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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해준분에게.편집

  임의의 친절 반스타
나는 착하기에 이 반스타를 드립니다.--고려 (토론) 2016년 2월 27일 (토) 19:32 (KST)

열심히 하신분에겐 보상[?]이 있어야죠 ㅋㅋ 힘든 위키질에 이런것도 없다면 무슨낙으로 위키질을 하렵니까 ㅋㅋ 그리고 님이 올려주신 한4군 지도 잘봤습니다 ! 한국어 위키백과는 다좋은데 한국 역사에 대한 지도가 적어서리.. 저도 올리고 있지만 ㅋㅋ. 뭐 쨋든 받으세양 ! 선물이에양 !--고려 (토론) 2016년 2월 27일 (토) 19:31 (KST)

진번조선. 동이논문. 신화공정. 인정학회.편집

1. 사기에 진번조선이 나옴에도, 진번막조선을 아예 무시하는 건 이해가 안 되는군요.
진번조선은 인정하시는건가요??
진번막조선을 무시하는 학설 자료는 무엇인가요??

2.동이 논문. 이성규.〈선진 문헌에 보이는 '동이'의 성격〉, 《한국고대사논총》제1집, 1991.는 어디서 보셨나요??
논문 사이트에서 찾지를 못 했는데, 저처럼 어떤 분이 요약하신거 보셨나요??
아니면 오프라인이나 온라인으로 보셨나요?? 전체 자료를 어디서 볼 수 있는지요??
그리고 논문에서 산동쪽을 번조선, 요령쪽을 진(번)조선으로 해석 안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3.중국의 청동기, 신석기 신화는 부각시키면서, 한국의 청동기, 신석기 신화는 축소 은폐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 귀하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동북공정탐원공정아웃 (토론) 2016년 6월 15일 (수) 00:07 (KST)

4.귀하가 주장하시는 학계의 정설은 동북아역사재단 및 어느 학회(한국고대사학회.등등)를 말하는 것인가요??
--동북공정탐원공정아웃 (토론) 2016년 6월 15일 (수) 23:56 (KST)

감사합니다.편집

제가 고대사는 잘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감사를 눌러주시니 ㅎㅎ;; 제가 그냥 대강 넣은거니 문제가 있으면 편집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쓴게 넘나 조잡해서요.--고려 (토론) 2016년 6월 17일 (금) 17:32 (KST)

낙랑군편집

역사 쪽 기여가 많으신거 같은데 한번가서 보시는게 어떨까요?--고려 (토론) 2016년 8월 30일 (화) 22:57 (KST)

총의편집

위키프로젝트토론:인물 전기‎의 총의가 진행중인데 참여점 부탁드립니다.--고려 (토론) 2016년 9월 3일 (토) 17:34 (KST)

욕보셨습니다편집

내가 이제 말하지만 그쪽은 무료 몇년동안 지속되는 반달로 인해 시간상 지적재산상 피해가 있었다. 위키백과를 운운하며 자신의 생업을 훼손하였다.그편집이 고소하여 계속 감사를 표하겠다.어디한번 막아봐라.이건 그쪽이 기여를 한것이고 나한테 개인적인 존경을 사게되었음을 밝힌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7년 6월 16일 (금) 02:09 (KST)

ㅋㅋㅋ 이렇게 참신한 고소미라니ㅋㅋ 감사합니다.--Xakyntos (토론) 2017년 6월 17일 (토) 00:33 (KST)


고조선 지도 저작권 문제편집

고조선 지도 저작권이 있다고 했는데 본인 소유 책에 나와있는 사진 저작권 필요없이 위키백과에 업로드 가능합니다.다 절차대로 분명 내 소유 책에서 나온 사진 올린거라고 쓰고 올린거구요.위키피디아 규정을 한번 보세요.그리고 교과서마다 다르다고 하는데 한국 교육부에선 역사 부분은 통일되어 있습니다.본인이 교육부쪽도 아는 사람이라 잘 알아요.지울 이유는 없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Richeaglenoble (토론) 2017년 9월 12일 (화) 18:37 (KST)


참고로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은 출판사만 다를 뿐 내용은 전국 다 공통이고 똑같다고 합니다.다르면 전학도 못가고 클나요.수고하세요.Richeaglenoble (토론) 2017년 9월 12일 (화) 18:43 (KST)


고조선 지도편집

고조선 지도가 현재 사학계에서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운운하고 있는데 그럼 우리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게 재야사학자들이 자위하는 망상을 배우고 있다는 소리나 마찬가지 아닙니까?중국인 아니에요?한성화교협회학교들도 내가 좀 알고 있는데 그 사람들 다 우리나라 교과서가 인정 안된거라고 믿고 있습니까? 솔직히 고조선 지도가 너무 넓어서 기분나쁜거 아닌가요?당신이 중국인이 아니라고 하기엔 지금까지 해온 행동을 보면 그저 중국인 감정에 조금이라도 스치는 글들은 사서에 나오는데도 지우네요?과연 지금 한사군을 주장하는 젋은 학생들 사학자들도 댁같은 사람을 옹호할까요?전혀 아닙니다.내가 그 사람들하고도 당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그저 당신은 중국계인데 한국인들 원주민이라고 부르면서 열등감에 사로 잡혀서 중국인들이 주장하는 역사관으로 자위(自慰)행위하는 사람 아닙니까?아니면 가난때문에 중국 여성과 결혼했나요?대한민국에 거주하는 2만명의 대만 화교 그리고 4만명정도의 귀화 화교들 100만명에 달하는 중국인들 다 당신같이 생각할까봐 무섭네요.본인은 앞으로 당신같이 대한민국을 좀 먹는 인간들을 처단하고 나설 껏입니다.왜냐면 나한테는 그럴 돈과 재산이 있고 그만큼 대한민국에 기여를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댁같이 대한민국에서 많은 혜택을 받으며 대한민국 사람들의 정서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학자들과 교수들이 지금 점점 우려를 느끼고 있습니다.내가 아는 교수들만 해도 당신같은 행동을 벌이고 공격적인 발언을 일삼으며 전혀 사학에 대해 재대로된 지식도 없는 주제에 사학자들의 정상적인 주장을 중국을 옹호한다고 착각하며 자위행위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 치를 떨고 있습니다.내가 하나 말하죠.지금 이렇게 대한민국에서 반 중국 감정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그쪽이 그런 오해를 일으키며 대한민국 사람들의 정서에 반하는 오해를 만들게 되면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당신의 중국인 동포들만 더욱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언제 한번 꼭 뵙으면 좋겠네요.어떤 사람인지 정말 궁금합니다.본인이 몰상식한 중국인들의 역사 왜곡에 대항하며 나아갈때 당신을 꼭 보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그렇게 맨날 집에서 중국인의 역사를 수호할려고 노력해도 그 행동이 대한민국 사람들의 정서를 해치는 일이 될 뿐이고 결국 결과는 대한민국 사람과 한국 거주 중국인들의 감정 악화일 뿐입니다.좀더 생산적인 일을 하길 바랍니다.당신의 미래를 위해서요.49.254.47.16 (토론) 2017년 9월 15일 (금) 22:39 (KST)


환단 고기에 대하여편집

환단 고기를 추종하는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을 바로 고치는데 사명을 걸었다고 하는데 환단 고기라는 책은 읽어 보았습니까? 환단 고기라는 것 자체가 기자 조선과 같이 전혀 실증적으로 증거를 찾기 힘든것뿐만 아니라 현대에서 쓰이는 글들과 허황적인 이야기가 있기때문에 위서라고 판명된 것입니다. 근데 그쪽이 보통 항상 여기서 하는 행동은 중립이다 말하면서 중국 사서만 인용을 하고 고고학적인 지식도 없고 실증 사학이 뭔지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사학이라는 것은 역사 교수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학 고고학도 역사학인 것입니다.

신채호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신채호가 왜 유명한지 신채호가 무엇을 주장했고 당시 상황은 어떠했는지 한번 공부하길 추천합니다.

일제가 젤 먼저 시행한 것이 대한민국 역사를 식민 역사로 만든 것이며 그것으로 인해 한국인들은 삼한 정벌이라는 날조에 이어 일제감정기를 당해도 명분이 있도록 되었습니다.

내 생각에는 그쪽은 사학은 전공한 적이 없고 간자 한자를 잘 알고 있으며 중국 사이트에서 역사학을 배우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쪽이 어디서 어느 교수 아래에서 사학을 배웠는지 몰라도 그쪽이 생각하는 것처처럼 역사학자들이 중국인과 일본인이 주장하는 역사를 그대로 아무런 비판없이 수용하는 자들은 없습니다.

