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신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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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글 →‎6·29 선언 이후: '87년에는 아직 문공부. 문광부는 '98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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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말 오랫동안 언론의 활동을 규제해 왔던 언론기본법이 폐지되면서 대한민국의 신문은 새롭게 변모하였다. [[언론통폐합]]으로 폐간되었던 신문들이 일부 복간되었으며 우후죽순처럼 창간되는 신문이 늘어났다. 또한, 과거 타성화되다시피 했던 외적인 압력에서 벗어나 정치적 민주화 물결과 함께 언론도 그 본연의 환경감시기능과 비판기능을 크게 회복하였고 회복을 위한 의지도 두드러졌다.<ref name="글로벌_1"/>
 
1987년에는 문화관광부(구 문공부)에문화공보부에 약 80개의 일간신문이 등록되어 있었고, 중앙의 경제·스포츠·영자지를 포함한 조·석간지의 발행부수는 약 1,268만 부로 추산되었다. 1987년의 [[6·29 선언]]은 언론이 지금까지의 권위주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율경쟁시대에 진입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6·29선언 이후에 정치 상황의 변화, 경제 성장, 그리고 [[서울올림픽]] 개최 등을 통해서 언론은 이전의 여러 가지 통제에서 점진적으로 벗어나 과거에는 금기시 되었던 영역을 과감하게 보도할 수 있게 되었다. 1987년 11월에는 '[[언론기본법]]'이 폐지되었고 이에 앞서 8월부터는 언론통폐합 때에 폐기되었던 신문사의 주재기자 제도가 부분적으로 부활되었다. 9월부터는 6년만에 신문의 증면이 이루어졌고 10월에는 기독교방송이 뉴스방송을 다시 시작했다.<ref name="글로벌_1"/>
 
[[제6공화국]]의 출범을 전후해서 신문, 잡지 등 정기간행물의 숫자는 급격히 늘어났다. 자유화, 자율화의 물결을 타고 다양한 종류의 신문과 잡지들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6·29선언 이후 언론정책의 변화가 있자 1980년 언론통폐합 때에 폐간된 신문과 잡지 등의 복간과 신규 언론기관의 설립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했다. 서울에서는 《[[한겨레신문]]》(1988. 5. 15), 《[[세계일보]]》(1989. 2. 10), 《[[국민일보]]》(1988. 12. 10) 등의 종합일간지가 새로 창간되었고, 경제지를 비롯한 특수지, 그리고 지방에서는 언론통폐합 때에 폐간된 신문들의 복간과 신규등록 신문의 창간 등이 활발했다. 지방지 외에 서울의 지역과 지방의 군단위 '지역 신문'의 창간도 늘어나서 6공 이후의 특이한 언론현상으로 지적되었다.<ref name="글로벌_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