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비 찰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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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비 찰턴은 [[1954년]] 17세가 되던 해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였다. 당초에는 대기 선수에 불과했지만, [[1956년]]에 주전 자리를 차지하면서 팀의 중심이 되어 1956-57 시즌에 리그 우승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1958년]] [[2월 6일]] [[유러피언컵]] 준준결승전 [[츠르베나 즈베즈다]] 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뮌헨 비행기 참사]]라고 불리는 비행기 사고를 당해 자신이 가장 존경했던 주장인 [[던컨 에드워즈]]를 포함한 많은 팀 동료들을 잃고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이 사고가 일어난 지 불과 2개월 후인 [[1958년]] [[4월 19일]] [[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스코틀랜드 대표팀]]을 상대로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잉글랜드 대표팀]]에서의 데뷔전을 치루었고, 이 경기에서 득점을 성공시켰다. 하지만, 사고를 연상시키는 [[베오그라드]]에서의 [[유고슬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유고슬라비아]] 전의 영향을 받아 그 해의 월드컵까지 오랫동안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그 후에는 정신적으로 회복해 팀의 재건에 공헌하였고, [[1960년대]]에는 자신과 같이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회복한 [[맷 버스비]]와 함께 [[조지 베스트]], [[데니스 로]] 등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장을 맡아 [[1963년]]에는 FA컵을, [[1965년]]과 [[1967년]]에는 당시 잉글랜드 1부 리그에 해당되는 [[풋볼 리그]]에서 우승하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황금기를 구축하였다. 또 개인적으로는 [[1966년]] [[발롱도르]]를 수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