뭘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는데 출처있는 글들도 다 환빠고 날조 역사학이고 그럼 삼국사기에 가야에서 9명에 간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낸 것도 환빠입니까? 환빠들이 북방 민족은 다 동일하다 이런다고 9명의 간들이 제사지낸 것도 사실 날조네 사전에 나온 것도 중립적이지 않네 교과서에 나오는 것도 중립적이지 않네 그쪽은 중국인들이 주장하는 것이 중립적인가 본데 정말 어디서 그런 공부를 4년동안 한 건지 궁금하네요? 그쪽은 한국인을 사랑하고 불의를 못참고 올바른 한국 사람이면서 일제가 한국인들을 열등 민족으로 역사 왜곡을 하여 서로 미워하고 우습게 보고 멸시하고 이렇게 만든 것과 비슷하게 행동하고 있다고는 생각 안듭니까? 적어도 중립을 말할려면 재대로된 역사관으로 이야기를 해야죠.환빠와 무조건 환빠로 모는 중국 시각 역사관을 가진 식민 사관자 뭐가 다릅니까? 일제가 한 짓도 모잘라서 아직도 대한민국을 분열시키는 행동을 하는건 좋지 않은 것이죠 Welisss (토론) 2018년 9월 28일 (금) 22:44 (KST)

난 사학을 전공한 사람인데 재야사학자들이 무조건 유사사학만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환단고기 책을 보면 거의 나와있는 내용 대부분이 고조선 관련의 긴 역사에 대해 쓰였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환단고기 읽어보길 추천합니다. 환단고기가 무엇을 주장하는 가를 알아야 이 사람이 환단고기라는 위서를 인용하는 환빠인가 아니면 실증 사학 언어학 고고학등을 이용해서 쓰는 사람인가 알 수가 있겠죠? Welisss (토론) 2018년 9월 28일 (금) 23:06 (KST)

환단고기는 글자 단위로 해부해서 어디서 베꼈고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다 살펴본 사람입니다. 사학을 전공하셨다고 하셨는데, 사학과에서 역사학을 제대로 배웠다면 환단고기 같은 것에 혹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저 역시 고작 사학과 학부를 졸업한 천학이지만 환단고기의 허무맹랑함은 질리도록 보아왔지요. 진짜 역사를 하고 싶으시다면 먼저 역사학의 연구방법론부터 익혀오시기 바랍니다. 실증사학 운운하시면서 정작 사이비의 언어로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비웃음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럼 건필하십시오.--Xakyntos (토론) 2018년 9월 29일 (토) 09:33 (KST)

Xakyntos님은 위키 운영권을 갖고 있는 분인가요? 그렇다면 이곳이 위키기 때문에 하는 행동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 동일한 개인 사용자에 불과하다면, 자기 지식과 다른 것을 비웃고, 자기 지식만 100% 확신하는 것은 역사에서 신앙에 불과 합니다. 물론 위키에 개인 연구 허용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고, 출처를 요구하고 있지만, 학계 주류다. 지배적이다 란 표현 하려면, 구체적인 누구누구인지 밝히고 몇사람중 몇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지 출처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출처가 없다고, 출처도 묻지 않고 무조건 삭제하는 행태를 보면, 동일한 일반 사용자가 아닌, 위키에서 운영권 부여 받은 듯한 행동으로 보입니다. 위키가 100% 출처가 필요한 시스템이라면 무엇 때문에 일반 사용자가 편집에 참여 하도록하나요, 그냥 사람 고용해서 출처있는것만 일괄 주입식 편집하면 됩니다. 운영자가 맞는지 전문 지식을 자부하는 일반 사용자인지 알고 싶습니다.--Tol6560 (토론) 2019년 6월 26일 (수) 02:23 (KST)

고려의 연호에 관한 문의편집

안녕하세요. 처음으로 글을 남겨봅니다. 다름이 아니라한국의 연호 #고려 문단에 예전부터 여러 연호들이 추가되어 있었는데, 이에 대해 여쭈어보고자 합니다. 현재 해당 문단에는 아래와 같은 연호들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1. 장흥
  2. 흥기
  3. 천복
  4. 개운
  5. 경희
  6. 개운
  7. 건우
  8. 광순
  9. 흥기
  10. 현덕
  11. 건덕
  12. 개보
  13. 태평

모 IP사용자분께서 기여하신 것이 확인되는데, 모두 어디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도리어 천복~개운의 경우 서하의 연호들을 토대로 날조한 자료로 여겨지는데... 혹시 이 연호들에 대해 들은 바가 있으신지요. --威光 (토론기여) 2019년 3월 7일 (목) 10:02 (KST)

안녕하세요. 저도 처음 보는 것들이네요. 근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삭제해야 할 것 같습니다.--Xakyntos (토론) 2019년 3월 7일 (목) 13:59 (KST)
역시 제 착각이 아녔군요. 조치하겠습니다. --威光 (토론기여) 2019년 3월 7일 (목) 16:05 (KST)

Xakyntos님 '흉노' 관련 문서에서편집

[그러나 튀르크 혹은 몽골이라는 용어는 서기 6세기 이후에나 중국 사서에 등장하기 때문에[1] 몽골 고원과 투르키스탄을 공유했던 흉노 제국의 지배 종족이 어느 집단에 속하는지는 정확히 속단할 수 없다.]

ㅡ Sartaq123(토론)의 23895987판 편집을 되돌림 / 틀린 출처임, 해당 내용 안에 흉노가 투르크인의 선조로 언급되고 있음

ㅡ 반박 : 수학 못하심? 흉노가 투르크족의 선조라고 해서 흉노의 지배 종족이 투르크계가 되는게 아님. 최초로 투르크(돌궐)족이 언급되는 중국 기록인 <수서>에 의하면 돌궐(투르크)족의 기원은 흉노의 하위 부족인 저거씨가 세운 북량 흉노라고 전하고 있음. 기록상 투르크와 흉노는 분명히 서로 연관이 있지만 북량 흉노가 전체 흉노를 대표하는게 아니기 때문에 투르크족이 전체 흉노를 대표하는 위치에 있었다고 볼만한 하등 근거가 없음.(참고로 투르크의 전신인 북량 흉노의 세력지나 몽골의 전신인 실위의 위치 역시 둘 다 흉노의 발상지인 알타이 산맥과는 거리가 멈) 몽골 교과서 역시 몽골인의 선조를 흉노라고 가르치지만 마찬가지 논리로 흉노의 지배 종족을 몽골족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상황. 요약하면, '흉노는 몽골과 투르크 공동의 역사지만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상대로 지배-피지배 관계를 형성했다고 볼 수 없다.'임. Sartaq123 (토론) 2019년 3월 23일 (토) 04:18 (KST)

게다가 흉노 시절에는 몽골족, 투르크족 개념이 없었다니까요.. 두 종족 모두 흉노 멸망 이후에 등장이랑께요 Sartaq123 (토론) 2019년 3월 23일 (토) 04:23 (KST)

예를 들면, 여기 위키 내용 페이지 끼리도 같은 내용 상충되는 것 많습니다. 갈족 관련 내용 이곳 저곳에 흩어져있는 내용 찾아보면 압록강에 세운 부여 대소왕 동생 갈사왕이 가장 빠른 연대, 한자에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曷 이글자는 공통적으로 포함돼있고, 다른 문서에서 흉노 일파로 뭉뚱그려 취급하는데, 강국 왕실 성씨인 온 성씨가 부여계 한국 국가들에 분포한 것, 갈씨가 강가에 자갈을 의미 석씨로 변하는 과정 후조 역시 흉노가 아닌 부여계통인데 흉노에 동호나 부여가 영향받던 시기 중국적 시각에서 흉노로 보는 것은 위키 문서 자체가 상충되는 부분입니다. 성씨 계통을 함께 봐야, 흉노인지 흉노가 지배하던 다른 혈족인지 명확하게 구분 가능합니다.--Tol6560 (토론) 2019년 6월 25일 (화) 18:04 (KST)

단군 문서편집

눈을 씻고 찾아본다고 하시는데 그냥 없다고 하면 되는 글은 꼭 굳이 공격적인 느낌으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이런 식으로 글을 쓰시네요? 본인이 학자입니다. 못 믿으시겠습니까 본인이 쓴 글이 눈을 씻고 봐도 학자들이 안 보이는 저급의 글이었다니 유감입니다. 본인 논문을 올릴 수는 없으니 다른 문서처럼 넷상 출처를 쓴 것이지요. 그쪽 문서보면 넷상에서 환단고기 신봉자 관련 인터넷 기사 출처로 하고 환단고기 비판하는 글들 있는데 그건 학자들이 쓴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눈을 좀 제대로 씻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쪽은 항상 그쪽이 쓰는 글은 유력하다 이러는데 역사학에 유력설이 어디 있습니까? 역사라는 것은 유력설이 없습니다. 단군과 텡그리설은 유명한 학설인데 기타로 굳이 옴기는 것은 친중성향때문이 아닌지요? 의도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눈 씻고 봐도 이런 발언은 상대방에게 기분나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중국어 번역해서 옴기는 건은 사학이 아니고 번약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쁜 뜻은 아니고 솔직히 xakyntos씨 학계에서 꽤 유명한 사람으로 알고는 있습니다. ~유력하다~ 이 것으로요. 친중적인 성향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니 이해는 하지만 도대체 계속 그런 편집의 의도가 뭔가요? 중국 사서만 아무런 비판없이 옴겨 적는 것은 사학이 아니고 중국어 번역입니다. 그러니까 사학에는 고고학과 언어학이 연계가 되는 것입니다. 무덤만 파더라도 한국 고대사는 북방 흉노와 선비족에 관련이 더 크지 중국 한족과는 이질성이 있습니다. 중국어가 가능해서 대만 인터넷을 보면 대만인들은 몽골과 선비족등 북방 민족이 중국인들을 정복한 것에 어느 정도 트라우마와 열등감을 보이는데 고대 한민족이 고추대가, 거서간등 몽골계와 비슷하다고 해서 한민족이 중국 대만인들을 정복한 것이 아닌 겁니다. 본인이 연장자인 느낌인데 요새 세계에 관련된 일을 좀 알려주려고 합니다. 일단 중국은 고구려가 인접국인 백제, 신라, 가야와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는데도 고구려를 한반도의 역사와 별개로 구분하려고 하는 사상을 대만인들이 빠르게 수용하였고 일본 넷우익들과 연계하여 학계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한국 학계에서도 잘 알고 있는 일입니다. 몽골계와 한민족을 아무리 별개로 놓으려고 해도 고대사의 근접함에 있어서는 중국 한족들보다 가까웠기 때문에 때어 놓을려고 해도 땔 수가 없습니다. xakyntos씨는 2008년도 부터 계속 위키백과에서 한국사에 관련하여 편집을 하는 것 같은데 언제까지 이런 편집하실려고 합니까? 본인은 xakyntos씨한테 식민사관주의네 이런말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거랑 다른 것 같고요. 좀 서로 알고 싶네요.220.71.168.122 (토론) 2019년 4월 21일 (일) 20:17 (KST)--

