보다는 총리급으로 봐야할 것 같습니다. 수석국무위원이 부총리급이라는 증거도 혹시 위의 3권의 책에 나와있는지요? -- Sjsws1078흑메기 (토론) 2013년 7월 1일 (월) 16:10 (KST)
아니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총리급이라는 언급이 어디에도 없는 것으로 보아 수석국무위원(겸 외무부장관)에서 수석국무위원 직은 국무총리나 내각수반과는 분명 격이 다른 것 같습니다. -- Almust (토론) 2013년 7월 1일 (월) 16:16 (KST)
54년에 총리제가 폐지되고 그 이후에 수석국무위원제를 신설한 것이 단순한 우연으로만은 보이지 않네요. 그리고 당시에는 대통령, 부통령, 총리, 장관의 서열순이었던 때입니다. 지금의 잣대로 수석국무위원을 당시에는 존재치 않던 부총리급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까요? -- Sjsws1078흑메기 (토론) 2013년 7월 1일 (월) 16:32 (KST)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5052900329201014&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5-05-29&officeId=00032&pageNo=1&printNo=2895&publishType=00020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507170032920101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5-07-17&officeId=00032&pageNo=1&printNo=2944&publishType=00020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5071700209202016&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5-07-17&officeId=00020&pageNo=2&printNo=9967&publishType=00020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5090400329201024&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5-09-04&officeId=00032&pageNo=1&printNo=2993&publishType=00020

이 부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 Almust (토론) 2013년 7월 1일 (월) 16:36 (KST)

'외무장관직이 겸하던 수석국무위원직을 사라진 국무총리의 후임격이니 대용품이니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다'라는 표현 자체가 당시의 의원들이나 행정부 관료들이 수석국무위원을 사실상의 총리 후임이라고 보고 있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합니다. -- Sjsws1078흑메기 (토론) 2013년 7월 1일 (월) 16:42 (KST)
그리고 여기에서 보듯이 노태우 당시 정무장관에게 부여된 부총리 직함은 국무위원이 특사로 외국을 방문할 때, 부여받는 대외직명으로 사실상의 명예직이라고 보여집니다. 굳이 부총리 문서에 넣을 필요가 있을까요?
행정적으로 그러한 직책으로 임명했다는 증거가 그렇게 존재하는 이상 당연히 삽입해야 된다고 봅니다. 실제 부총리로서 권한을 행사하고 못하고의 여부를 떠나 임명했다는 증거가 존재한다면 배척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 Almust (토론) 2013년 7월 1일 (월) 16:50 (KST)
부총리 문서에 나와있는 경제·교육·과기·통일부총리와 노태우 당시 정무장관이 받은 부총리직은 엄연히 다른 직책입니다. 말하자면 동음이의어라는 개념으로 차라리 '대외직명 부총리'(가제) 같은 문서로 분리시켜야 옳습니다. 애초에 특사로 파견될 때 받은 직책인데 서술해야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Sjsws1078흑메기 (토론) 2013년 7월 1일 (월) 16:54 (KST)
개념이 다르지요. 노태우의 부총리자리가 특사자격으로 받은 부총리가 아니라 특사로 가면서, 대외직명 부총리 자리를 임명받은 것입니다. -- Almust (토론) 2013년 7월 1일 (월) 16:56 (KST)
여기여기에서 보듯이 이 부총리직은 특사로 파견되는 경우에만 부여되는 직책입니다. 행정적으로 아무런 힘도 없는 직책으로 단순한 대외과시용에 불과합니다. -- Sjsws1078흑메기 (토론) 2013년 7월 1일 (월) 17:05 (KST)
제가 보기엔 다른 부총리들과는 상당히 많이 다른 개념으로 보입니다. 차라리 별도의 문단으로 독립시켜서 5공 초에 이런이런 직위가 있었다고 서술하는 편이 훨씬 더 좋아 보인다고 생각됩니다만. -- Sjsws1078흑메기 (토론) 2013년 7월 1일 (월) 17:08 (KST)
문제는 노태우의 부총리직은 경제부총리 통일부총리와 같은 칭호나 실질적인 권한이 없는 부총리이지만, 특사라서 준 자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국무부총리나 정무 부총리가 아닌 부총리로 둔 것이고요. -- Almust (토론) 2013년 7월 1일 (월) 17:11 (KST)
그렇다면 역시 부총리 문서의 하위 문단으로 별도로 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주석 몇 개 붙여넣고요. 하지만 5공 문단에 노태우의 이름을 올리는 것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Sjsws1078흑메기 (토론) 2013년 7월 1일 (월) 17:16 (KST)

