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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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종교와 독립운동 ==
나철은 비밀 결사 조직인 자신회(自新會)를 조직하여 [[을사오적]]으로 알려진 [[이완용]], [[권중현]],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의 다섯 인물의 [[암살]]을 시도했다. 또한 그들을 죽이자는 참간장(斬奸狀)을 돌리기도 했으며, 일본을 방문해 [[고쿄|일본 궁성]] 앞에서 단식투쟁을 하기도 하였다.
 
== 정훈모의 단군교 ==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나철이 교명을 대종교로 바꾸고 만주로 교단을 이동하자 정훈모가 이에 반발하여 단군교라는 교명을 고수하며 교단을 분리·독립하였다. 이 단군교는 단군을 신봉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통치에 순응하였으며, 단군교 교단의 수뇌부에는 [[친일인명사전]]에도 수록된 친일파들이 많았다. <ref>홍희(洪憙), 윤길병(尹吉炳), 최영년(崔永年), 민병석(閔丙奭), 박기양(朴箕陽), 정만조(鄭萬朝), 신석린(申錫麟), 이겸제(李謙濟), 김윤정(金潤晶), 송지헌(宋之憲), 어윤적(魚允迪), 유진찬(兪鎭贊), 윤갑병(尹甲炳) 정두화(鄭斗和), 이대영(李大榮) 등 / 단군교, 《단군교 부흥경략》, 1937</ref> 나철이 교명을 바꾸고 만주로 이동하게 된 계기도 정훈모를 중심으로 한 친일 행위자의 존재로 인한 교단 내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ref>이강오, 〈단군신앙총론〉, 전북대학교, 1968</ref> 1912년에 내분이 일어나 교단이 둘로 나뉘어졌으나 1915년 정훈모가 교단을 재정비하였으며, 1930년에는 시흥에 단군전(檀君殿)을 세우고 본부를 이전하였다. 이후 내분이 이어지고 일제가 소수 종교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자 1936년에 폐교되고 신자들도 와해되었다.
 
== 주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