xakyntos씨 사용자 문서 잘 읽었습니다. 재야사학에 대해서 오해가 많으신 것같습니다. 본인도 매우 진보적인 성향이라서 이해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재야사학이 아닌 일반 학계(동북아재단포함)에서도 중국 사서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에 비판적입니다. 알기 쉽게 이야기 설명하면 생각을 해보십쇼. 천년 몇백년전에 중국인이 사서를 쓰면 당연히 중국인의 입장에서 썼을 것이고 중국 왕조에 찬양도 있었을 겁니다. 목이 날아가지 않는 한 그런 사서를 쓰기 힘듭니다. 중국 사서에 대해서 아니까 이건 알죠? 중국 수양제가 위서가 마음에 안 들어서 계속 고쳐 쓰게 한 것이요? 일본서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본인과 xakytos씨가 이렇게 건전하게 토론을 하고 있는데 본인이 만든 글씨로 xakyntos씨가 굴복했다 조공을 했다 이렇게 쓴다면 그게 소설이지 역사겠습니까. 중국 사서만 번역하는 것은 사학이 아닙니다. 위키백과 특성상 저작권이 있는 학자들 논문을 첨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그쪽의 공격적인 편집 성향은 재야사학이 나치라고 핑계를 되면서 어떻게든 한국 역사를 중국인들이 흡족해 할 수있는 친중적 역사로 서술하려는 모습이 본인에게는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쪽이 너무 공격적인 편집 성향과 24시간을 걸치는 편집으로 본인 학자 지인 중에서도 이건 편집의 소용이 없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xakyntos씨의 입맛에만 맛는 편집만 하는 것은 위키백과의 사유화를 시도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20.71.168.122 (토론) 2019년 4월 21일 (일) 20:37 (KST)--
참고로 본인은 재야사학이 아니고 그쪽이 좋아하는 정통 사학계입니다. 본인 생각으로는 그쪽이 재야사학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결국은 생존을 위해서 사대주의를 택했던 시기가 어느 정도 있는 한국 역사를 사대주의 질서에 편입된 역사로 쓰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알다싶히 중국인들은 또다른 천자를 표방하던 몽골계 민족에게 땅 한푼 남기지 못하고 정복당했지만, 대한민국은 유연한 외교로 인해 한민족 왕조가 제대로 이어질 수 있었음) 고대 한국인과 몽골계 문화의 유사성은 정통 사학입니다. 삼국사기 또한 중국 사서를 참고를 하였지만 사서가 그렇게 쓰여 있어도 안에 내용을 확인하는 작업이 따로 있는 것이 정통 사학입니다. 그리고 본인은 재야사학처럼 보수적인 성향이 아닙니다. 본인 고향이 전라도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님을 옆에서 본 적도 있는 진보적인 사람입니다. 위키백과는 어느 정도 백과사전으로 권위가 있는 사이트인데 참으로 걱정입니다.220.71.168.122 (토론)--
본인이 사실 xakyntos씨를 어느정도 꽤 지켜봤습니다. xakyntos씨와 비슷한 편집을 하는 아이디도 많이 봤습니다. 왜냐면 말투와 편집 성향이 너무 비슷하더군요. 동일인물이 아니라고 볼 수 가 없을 정도로요. xakyntos씨는 그러니까 한민족이 북방 몽골계 민족과는 관련이 전혀 없으면 좋겠고 어떻게든 낙랑 이런 부분에서 중국 한족과 한민족이 동일시됬으면 하는 것이지요? 솔직히 말해보십시오. 꽤 지켜봤으니까요. 하지만 낙랑은 고고학적으로도 평양으로만 한정되어있습니다. 중국 사서에서도 100년만에 한민족출신을 수장으로 세워야 했을 정도로 약화됬죠. 한국인이 중국화된 것은 정통사학계에서는 확실한 시기가 신라 통일시대부터입니다. 그전에는 부분 수용입니다. 그리고 편집 내용을 보면 한민족의 입장이 아니고 중국인 입장에서 쓰는데 사용자문서에 글은 다르네요? xakyntos씨는 고려 몽골 전쟁도 몽골 입장에서 쓰는 편집내용을 본 것 같은데 한국입입장에서는 기분 나쁘지 않을까요? 대만 사학인가요? xakyntos씨와 대만은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 겁니까? 해명 부탁합니다. 조선족이신가요? 조선족은 비하 대상이 아닙니다. 물어보는 겁니다. 220.71.168.122 (토론) 2019년 4월 21일 (일) 21:18 (KST)--

사용자 문서 내용편집

사용자 문서에 "중국에서는 이미 현재진행형으로 전개되고 있는 일이다. 국가 권력이 역사학에 개입하여 신화를 역사로 만들고 있는 것이 중국 역사학의 현실이다. 이로 인해 중국의 역사학계는 세계 역사학계에서 말 그대로 병신 취급을 당하고 있지만, 이러한 작업을 통해 중국의 시민들이 그릇된 국수주의에 빠져들어 위험한 선택을 하기라도 한다면 세상의 앞날은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소위 재야사학이 가진 최대 규모의 역기능이다" 이렇게 썼더군요.

하지만 본인 생각에는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중국인이 중국인 입장에서 쓸 수밖에 없었던 중국 사서의 내용을 비판도 없이 고고학과 언어학을 제외시키고 주장만한다면 오히려 대한민국 국민들의 피해의식이라는 감정을 건들려서 위험한 선택을 하여 세상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쪽이 블로그에서도 밝혔듯이 그쪽이 방문도 했던 상하이 시민들도 꽤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거주하는 중국인 노동자들 화교 혼혈들 중국인 다문화 가족 등등 대한민국에 살면서 소수이며 힘이 약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릇된 국수주의에 빠져 위험한 선택이라도 한다면 그 소수의 무고한 사람들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사는 한국인들은 대부분이 사업자들이며 돈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중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사는 많은 중국 동포들과 화교들 중국인 노동자들 하루벌고 사는 사람들 많습니다. 다문화 가정 중에서도 중국에 사는 친정에 가고 싶어도 여유가 없어서 못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모릅니까? 의외입니까? 다문화 센터에서 중국의 시인의 시를 발표하던 어린 꼬마아이와 그 어린 꼬마의 어머니가 본인한테 " 가끔은 한국사람들이 두려울 때도 있다." "제발 중국인들이 한국인의 감정을 건드릴 발언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고 선생님 좀 부탁합니다. 이럽니다. 그쪽이 말하는 것처럼 대한민국 사람들이 무조건 중국인이 쓴 사서만 수용해라 중국인 입장에서 쓴 한자와 인용한 삼국사기만 수용해라하면 대한민국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겠습니까? 본인처럼 작은 핏방울 하나까지도 진보적인 사람도 수용하지 못합니다. 역기능을 말하는데 오히려 역으로 반중감정만 심화되서 다문화 가족 등등 많은 사람들한테 좋지 않습니다. 다문화 센터에서 중국 시인들의 시를 발표하는 어린 아이들과 가족들도 그것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뻥같습니까? 남아있는 것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등밖에 없는 현실이라면 그 내용에도 비판이 필요하며 이것은 대한민국 사학계에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쪽의 행동을 보면 항상 그쪽이 글을 쓰는 것은 "~유력한 설이며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이다."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 소수의 설이며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렇게 쓰던데 그쪽 행동들이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본인도 그쪽 사용자 문서보고 에라 모르겠다 이렇게 행동하고 있습니다. 넷상에서 그쪽이 행동하는 것도 하나의 자유이지요. 하지만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입니다. 명심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본인도 더 이상은 보고만 있으면 안 될 것 같고 적극적으로 행동하여 나가기에 글 남김니다. 그쪽이 한자는 간자도 알고 번자체도 알고 중국어도 가능하고 친중적일 수 밖에 없는 거 압니다. 그런데 사용자 문서를 보니 중국을 병신이라고 욕하는데 그렇다고 지금까지 xakyntos씨의 행동이 세계의 발전과 진보를 위한 행동이였다고 눈가리고 아웅할 수 있다고 정말로 생각하십니까? Desmatch (토론) 2019년 4월 22일 (월) 04:25 (KST)--


