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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의 문서편집이 단어하나마다 하나하나 해당된 책의 출처를 달아야한다는 법칙이 어디있지요? [[위키백과]]가 논문을 작성하는 겁니까? 신문기사나 저술과 저작에 의한 책자를 만드는 겁니까? 그저 '''아마츄어리즘에 의거하여 사실적인 내용을 수록하는 인터넷 백과사전'''으로 알고 있는데 착각은 [[사용자:Xakyntos|Xakyntos]] ([[사용자토론:