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넘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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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징겐===
:''{{인용문3|left|외젠 공작과 황제군은 세 번이나 격퇴되었고, 숲으로 물러났으나 진짜 승리를 얻었다.'' - 메로드 웨스테르.<ref>Spencer: ''Blenheim: Battle for Europe,'' p. 270</ref>|메로드 웨스테르}}
 
[[그림:Spanischer Erbfolgekrieg 1704, Lutzingen, Germany.jpg|leftright|thumb|150px|독일 [[루징겐]](Lutzingen)의 1704년 블레넘 전투 기념비.]]
 
동맹군의 우익에 외젠 공작의 프로이센, 덴마크 군은 선제후와 마르생이 지휘하는 수적 우위를 지닌 군대와 힘겹게 전투하고 있었다. [[레오폴트 1세 (안할트데사우)|안할트데사우 공작]](Prince of Anhalt-Dessau)은 네벨 강을 건너 루징겐의 요새화된 도시를 돌격하였다. 여기서 네벨 강은 장애물이 장애가 되지 못했지만, 마을의 외각에 위치한 프랑스-바이에른군의 포병대는 슈벤네바흐(Schwennenbach)의 작은 마을에까지 펼쳐진 개활지에 확실한 포격을 가할 수 있었다. 보병대가 강을 건너자, 그들은 마페이의 보병대에 공격을 받았고, 마을 앞과 우익의 수풀에 위치한 바이에른 포병이 일제사격을 가했다. 프로이센 군은 많은 사상자에도 불구하고 포병대를 공격했고, 숄텐(Scholten) 백작이 지휘하는 덴마크군은 프랑스 보병대를 마을 너머로 밀어내려고 하였다.<ref>Falkner: ''Blenheim 1704,'' p. 71</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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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병대가 힘겨운 전투를 벌이는 동안, 외젠 공작의 기병대가 네벨 강을 건넜다. 제국 기병 대장 [[브라운슈바이크-뤼넨베르크의 막시밀리안 빌헬름|하노버의 막시밀리안 공작]](Prince Maximilian of Hanover)가 지휘하는 오스트리아 기병대의 1열은 마르생이 지휘하는 기병대 2열에 의해 압박을 받았고, 혼란상태에 빠져 네벨 강을 건너 되돌아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친 프랑스 군은 이 이점을 살리는 데 실패하였고, 2개의 기병부대는 그들의 재집결을 시도하였다.<ref>Tincey: ''Blenheim 1704: The Duke of Marlborough's Masterpiece,'' p. 67</ref> 그 동안 기병대의 지원 없이지면서 포위를 당할 위험을 안게 되자 프로이센과 덴마크 보병대는 네벨 강을 건너 후퇴해야 했다. 외젠 공작 부대의 일부는 혼란상태에 빠진 채로 강물을 건너야 했고, 바이에른군은 10개의 보병대 깃발과 수백 명의 포로를 얻었다. 이는 오직 외젠 공작과 프로이센 왕자의 리더쉽이 오스트리아군이 패주하여 전장을 떠나는 것을 막았기 때문이었다.<ref>Spencer: ''Blenheim: Battle for Europe,'' p. 268</ref>
 
슈벤네바흐의 근처(그들의 시작점보다 후방에 위치해 있다)에서 그의 군대를 재집결한 후에 외젠 공작은 두 번째 공격을 준비했고, 이는 [[뷔르템베르크 공작 에르하르트 루트비히|뷔르템베르크-테크의 공작]](Duke of Württemberg-Teck)에 이해 지휘되었다. 그러나 아직 그들은 루징겐과 오벨르글류의 포병대로부터 살인적인 십자포화를 당했고, 다시 한 번 패주했다. 프랑스와 바이에른은 그러나 그들의 목표에 거의 혼란을 느끼던 상태였고, 그들은 역시 "말에 올랐다가 내렸다가, 그의 병사들을 새롭게 격려했다."라고 묘사된 선제후와 같은 그들의 사령관들로부터의 격려가 필요했다.<ref>Falkner: ''Blenheim 1704,'' p. 73</ref> 안할트-데사우의 덴마크-프로이센 보병대는 두 번째 공격을 개시했으나 적절한 지원 없이는 진격을 유지할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그들은 강을 넘어 퇴각했다.
 
===중앙과 오베르글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