대한민국 재야사학자들에 대한 모욕에 대하여편집

사용자 관리 요청을 하였으나 차단이 되지 않았군요. 하지만 영문 위키백과에는 해당 내용을 자세히 영어로 번역하여 이메일을 보냈고 재야사학단체에도 민원을 넣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형사 법리상 그 쪽이 개인에게 모욕을 한 것이 아니라서 개인의 모욕죄 처벌은 힘들지 몰라도 당신이 지금까지 재야사학자와 한 토론 몇 가지를 발췌해서 재야사학협력체의 명예훼손이나 모욕이 될 수 있는 법리상 해석이 존재한지 알아볼 것이며 또한 민사소송도 준비할 것입니다. 당신은 오랫동안 위키백과라는 공연성과 전파성이 매우 큰 사이트에서 재야사학자들을 명예훼손과 모욕을 하며 한국사에 대해서 편집을 해왔습니다. 입장을 바까서 대한민국 법률이 미치지 않으면서 매우 전파성이 큰 해외 사이트에 당신이 지금까지 한 행동들과 편집들 그리고 이름의 성씨 생년월일 주소 나이 등등을 게시하고 모욕과 명예훼손을 한다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해탈이라는 것도 주제가 되야 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Desmatch (토론) 2019년 4월 24일 (수) 12:20 (KST)

뭔 양아치도 아니고 정말편집

그렇게 출처 맞춰서 쓴다는 니들이 쓴 글을 봐라, 상나라 군주 목록엔 28대왕으로 써놓고, 개별 문서엔 29대로 하나씩 밀려서 편집해놓고 그건 무슨 출처를 근거했는데 그모양이지? 위키 내용이 전부 그런 오류 투성이로 떡칠해놓은 것이, 역사외엔 없다. 하도 출처 출처 따지는데, 이 내용 공부하고 인식하는데 얼마나 걸린줄 알아? 2년도 넘게 걸렸어, 본문 되돌린 내용에 출처가 어디에 다 기록돼있나? 위키에서만 놀지 말고, 분자인류학 유전자 성씨별 검사 결과 지역 분포도 좀 보고, 구글어스 좋은 것 있으니 지리도 좀 보고, 유물 발굴 기사도 찾아보고, 그리고 위키 자체 링크 내용들 모순부터 생각해보고 엉터리 본문 내용으로 되돌려야 불만 없지, 오늘 쓴 것은 그럴까봐 일일히 링크도 안걸었다. 어제 새벽에 링크 일일히 거느라 세빠졌는데, 하도 그러니까, 아예 맨 밑에다 기타 참고로 본문에서 뺐고, 역사에 100%가 어디있나, 현재도 메이저 언론사에서 허위사실 보도하는 판국에 역사는 말하나 마나, 그래서, 항상 역사를 공부할 땐, 100%가 아닌, 누가 말하던 참고적 사실로 수집하고, 판단은 최종 독자가 진실로 생각되는 것만 받아들이고 역사적 진실에 근접하려 노력하는 것인데, 1인 편집자가 자기 주관을 갖고 다른 생각과 증거 파편들을 모두 배제하면 언론 통제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아니, 구글 어스 돌리면 환인현 만주화련자치구에 있다고 나오는데 무슨 출처를 대? 또,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사기 한글 번역문, 성씨별 상계에 대해서 제대로 연구한 내용를 못봤는데 뭔 출처를 대? 한자 뜻 자체가 그렇게 써있는데 무슨 출처를 댑니까? 한자를 병기하는 이유는, 한국어는 같은 동음이 많아서 한글만 쓰면 본 뜻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여 한자 뜻 찾아 보기 전엔 기자 서여를 돕는다는 깊은 뜻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또 기자의 기가 농사도구를 말한다는 것도 상상하지 못했는데, 한자 본뜻을 한자사전, 다음 한자 사전, 네이버 한자 사전, 각종 블로그 한자 풀이 여러곳 찾다가 본 뜻을 알게 됐고, 이런 내용이 어디에 써있다고 출처를 댑니까? 출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이 진실인지 검증하는 과정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교수 논문을 읽어봐도 엉터리 내용을 버젓이 시대 지리적 상황을 잘못 인식 그게 아니다, 라고 얘기하는 교수도 있습니다. 기자조선 평양이 요하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평양으로 인지하고 역사서를 해석하니 맞을리가 있나요? 그런 돌머리 교수들이 쓴 글 출처만 써야 하나요?

그리고, 솔직히, 4300년전 얘기를 고려 조선 시대 사람이 나보다 더 빨리 자료 수집 할 수 있나? 그 수집한 자료를 나 보다 더 많은 이중 삼중 검증하고 신빙성있는 자료 반영 할 수 있나요? 1500년전 그사람들은 위키도 없고, 구글도 없고, 구글어스도 없고, 분자인류학 유전자 정보도 없고, 가진 정보는 나보다 쥐꼬리 만큼 갖고, 역사에 반영되면 안되는 국가주관으로 역사를 쓰면 쓰레기가 되는데, 사대주의 운운하는 자체가 국가주관 개입 역사적 진실이 아닌 소설이 되는 겁니다.

물론 저 역시, 이곳 위키에서 다른분이 올린 새로운 사실을 많이 배우고 있지만, 위키 내부 링크 활용은 50% 정도, 다른 도구 활용해서 상충되는 부분은 무엇이 맞는지 상식적인 생각 스스로 하지 않으면 어떻게 무엇이 맞는지 틀린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틀리던 맞던 출처만 나열하는 그것이 역사? 그냥 쓰레기입니다.

현재 한국사에서 삭제한 기자조선과 기자는 조선시대까진 수천년 동안 쓰고 있던 것인데, 불과 100년도 안된 수십년 동안 삭제 해버린 것은 출처가 무엇입니까?

교과서 와 다르다? 그럴려면 교과서를 보지 뭐하러 위키를 검색하나 ㅡ.ㅡ;

쓴 내용에 어떤 것 출처가 궁금하세요? 궁금할까해서 일일히 관련 내용있는 내부링크 걸었는데 다 삭제해 버리고 ㅡ.ㅡ;

기자(箕子)는 성(姓)씨(氏)를 역순으로 쓴 것이고, 상(商)나라는 크고 작은 족읍(族邑)으로 구성된 국가다. 족읍(族邑)은 혈족(血族)인(人)사람과 전쟁에서 잡아온 농민(農民)으로 구성돼있고, 민(民)노예란 뜻이다. 대종(大宗)인 왕족(王族)은 적처(嫡妻)외에 많은 후처(後妻)를 두고 있고, 본처 큰 아들인 적장자(嫡長子) 종(宗) 계승 원칙으로 가업을 잇는다. 아버지 사망 후, 후처(後妻) 아들인 서자(庶子)는 적장자와 사이가 좋으면 함께 지내지만 그렇지 않으면 다른 지역에서 정착하면 불리는 것이 씨(氏)로 새 종가(宗家)를 이루는 것이 소종(小宗)이다. 종(宗)은 자기 죽은 부모와 성씨 혈통 조상을 추모하는 제사를 지내는 적장자 종손(宗孫)의 집을 뜻한다. 상나라 28대 왕 문정(文丁)은 태정(太丁)으로도 불리고 이름은 탁(托)이고, 제을(帝乙), 비간(比干), 기자(箕子)의 아버지다. 상나라 29대 왕 제을(帝乙)은 첫째 미자계(微子啓), 둘째 중연(中衍), 막내 제신(帝辛, 주왕(紂王))의 아버지다. 상나라 30대 마지막 왕 제신(帝辛,?~기원전 1100년 경)은 주(紂), 주신(紂辛), 주왕(紂王)이라 불리며, 은나라의 제30대 왕으로 마지막 군주이다. 기자(箕子)는 상나라 마지막왕 제신 주왕의 숙부 서열인데, 주왕은 숙부급 서열인 비간(比干)을 성인(聖人)의 심장에는 구멍이 일곱 개나 있다고 들었다”라며 진짜 그런지 확인하겠다며 비간(比干)의 심장을 꺼냈다 하고, 기자(箕子)는 스스로 미친 척 노예로 갇혔으며, 적장자 형인 미자계(微子啓)는 동생 주왕(紂王) 곁을 떠났다.

