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세 프랑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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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이기도 했던 [[부르고뉴 공국]]의 통치자 [[막시밀리안 1세 (신성 로마 제국)|막시밀리안 1세]]는 프랑스 동부의 상당 지역을 자신의 봉토로 삼고 있었다. 이 외에도 남부의 [[아르마냐크]] 지역과 [[툴루즈]], [[앙주]] 등도 자치적인 봉건 영주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ref>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정종화 역, 역사의 위대한 떨림, 민음사, 2002년, ISBN 89-374-2489-4, 319-320쪽</ref> 이들 각 지방의 봉건 영주들은 형식상 프랑스 국왕의 신하였으나 사실상 자신의 봉토에 대한 자치권을 확보하고 있었고 때때로 국왕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ref group="주해">13세기에 있었던 [[알비 십자군]]은 [[카타리파]]를 [[이단]]으로 규정한 종교적 명분을 표방하였으나 [[툴루즈]] 등 프랑스 남부 지역에 대한 프랑스 국왕의 지배력 확보를 위한 전쟁이기도 하였다. 근대 초기에 들어서도 프랑스에서는 종종 귀족들의 봉기가 이어졌고 [[루이 14세]] 때에도 [[프롱드의 난]]과 같은 귀족 반란이 있었다.</ref>
 
{{프랑스의 역사}}
[[샤를 7세]]는 [[백년 전쟁]]에서 승리한 후 프랑스 내의 잉글랜드 봉토를 국왕의 직할령으로 편입하였다. 샤를 7세의 뒤를 이어 즉위한 [[루이 11세]]는 각지의 귀족 반란을 진압하고 중앙집권제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후 16세기 까지 이어진 [[발루아 왕가]]의 치세 동안 프랑스는 점차 왕권이 강화되면서 중앙집권제의 형태를 띄게 된다. <ref name="윤선자"/>
 
[[17세기]]에 들어 [[부르봉 왕가]]가 들어섰다. 부르봉 왕가의 [[루이 13세]]는 [[절대 왕정]]으로 불리는 독점적인 군주 권력을 확보하였다. [[루이 14세]]에 이르러서는 부르고뉴 공국을 합병하여 프랑스 대부분의 지역이 국왕의 직접 통치하에 놓이게 되었고 여러 차례의 대외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였다.
 
{{프랑스의 역사}}
<br clear="left"/>
[[1461년]]에서부터 [[1789년]]까지 프랑스의 영토 변화는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