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량 (1519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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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출생과 수학 ===
이량은 [[1519년]] [[효령대군]]의 4대손 [[전성군 (1488년)|전성군]] [[전성군 (1488년)|이대]]와 정종보(鄭宗輔)의 딸 동래정씨의 여섯째 아들로 [[경상남도]] [[의령군]] 서간(西干)에서 태어났다. 명종의 왕비인 [[인순왕후]](仁順王后)의 외숙으로, 부계로는 [[효령대군]]의 5대손이었다. 어머니 동래정씨는 정종보의 딸이며 [[조선 세조|세조]] 때의 재상 [[정창손]](鄭昌孫)의 증손녀였다.
 
아버지 [[전성군 (1488년)|이대]]는 [[용강]][[현령]]에 이르렀지만 이량과 그의 형제들의 거듭된 출세로 [[증직]]으로 [[호조]][[참판]]과 [[호조판서]]에 [[추증]]되었다가 여러번 거듭 [[추증]]되어 [[증직|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그의 여동생 중 한명은 [[심강]]에게 시집갔는데, [[인순왕후]]와 [[심의겸]], [[심충겸]] 남매의 어머니가 된다.
 
어려서 [[정사룡]](鄭士龍)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46년]](명종 2) [[생원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그해의 [[진사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된다. 그 뒤 [[음서 제도|음보]]로 출사하여 [[현신교위]](顯信校尉)을 지냈다.
 
[[1551년]]에는 [[성균관]]에서 수학하였다. 그해 [[2월]] [[사간원]]과 [[사헌부]]에서 [[불교]][[양종]]을 혁파할 것을 여러번 주청했다가 거절당하자 [[2월 11일]] [[성균관]] 강학을 거부하였다. 그러나 [[조선 명종|명종]]은 이들을 타일렀고, 임백령(辛百齡)·이언이(李彦怡)·박율(朴栗)·강극성(姜克誠)·심순(沈荀)·정붕열(丁朋說) 등 6인과 함께 이틀만인 [[2월 13일]]에 다시 [[성균관]]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