이 내용만 보면, 주왕(紂王)이 자기 삼촌도 죽이는 폭군이기 때문에 주나라가 응징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주나라와 상나라는 기본적으로 원수지간이다. 죽서기년에 문정(文丁)14년 계력(季歷)은 융족을 예도(翳徒)에서 격퇴하고 세 명의 장수를 사로잡았으며 문정에게 승리를 보고하였다. 그러나 주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걱정하던 문정은 계력에게 승리에 대한 보상으로 많은 보물을 하사하였고 새고(塞庫)로 그를 보냈다. 그 후 문정은 계력을 새고에 감금해 죽였다 계력(季歷)은 주(周)문왕 서백 희창의 아버지, 주(周)무왕은 문왕의 둘째 아들, 적장자는 상나라 제후국인 숭나라 후작 호(崇侯虎)가 주(周)나라 문왕이 위험하다는 것을 주왕(紂王)에게 알리면서, 주왕(紂王)은 서백 희창을 잡아와 유리성에 7년 동안 가뒀을 때, 적장자 백읍 희고를 죽이고 죽을 쒀서 희창에게 먹였다. 주 문왕이 죽을 다 먹자, 주왕 제신은 "무슨 성인이 사람을 먹느냐며 비웃었고, 서백 희창은 먹은 것을 다 토해낸 곳에 백읍 고 묘를 나중에 세웠다. 역성 혁명한 주 무왕 입장에서 보면 할아버지와 형을 죽인 원수를 갚은 것이고, 폭군은 역성혁명 쉽게 하는 요소일 뿐, 폭군이 아니더라도 역성 혁명 해야 할 상황으로, 주 무왕은 상나라를 평정할 때, 왕으로서 정벌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인 주 문왕 희창 위패를 모시고, 주나라 태자로서 상나라를 정벌했다. 아버지 주 문왕 희창 복수 유훈이 없었다면 태자로서 위패를 모시고 정벌 할 이유가 없다.

이런 원수지간인 상나라와 주나라 상황을 보면, 상나라 왕족인 기자가 기족(箕族)을 이끌고 도망가는 것은 당연한 일, 강씨 직계 조상만 간략하게 기록한 상계는 기자와 함께 평양으로 왔다 했고, 다른 문중 성씨 상계엔 800여 성씨가 함께 왔다 기록돼있다. BC1122년 평양은 현재의 평양이 아닌, 요하에 있는 양평을 말하는 것이고, 고구려 때는 요동성, 현재는 요양시가 된다. 왕검성은 BC300~249년 연나라 진개 침공으로 잃으면서 현재 평양으로 이전했는데, BC194 위강숙 후손인 위만 위장 귀순 반란에 기씨왕실이 망한것이 후조선이다. 800여 성씨는 한꺼번에 온것이 아닌, 기족 선주, 삼감의난 반란 후에 상민 분할 이주 정책을 피해 도망와 추가된 것이다.

왜 도망? 상나라나 주나라에 대한 기록만 보면, 참 점잖고 사람의 예를 논하고 있지만, 상나라와 주나라 유적지 유물 출토 상황은 어떤가? 주인이 죽을 때, 집을 지을 때, 노예를 산채로 순장했다. 인(人)사람, 민(民)노예, 구분이 분명했던 것이고, 민(民)은 사람이 아닌 물건과 같은 취급됐다.

기자(箕子)는 상나라 왕족으로 상나라는 현재 중국인들이 말하는 화허족과는 무관한 이민족으로, 북적과 동이 지역에서 황하 중류와 상류로 올라가는 황하 본류 오늘쪽 지류까지 하나라가 한반도 만한 크기로 분포한 것을 탕왕 때 공략 평정했고, 주왕 때 망했다. 주나라는 황하 북쪽 오르도스에서 약탈을 피해 큰 강 2개를 건너 장안성 북서쪽 기산에 정착한 황하 주변에 거주하던 씨족으로, 황하 중류 지역에 있던 하나라와 같은 화허족으로 분류 할 수 있지만, 상나라는 그들과 다른, 황하 북부와 산동성 동쪽 태산 지역에 분포해 있었고, 주나라 후손인 정 여공이 약나라에 있던 상나라 단(檀)백(단족 수장)을 약나라 주민들 도움을 받아 죽였다는 내용을 보면, 단(檀)군과 무관 할 수 없는, 상나라가 단(檀)박달나무 자생지가 북경, 요하, 만주 지역과 한반도 북부에 자생하는 것을 고려하면, 상나라가 단(檀)국에서 파생된 성씨일 여지는 있다.

상나라 탕왕 상계 시조 자설(子契) 성(姓) 자(子)는 하나라 제순 임금이 하사했다고 얘기하고 있다. 설(契)은 이름이 아닌 원래 혈족을 타칭하는 문자일 수 있고, 맺을 계로도 읽는다. 중국 설(偰, 병음 Hsueh)씨는 중국 성씨 순위 76위로 3가지 계통이 있다. 설(偰)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2,937명으로 조사되었다. 본관은 경주(慶州) 단본이다. 위구르[回鶻] 사람이 설련하(偰輦河)에서 살았기 때문에 설(偰)로 성씨를 삼았다. 설(契)씨 가능성 있고, 성씨 분화에서 문자는 허투루 쓰이는 법이 거의 없다. 설련하(偰輦河)는 초원 지대 북부 바이칼호에 있고, 북방 계통 혈통은 대부분 이 지역에서 내려왔다. 상나라 시조 설씨 존재만 봐도 상나라가 화허족일 가능성 1도 없는 북방계로 시기나 연대를 고려하면 단(檀)과 무관 할 수 없다.

전조선으로 보이는 상나라는 단(檀)과 상관 관계가 있고, 아침해가 뜨는 곳이란 중국인 시각에서 본 조선처럼, 우리가 부르는 한국, 같은 국가를 부르는 자칭과 타칭이 존재하는데, 상나라는 타칭, 단군은 자칭일 수 있다. 단국의 전신인 환국은 만주화련자치현 오녀산성에 있고, 그곳에서 남하해서 세운 단국 신단수는 요하문명지역 일 수 있고, 산동성 태산 지역일 수도 있다. 상나라와 단국이 같은 민족이 아니라면? 주나라에 멸망해서 패잔병도 아닌 상나라 왕족인 기씨 일족에 단군조선 수도를 옮길 이유가 없다. 주나라 무왕은 요하에 군대를 보냈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 기자와 함께 간 것은 군대가 아닌 민간인들이다. 같은 계통 성씨 분화된 것일 때 가능한 얘기다.

기자(箕子) 이름인 서여(胥餘)는 부여(扶餘)에 남아있고, 부여(扶餘)는 여(餘)를 부(扶)돕는다는 뜻이다. 강(康)국 소무구성 왕실 성(姓)인 온(溫)씨는 부여(扶餘)계통 고구려 온달 백제 온조 신라 온군해 한반도에서 활동했고, 강(康)국은 간수성에 있던 중앙아시아로 확장했던 사마르칸트 소그드인, 속특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강(康)국으로 알려져 있고, 요하지역에 선주 해 있던, 기자와 BC 600~500년 경부터 고리국이 남하 길림성 지역에서 상주하면서 기자조선 상나라 일족과 함께 후조선을 형성했고, BC300~249년 경 연나라 진개 침공으로 요하 왕검성이 무너지고 평양으로 옮기면서, 지리적 어려움으로, 여(餘)를 부(扶)돕는다는 부여(扶餘)국이 시작된 것이다. 즉, 부여와 기자는 혈통이 다른 문명 공동체입니다.

이런 흐름에서 보면 기자(箕子)와 상나라는 북방계로 절대 화허족 중국과 같은 민족일 수 없는 황하 북부, 만주, 산동성 지역에 형성돼있었던 한민족이다. 왜? 한(韓)민족? 한(韓)민족은 삼한(韓)을 말하는 것이고, 삼한(韓)은 진한(韓) 변한(韓) 마한(韓)을 말하고, 기자 후손으로 보이는 청주한(韓)씨 상계는 위만 반란에 나라를 잃은 기자조선 마지막 왕 기준이 청주에 마한을 세우고 청주한씨 시조 한준이 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천 서(徐)씨란 얘기도 있지만, 부여 서씨(扶餘 徐氏)의 시조는 백제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扶餘隆)이다. 그는 660년(의자왕 20)에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패하면서 의자왕과 함께 당나라에 압송되었는데, 당 고종이 본래의 성씨인 ‘부여(扶餘)’를 ‘서(徐)’씨로 바꾸고 웅진도독으로 삼아 본국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 기록이 시기나 글자로 볼 때 더 신빙성 있고, 이천 서(徐)씨는 부여 서씨에서 파생된 분파로 보인다.

물론 상나라 후손은 상나라가 망한 은허에 은(殷)씨, 주나라에 협력한 미자 계 후손인 송(宋),미(微)씨, 송(宋)씨 후손인 대(戴)씨, 공(孔)씨, 주나라가 상민 사민정책 실행하면서 중국 전역에 분할 화허족으로 동화됐고, 기자(箕子)후손만 북방인 요하로 이동, 한반도로 이동하면서 북방계 상나라 정통성 잇고 있기 때문에 조선시대까지 단군과 기자를 민족의 조상으로 숭배한 것이다.

