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달라 이사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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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158년]]) 계립령에 이어 [[죽령]](竹嶺)의 길을 열었으며, 9년([[162년]]) 사도성(沙道城)에 순행해 병사들을 위로했다. 이 해에 왜인들이 우호적인 목적으로 신라를 방문했다.
 
12년([[165년]]) 10월 [[아찬]] 길선(吉宣)이 모반했다가 발각되어 [[백제]]로 도망치자 왕은 백제에 길선의 신병을 요구했으나 백제는 거절했고, 이에 왕이 몸소 백제 원정을 나섰으나 공성전을 벌이던 중 식량이 떨어져 퇴각했다. 2년 뒤인 14년([[167년]]) 7월 백제가 신라를 역습해 두 성을 함락시키고 주민 1천여 명을 잡아갔으며, 8월에는 [[일길찬]](一吉湌) 흥선을 시켜 군사 2만으로 백제를 공격하고 왕은 8천 기(騎)를 거느리고 [[한강|한수]](漢水)를 건넜으며, 이에 백제는 노략한 주민들을 반환하고 강화를 청하였다고 한다(길선의 모반 사건은 신라 역사상 최초의 「반란」이었다).
 
17년([[170년]]) 봄 2월에 [[시조묘]](始祖廟)를 중수하였다. 10월에 백제가 다시 신라를 침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