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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ung 2San color portrait.JPGjpg|295px100px|섬네일|default|아웅산아웅 산]]
[[파일:Myanmar-Yangon-Aung San Statue.jpg|200px|right|thumb|아웅 산 동상]]
'''아웅 산'''({{llang|my|[[파일:BogyokeAungSan.png]]ဗိုလ်ချုပ် အောင်ဆန်း|Bogyoke Aung San}}, [[1915년]] [[2월 13일]]- [[1947년]] [[7월 19일]])은 [[미얀마]]의 독립운동 혁명가, 정치인, 군인이다. 버마의 독립에 결정적 공헌을 했으나, 그 자신은 독립 달성 6개월전에 암살되었다. 현재까지 미얀마 국민들로부터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아웅산수찌]]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 그의 생애 ==
=== 미얀마 독립 전 ===
아웅 산의 가문은 영국이 [[미얀마]]를 합병한([[1886년]]) 이후 반영 저항운동을 주도함으로써 명성이 높았다. 아웅 산은 [[양곤대학교]]에 재학하는 동안 학생회 서기로 활동했고 1936년 2월 우 누와 함께 동맹휴학을 이끌었다. 1937년 미얀마가 인도에서 분리되고 이듬해 대학을 졸업한 뒤, 민족주의 조직인 '도바마 아시-아요네'(우리 미얀마인 협회)에서 일하다가 1939년 이 조직의 총서기가 되었다. 아웅 산은 [[일본]]에서 군사 훈련을 받은 '''30인의 동지'''의 한 사람으로, 1942년 일본군과 함께 [[미얀마]]로 돌아왔으나, [[영국]]보다 잔인한 방법으로 통치하는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30인의 동지와 함께 '''[[반파시스트 인민자유동맹]](AFPFL)'''을 결성, 일본에 대한 저항운동을 시작했다. 일본군이 미얀마에서 철수하고 영국이 미얀마를 재점령하자, 아웅 산은 [[런던]]으로 건너가 영국 정부와 담판을 벌여 독립을 이끌어냈다.
[[파일:Aung 2.JPG|295px|섬네일|default|아웅산]]
=== 미얀마 독립 후 ===
그가 이끄는 단체 AFPFL은 1947년 4월 선거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 해 7월 19일 내각요원과 함께 회의 중 암살당하여, 아웅 산 대신 [[우 누]]가 미얀마의 초대 총리에 취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