강(康)씨는 대종 위(衛)씨와 함께 위강숙 공통조상을 갖고 있는 위강숙 희 봉 후손으로, 주 무왕 97살 때 아홉째 동생인 위강숙은 강(康)나라에 분봉됐고, 형제들 중에서 젊었기 때문에 활동적이고, 강(康)후(侯)로 불렸고, 후(侯)는 공후백자남 2등급 관작으로, 최근에 강후부(康侯斧)가 출토됐다. 도끼는 군권을 상징하고, 상나라 제신이 주문왕을 풀어주고 주문왕이 주나라 땅 일부를 바쳤을때 부월을 하사, 토벌권을 줬기 때문에 주나라가 성장 상나라가 망한 것이다. 삼감의 난 반란 평정 후, 주 성왕의 섭정인 넷째 주공 단은 상나라 수도 조가, 황하 북쪽 지역에 강나라 보다 큰 위나라를 세웠고, 강고(康誥)=강(康)에게 말한다. 상나라 반란이 더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잘 감시하란 내용을 장황하게 충고했다. 위강숙 적장자 백모는 위나라를 잇고 위씨가 됐고, 둘째 아들을 상민 사민정책 피해서 상나라 유민이 요하에 모여들면서 기자조선을 형인 주공 단의 충고에 따라 감시자로 보냈기 때문에, 대종 희성위씨 소종인 강(康)씨가 된 것입니다. 강(康)씨는 한자에서 알 수 있듯이 희성강씨가 계통이 있고, 온성강씨 계통이 있습니다. 분자인류학 까페에 올라온 부여 계통으로 보이는 강씨 유전자는 온성강씨가 맞을것이고, 희성강씨와는 직계조상 상계를 보면 같을 수 없습니다. 고려태조 외6대조, 조선태조 장인인 강(康)씨는 희성강씨로 온성강씨와 유전자가 같을 수 없습니다. 강(康)씨 상계를 보면, 청주한씨 상계에 언급된 기자조선과 마한 왕들이 기록돼있고, 육하원칙 세밀하지 못한 간략한 내용이지만, 시대와 지리적 수도 상황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저는 강(康)씨로, 이곳 위키에 강호경을 호경으로만 표시하는 논리를 이해 할 수 없습니다. 호경은 강씨가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 유명한 사람도 아닌, 그냥 태조왕건 외 6대 조상이 강씨고 역사에서 확인된 분명한 강씨기 때문에 호경이 언급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천강씨 대종회 역시, 태조왕건의 외 6대조란 기록과 아래 세손들 관명이 분명하기 때문에 족보에 강호경을 시조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고, 강(康)씨 득성조인 강후를 족보에 시조로 기록하지 않는 것은, 직계 조상만 간략하게 기록했기 때문에, 족보처럼 기록이 상세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더구나, 한국사를 최초로 쓴 것은 블과 고려 삼국유사, 삼국사기 연대가 족보 보다 짧기 때문에, 그것을 이중 삼중 검증할 수단이 없는 것입니다. 중국이 5천년전 역사를 논하는 마당에 한국은 고려시대 이전엔 사실상 역사서가 없으므로, 원시시대와 뭐가 다릅니까? 모두 추정적 요소가 될 수 밖에 없는 유물 해석, 꿈보단 해몽 될 수 밖에 없는데, 자료가 될 수 있는 족보조차 허위로 유전자 분석 증거도 없이 부정하고 있습니다. 부정하는 수긍할만한 출처가 없습니다. 한국사에서 나오는 강(康)씨는 모두 희성강씨 계열로, 신천강씨 직계 조상 기록인 상계 이동은 기자조선-마한-가락-신라-태봉-고려 흐름이기 때문에, 절대 부여계 온성강씨로 생각되는 고구려 출신일 수 없습니다. 조상이 모두 신라에서 관직을 한 것으로 나오는데, 난데 없이 고구려 출신이라니, 김유신 따라서 고구려를 정벌하면서 북상했는데, 부여계 온조와 마한 전투에서 조상이 전사한, 부여계와 함께한 것은 기자조선 때, 이후 부여계 고구려는 적입니다. 성골장군 별호 자체가 신라골품제 귀족을 뜻하는데, 난데없이 고구려 출신은 상충되는 기록입니다. 김관의가 외 6대조 강씨 족보를 직접 쓴 강씨 보다 더 정확한 출처인가요? 조선시대 양반은 5%밖에 없었고, 성씨는 주나라 때 희성친족을 낙하산 왕으로 분봉하면서부터 양반 귀족의 전유물입니다. 조선시대 후기가 되면서 노비도 성씨를 갖게 되면서, 임금 성씨인 김이박최씨 성은 많이 쓸 이유가 되지만, 강씨는 한반도 역사에서 늘 2인자 추구 유명한 성씨도 아니지만, 적어도 태봉 고려 조선 시대 태조와 연결되면서 사회 지도층 성씨가 분명한 혈통 호족입니다. 족보 허위를 논하기 위해선 조선 태조 이성계 강비, 강태주 강조, 고려 태조 외가, 태봉 궁예 강비 모두 삭제해야 합니다.

한국인 주요 유전자는 크게 6가지, 최다인 O1b2-M176 계열은 다수라 해도 50%가 안됩니다.


밤새 거지같은 편집기로 링크 쓰던 것이 순간 사라져서 화가 나서 언행이 곱지 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무슨 얘긴진 알겠습니다. 안그래도 개인 블로그에 조금씩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상나라 역대 군주 목록에 있는 역대 왕 대수와, 개별 이름 설명에서 표시하는 대수는 일치 돼야 하지 않나요? 위키 자체에서 같은 내용을 설명하는 숫자 정도는 서로 다른 틀린 대수를 동시에 게재하는 것도 수정하면 안된다는 뜻인가요?

왜냐하면 저는 축구와 관련된 내용을 블로그에 주로 정리하고 있는데, 가끔 위키 내용을 보면, 이미 발표된 내용도 영문위키 보다 업데이트도 늦고, 상세하지 못한 부분 있습니다. 역사 관련 위키 내용에 자꾸 손이 가게 되는 이유는, 내 연구 내용을 쓰려던 것은 아닌, 처음은 위키 자체 링크 연결 따라 가다 보면, 같은 내용 다른 설명이 버젓이 올라 있기 때문에 수정하다보면, 한글로 읽으면 모를 수도 있는 내용이 다른 위키 내용엔 상세하게 나와있는데, 그런 부분이 부실한 위키 내용을 상세하게 보강한다 생각하고, 다른 위키 내용을 복사해서 붙이면서 문맥을 맞추다 보니 자꾸 개인 연구 내용을 추가하게 되네요. 자제 하겠습니다. 위키 자체에 있는 상충되는 내용도 수정하면 안된다는 뜻인가요? 정말 한글 위키는 내용이 너무 부실해서, 어떤 땐 영문위키나 중국어 위키를 크롬 자동 번역기로 볼 때가 더 나을 때도 있습니다. 한자를 병기 해야 하는 이유는, 그냥 주왕 쓰면, 주나라 왕으로 제신 주왕을 착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자는 중국 문자라 단정하고 말씀하시는데, 음차만 빌려 쓴 것이라 언급하셨고, 그것은 그쪽 주관일 뿐입니다. 개인 연구도 아니고, 사망하신 교수님이 설명하던 강의 동영상도 있고, 다른 학자가 강연하시는 영상도 있습니다. 한자가 중국인 문자가 아닌 한국인 문자라 주장하는 학자분도 계신데, 음차 운운은 생각의 폭이 협소한 것입니다. 부여에서 도울 부 글자 다르게 쓰는 부분, 완전히 다른 글자가 아닌, 생략해서 원형을 남긴 것도 있고, 음차만 쓴 것이라 해도, 하필이면 그 많은 한자중에서 기자 서여와 같은 글자를 딱 맞춰서 음차만 빌려 쓴 것이라니 어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항상 자기 생각에 더해서 주류 생각이 이렇다 운운하시는데, 그 주류가 누군지 하나 하나 구체적으로 명단 제시해야, 그 사람들이 신뢰할 만한 사람들인지, 무시해도 될 꼴통들인지 확인하고 판단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역사학자가 몇이나 된다고 일일히 명시하지 못하고 두리뭉실 주류학계 운운합니까.

옛날엔 전문가들이 TV나 책, 강연으로 일방 주입식 교육했기 때문에, 반론의 여지가 없었지만, 요즘은 말 한마디 한마디 검증 반론하는 시대입니다. 운영자가 아니라면, 주류사학 운운하지 말고 구체적 명단과 출처를 단어마다 링크 달아주세요. 그것에 대한 검증 해보겠습니다. --Tol6560 (토론) 2019년 6월 26일 (수) 02:42 (KST)