토막글 2편집

기나긴 내용의 문서에 토막글이 2개나 달려 있는데, 이렇게 하나 더 추가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토막글에서 이미 토막글은 한 문서에 최대 2개라고 강조하여 말씀 드렸고, 기나긴 내용의 문서는 토막글이 아니라고까지 말씀을 드렸는데도 제 말을 무시하신 것에 대하여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토막글을 과다하게 사용하지 않는다는 총의가 있으므로 이 점 유의 바랍니다. --Ykhwong (토론) 2013년 7월 8일 (월) 19:44 (KST)

다른 뜻 틀편집

제가 다른 뜻이 불필요하다는 이유로 이렇게 다른 뜻을 지웠음에도 얼마 안 지나 Almust님께서 도로 다시 추가하셨음을 확인했습니다. 일반 독자가 윤치호에 들어간 뒤 윤치호 (동음이의)를 클릭하여 윤치호 (1909년)으로 들어올 수 있는 접근성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윤치호 (동음이의)라는 동음이의어 문서가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윤치호 (1909년)에서 굳이 다른 뜻 틀을 사용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만일 10명 이상의 동명이인 문서들이 있다고 하다면 그 10개의 문서들마다 일일이 모두 다른 뜻 틀을 부착하실 생각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사용자토론:Ykhwong/보관 문서/8#델 문서 다른 뜻 제거도 이와 비슷한 경우이므로 참고 바랍니다. --Ykhwong (토론) 2013년 7월 8일 (월) 20:39 (KST)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편집

안녕하세요, 문서에 기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1]의 편집은 되돌렸습니다. 토론:대한민국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프레스바이플 기사의 인용문제에서 이와 관련하여 토론 중이니 참여해주셨으면 합니다. -- Hwangjy9 ( 토론 | 기여 | 편지 ) 2013년 7월 20일 (토) 22:34 (KST)

해명 요청편집

안녕하세요, Almust 님. SRCU에 따라 다중 계정을 사용하신 것으로 확인되어 다중 계정들은 모두 무기한 차단하게 되었으며 본 계정인 Almust 는 임시로 3개월 차단되었습니다. 왜 다중 계정을 사용하게 되셨는지, 사용하신 이유와 해명을 요청드립니다. 말씀해주시는 내용에 따라 차단 기간이 길어질 수도, 혹은 더 짧아질 수도 있습니다. --Sotiale (토론) 2013년 7월 28일 (일) 08:40 (KST)

Geiva
Husege
Rudulic
Tonggarhor
Dogobert0
Commender
Sasuqear
Nuarebos
Losenpert
Lusegg
Gleanhard

이 계정들은 비밀번호를 잊어버려서 방치하고 있습니다. 여러번 시도를 해봐도 기억이 나지 않아서 계속 계정 비번 아래에 영어창이 뜨다보니 그냥 포기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몇개의 ID는 파일 같은 것 업로드할 때 사용하려고 파놓은 계정입니다. 외국어 위키에서는 한 계정으로 파일을 여러개 올려도 도배로 취급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 Almust (토론) 2013년 7월 29일 (월) 14:02 (KST)

 정보해당 사용자는 Global lock 되었습니다.--레비ReviDiscussSUL Info 2013년 7월 30일 (화) 20:21 (KST)
비밀 번호를 한두차례도 아니고 여러번 잊어버릴 수 있나요? 이 부분에 대해서 더 명확한 해명을 들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관인생략 토론·기여 2013년 8월 4일 (일) 17:31 (KST)

사무장의 계정 잠금(Global lock) 조치로 해당 계정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해명을 들을 수 없습니다. 또한 사무장의 계정 잠금 조치는 메타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로컬 위키의 관리자가 처리할 수 없는 바 제 해명 요청을 철회합니다. --Sotiale (토론) 2013년 8월 4일 (일) 17:35 (KST)

이것도 방금 비밀번호를 써봤는데 이상하게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비밀번호를 잊어버린게 아니라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 Almust5 (토론) 2013년 8월 4일 (일) 17:36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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