1. 정 반대로 알고 계십니다. 위키백과의 근본 사상을 부정하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위키백과는 일반사용자가 참여하는 백과사전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더 100% 정확한 출처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일반 사용자가 쓰는 내용이 올바르다는 것을 보장할 방법은 그것 뿐이니까요. 바로 귀하처럼 자기 머리 속의 생각을 마음대로 적어 놓으면 안되기 때문에 출처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똑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2. 위키백과의 편집은 일반 사용자 모두가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운영자이건 아니건 아무 상관 없이 위키백과의 원칙에 부합된다면 어떻게 편집을 하건 자유입니다. 귀하의 출처 하나 없는 편집을 삭제하는 것 역시 운영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위키백과의 원칙입니다. 귀하 자신의 주관에 따라 위키백과의 운영자가 아니면 간섭하지 말라는 식의 말씀은 마시기 바랍니다.
교수 논문을 읽어봐도 엉터리 내용을 버젓이 시대 지리적 상황을 잘못 인식 그게 아니다, 라고 얘기하는 교수도 있습니다. 기자조선 평양이 요하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평양으로 인지하고 역사서를 해석하니 맞을리가 있나요? 그런 돌머리 교수들이 쓴 글 출처만 써야 하나요?
3. 위와 같은 말씀을 하시는 분께 대체 어떤 교수를 보여드리면 납득하실지 모르겠네요. 학계의 학자들을 그쪽 주관으로 돌머리 교수라 폄하하시는 분께서 제게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하는 편집은 적어도 석사 학위 이상 소유하신 학자분들의 논문이나 저서, 그리고 그런 것들의 종합체인 백과사전 등을 토대로 합니다. 예를 들어 이미 토론:기자조선#답변에서 말씀드린바 있습니다만, 그냥 일반적인 백과사전 정도만 보아도 상나라와 요하 유역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귀하의 상식 자체가 전혀 일반 역사 상식과 다른 것이 문제입니다. 귀하께서 일반 역사 지식과 대립하는 주장을 하시는 것까지는 납득할 수 있어도, 귀하가 상식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망상인 상황에서 귀하의 엉뚱한 출처 요구에 무슨 답변을 드려야 할까요? 부여, 고구려 등의 국호가 음차라는 것은 고등학교 국사 교육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일반 상식입니다. 이것을 주관이라고 폄하하면서 귀하가 추종하는 극소수 자칭 재야사학자의 주장을 금과옥조로 내놓는 분께 대체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귀하께서 보셨다는 그 사망하신 교수님의 설명도, 다른 학자의 강연도, 한자가 한국인 문자라 주장하는 학자도 모두 학계의 정설과 거리가 먼 자칭 재야사학자일 뿐입니다. 최대한 우호적으로 보아도 소수설일 뿐이고, 엄밀히 말해 소수설로 취급도 못받는 음모론이라는 것이 현실입니다. 귀하가 음모론을 믿고 그런 주장을 하시는 것까지는 자유이겠지만, 그렇다고 역사학계의 정설이 주류인지 보게 명단 내놓으라고 하시는 것까지 인정할 이유는 없습니다. 어차피 제가 아무리 학자 이름을 늘어놓아도 귀하께서는 바로 위의 인용문 같은 말씀을 하시며 돌머리 교수들이니 납득 못한다고 말씀하실게 뻔합니다. 그러니 귀하의 어처구니 없는 요구는 거부하겠습니다. 귀하가 정설, 주류 이론을 알고 싶으시면 직접 공부하십시오. 까놓고 말해 백과사전만 몇 개 찾아보아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Xakyntos (토론) 2019년 6월 26일 (수) 09:18 (KST)
그리고 항상 자기 생각에 더해서 주류 생각이 이렇다 운운하시는데, 그 주류가 누군지 하나 하나 구체적으로 명단 제시해야, 그 사람들이 신뢰할 만한 사람들인지, 무시해도 될 꼴통들인지 확인하고 판단 할 수 있습니다.
덧붙여, 위와 같은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니 더더욱 귀하를 상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미 누구를 제시하건 귀하의 주장과 맞지 않으면 꼴통이라고 무시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 대체 무슨 말씀이 필요하겠습니까? 게다가 위키백과에서 학자들을 꼴통이라 확인하고 판단할 권한 같은 것은 없습니다. 위키백과의 모든 내용은 출처 제시가 필요하고, 그 출처가 되는 학자에 대해 평가할 권한은 귀하께 없습니다. 귀하가 아무리 꼴통이라 판단해도 그것은 그쪽 주관일 뿐, 위키백과에서는 엄연히 공인된 출처로서 기능합니다. 그러니 귀하의 어처구니 없는 요구는 대응할 가치조차 없습니다. 귀하야말로 귀하의 주장에 대한 출처를 제시하십시오. 제 편집은 적어도 모두 출처로 학자들의 논문이나, 적어도 백과사전 정도는 제시하고 있으니 필요하시면 그것을 직접 보십시오. 제가 아무리 할일이 없어도 귀하의 망상에 맞장구 쳐주느라 모든 내용에 대한 학자들의 학설을 일일이 가져다 바칠 이유는 없습니다.--Xakyntos (토론) 2019년 6월 26일 (수) 09:28 (KST)

제가 의견이 중립적이지 못한 주관적이다 생각해서 삭제한 부분 출처 제시하셨던데, 그 출처 내용 읽어보면, 상반되는 의견도 있는데 왜 입맛에 맞는 부분만 인용하시죠? 같은 출처 다른 내용 출처 첨부했는데, 왜 삭제하시죠?--Tol6560 (토론) 2019년 6월 26일 (수) 12:46 (KST)

그래서 Xakyntos님은 남들을 평가할 권한 갖고 있는 운영자라는 겁니까, 일반 전문지식 갖춘 사용자라는 겁니까?--Tol6560 (토론) 2019년 6월 26일 (수) 12:36 (KST)

1. 일반 사용자입니다. 그리고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일반 사용자라도 귀하의 비중립적인 편집이나 독자연구를 되돌릴 권한은 있습니다.
2. 상반되는 의견이라면 아마도 윤내현 교수의 견해일 것 같은데, 바로 그 견해 밑에는 대놓고 이렇게 써 있죠. “이는 많은 논란을 안고 있는 문제로서, 적어도 고조선의 마지막 중심지는 평양이었다는 확실한 역사적 사실과 상충되는 바이다.” 물론 그 바로 아래 전체적인 결론을 통해서 “기자조선의 존재는 학계에서 부정되고 있다.”라고 확실하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긍정론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도 아니고, 지배적인 학설이 부정론이라는 결론이 전체 문서의 맥락이니 아무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만. 위키백과:중립적 시각의 아래 인용문을 참고하십시오. 엄연히 실체적 비중에 따라 부정론을 중심으로 긍정론도 언급하고 있으니 아래 인용문으로 볼 때 전혀 문제 없는 내용입니다.--Xakyntos (토론) 2019년 6월 26일 (수) 13:22 (KST)
각각의 시각들을 다루는 비중은 각각의 중요도에 따라야 합니다. 문서의 구성이나 설명에서 소수 의견이 다수 의견보다 두드러져서는 안 됩니다.
“같은 출처 다른 내용 출처 첨부했는데”라고 말씀하셨는데, 대체 어디에 어떤 출처를 첨부하셨나요? 문맥 같은 것 다 무시하고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말만 괄호 치고 쓰는 행위부터가 말도 안되는 것이며, 위 인용문을 보시다시피, 정설에 해당하는 부정론에 대해서 일일히 토씨 달듯이 소수 의견인 긍정론을 늘어놓는 것이 바로 위키백과에서 금지하는 중립적 시각 위반입니다. 멀쩡한 다수설, 정설보다 소수설을 강조해서 두드러져 보이게 만드는 것이니까요. 제발 부탁인데, 위키백과:중립적 시각을 좀 읽고 오세요. 위키백과:비주류 이론에 더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으니 이런 위키백과의 기본 원칙들부터 좀 숙지하시기 바랍니다.--Xakyntos (토론) 2019년 6월 26일 (수) 13:26 (KST)

Xakyntos님이 평가에서 제시하신 출처 글 최하단 글을 마무리 결론 짓는 중요한 문장입니다. 두 생각이 있고, 마무리 결론은 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님은 중간이 입맛에 맞는 부분은 인용하면서, 그 출처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무리 글은 배제하겠다는 것은 이중적 잣대입니다. 님이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모두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Tol6560 (토론) 2019년 6월 26일 (수) 13:38 (KST)

토론:기자 (고조선)에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귀하의 말씀을 그대로 돌려드려야 겠군요. 님이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실제로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Xakyntos (토론) 2019년 6월 26일 (수) 13:40 (KST)

신천 강(康)씨 관련 내용은 모두 관련 출처가 있는 내용편집

성씨 관련한 출처가 모두 있는 내용이고 제가 신천 강씨고 성씨를 다루는 내용은 역사와 무관한데 왜 삭제 하시죠? Xakyntos님이 내용 마다 출처 요구 없이 삭제하는 것은 월권입니다. Xakyntos님이 우리 집안 내 아버지가 누군지 나보다 더 잘 알아서, 내 아버지를 정해주나요? 성씨를 다루는데, 자기 족보 보다 더 분명한 출처가 어디있고, 집에 200년 넘은 족보에 그렇게 써있고, 신천강씨, 곡산강씨 재령강씨 종친회 가입돼있어서 계보 확인하고 쓴 내용입니다. 신천강씨 57개 분파도 일일히 확인한 내용인데 남의 집 성씨 역사를 님이 무슨 권리로 삭제합니까? 남의 집 족보 역사를 틀린 부분 있다면 그부분 출처 요구 확인하고 삭제하는 것이 정상이지 통 삭제하는 것이 정상입니까?

위에 강(姜)씨는 우리 희성 강(康)씨와 주나라 건국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상관 관계가 있고, 신천강씨 종친회 상계에 조상이 주무왕 동생 강숙으로 명시돼있습니다. 중국 강(康)씨 위키 유래를 보면 위강숙에서 나온 성씨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성씨를 강(康)씨를 쓰고 있고, 직계 조상 세보인 상계에 명시하고 있는데, 무슨 근거로 독자 연구 운운 삭제합니까?

강국 강(康)씨를 언급하는 이유는, 많은 강(康)씨들은 단일 혈통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동성이본 다른 혈통 존재하기 때문에, 유전자 검사 결과가 다른 혈통이면 혼인하는데 아무 문제 없다는 내용을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물론 최근엔 동성동본 금혼 폐지 8촌 이내로 한정 됐지만, 법과 상관 없이 그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호주제가 폐지됐다고 성씨 문중이 모두 사라졌나요?

신라에 근친혼 없었습니까? 성골, 진골 귀족 없습니까? 김관의 편년통록 관련 내용 없습니까? 편년통록 내용과 가계도 족보 확인하고 쓴 내용입니다. 출처 그대로 옮겨쓰면 저작권 위반이래서 그대로 못 옮기고 서술해서 쓰는데 왜 삭제합니까? 내 조상 계통 근친혼 언급이 숭조 사업입니까? 좋은 얘기는 아니라서 직접 누구 누구 표시는 편년 통록에 언급된 부분만 썼습니다. 위키 편집기 짜증나서 다시 쓰기도 힘드니까, 확실하게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부분만 삭제하고 원래대로 돌려주세요.

기자조선 안건드린다했고, 성씨 역사를 쓰는데, 상계 기록과 역사를 대조하면, 요하 요동성이 평양이 아니면, 상계 한줄씩 언급한 내용이, 조상 세대 수 시기와 그 시대 상황이 지리적으로 이해될 수 없는 부분 있습니다. 역사를 건드리지도 않았고, 단지 자기 성씨 역사에 대해서 언급하는 부분입니다. 그것이 님 기준에 맞지 않는다해서, 통삭제 할 부분입니까? 그런식으로 통삭제하면 성씨는 위키에서 다루면 안됩니다. 성씨 혈통에 국가가 어디있다고, 같은 성씨를 중국과 한국으로 나누질 않나, 국가주의 쩌네요. 님 기준으론 한국인 유전자가 단일 유전자가 아닌지, 주요 유전자가 무려 6종류나 되는지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런 통삭제는 명백한 중립적 시각 위반입니다. 어떤 틀 편견을 갖고 모든 사안에 접근하고 있으니까요. --Tol6560 (토론) 2019년 7월 2일 (화) 13:56 (KST)

주(周)의 시조 후직(后稷)은 이름이 기(棄)이다. 그 어머니는 유태씨(有邰氏) 여자로 강원(姜原)이라 하였다. 강원은 제곡(帝嚳)의 원비(元妃)였다. 기(棄)는 농사를 잘 지었다. 제요가 소문을 듣고 기를 농사(農師)로 삼았다. 제순은 “기(棄), 인민들이 바야흐로 굶고 있으니 그대가 후직(后稷)이 되어 때에 맞추어 백곡의 씨를 뿌리도록 하라고 했다. 기(棄)를 태(邰)에 봉하고 후직(后稷)이라 부르는 한편 희씨(姬氏) 성(姓)을 내렸다. 후직(后稷) 희(姬) 기(棄)의 15세(世) 손(孫)은 주(周)나라 문왕(文王), 상(商)나라 제후 서백(西伯) 희(姬) 창(昌)이다. 주(周)나라 문왕(文王)은 18명의 아들을 뒀는데, 적처(嫡妻) 태사(太姒)와 사이에 10명의 아들을 뒀고, 강(康)씨 뿌리가 되는 16세손 위강숙 희(姬) 봉(封)은 아홉째 아들이다.
1. 위키백과는 백과사전입니다. 족보가 아니죠. 그러므로 강씨에 대한 내용은 강씨와 직접 관련된 역사를 적는 곳이지 강씨의 시조인 주나라의 시조인 후직부터 이어진 전체 역사를 적는 곳이 아닙니다. 일단 이것부터 삭제 대상입니다. 위에 인용한 기나긴 귀하의 편집 내용 중 한 부분은 딱 이 한 줄“강씨의 시조는 중국 주나라 문왕의 아홉째 아들 위강숙 희봉이다”로 정리해야 정상입니다. 물론 제가 그런 정리를 할 이유도 가치도 없으니 삭제할 수밖에 없죠. 아니, 그 이전에 귀하가 편집하기 이전 문단에 딱 그대로 써 있는데 말이죠? 그 뒤의 나머지 내용 역시 족보에나 쓸 내용이지 백과사전에서 다룰 내용 자체가 아닙니다.
강(康)씨는 주 문왕(周 文王) 희(姬) 창(昌)의 적처(嫡妻) 태사(太姒)의 둘째 아들 주 무왕(周 武王)때 희봉(姬封)의 분봉국은 강(康)나라로, 희봉(姬封)은 주(周)나라 5단계 관작(官爵)인 공후백자남(公候伯子男)중에서 후(候) 관작(官爵), 강후(康候)로 불렸고, 신천강씨 대종회 중국 강(康)씨와 교류 조사 내용에 따르면, 중국 길림성 금주국사-중국 국가 박물관에 소장된 서주시대 초기 청동기, 군권을 상징하는 강후부(康候斧)가 출토되면서 강후(康候)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2. 바로 다음 부분인데, 직접 읽어나 보십시오. 완벽한 비문(非文)입니다. 본인이 무슨 글을 쓰고 계신지부터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비문을 남겨둘 이유도 가치도 역시 없습니다. 나머지 내용들 역시 비문 투성이이죠.
3. 게다가 중간에는 평양이 요양이라는 음모론이 떡하니 실려 있네요? 역시 삭제 대상. 물론 그 밑에 써 있는 사마르칸트 운운도 아무런 출처 없는 독자연구네요. 대놓고 “XXX로 보인다”라고 자기 생각을 출처 없이 적고 있군요. 다른 내용들도 전체적으로 귀하의 독자연구라는 것은 아래 인용문만 보아도 확실합니다.
신천강씨 시조인 강호경(康虎景)을 성(姓)을 뺀, 호경(虎景)으로 부르려는 시도가 있다. 강씨(康氏) 시조 성씨를 빼려는 이유는 분명하다. 태조 왕건의 조부인 작제건 상계가 불 분명한데다. 외가로 보이는 강보육(康寶育)을 원덕대왕(元德大王)으로 추존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씨와 시대 상황을 고려 후기와 현대 상황에 꿰 맞추려 하기 때문에, 혈통이 불편해 보이기 때문으로, 2가지 이해 해야 할 요소가 있다. 첫 번째는 성(姓)은 나라를 창건하면 소종(小宗)인 씨(氏)로 새 성(姓)을 창성(創姓)하는 것이 성씨(姓氏)란 것으로, 후기 국가로 오면서 분파로 구분 바꾸지 않게 된 것이고, 두 번째는 강충의 두 아들은 신라 시대 사람으로, 신천강씨 직계 조상 기록인 상계에 따르면, 관작 이동이 마한(馬韓)강주(康州)신라(新羅 흐름으로 벼슬이 기록돼있고, 마한이 망하는 시기 강주 지역은 가야가 있었다. 신라에서 벼슬은 이벌찬으로 기록돼있고, 이벌찬은 성골귀족이 받는 벼슬이다. 태봉국 김궁예(金弓裔) 왕후 강비(康妃)의 아버지 강연창(康衍昌)은 강호경(康虎景)의 6세 손이다. 신라가 망할 때부터 태봉국까지, 강호경 후손은 신라에서 관직을 했다. 신라는 사로 6촌장왕이 6명인 형태로, 씨족 권력을 지키기 위한 진골 성골 귀족이 존재했고, 신라가 망할 때 근친 혼인으로 왕위에 오르지 못해 죽은 뒤에 추봉되는 갈문왕(葛文王)이 있었다. 강보육(康寶育)의 부인은 형인 강보전(康寶甸)의 딸인 조카 강덕주(康德州)다. 강보육(康寶育)의 딸 강한진의(康韓辰義) 아들은 작제건(作帝建)이고, 강보전(康寶甸)의 별호는 이제건(伊帝建)으로 보인다. 신라 시대엔 어색한 일이 아니였지만, 고려 중기 송나라와 교류하면서, 성씨(姓氏) 족내혼을 금기시 하는 송(宋)나라 문화를 숭상하는 문신들 영향으로 고려 왕조 상계는 불편한 진실이 됐다.
대놓고 음모론을 설파하고 계시네요? 귀하의 생각에, 그리고 어쩌면 강씨 대동회 같은 곳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위키백과에서는 그런 음모론 취급 안합니다. 당연히 삭제 대상이군요. 이렇게 하나씩 살펴보면 볼수록 귀하의 편집은 그냥 통째로 독자연구로 취급해야 할 이유가 너무나도 분명하군요. 절반은 백과사전에 쓸 이유가 없는 족보의 상세 내용. 나머지 절반은 음모론. 당연히 삭제 대상 아닙니까?--Xakyntos (토론) 2019년 7월 2일 (화) 14:39 (KST)
  1. https://en.m.wikipedia.org/wiki/Turkic_peoples
  2. "Xakyntos"의 사용자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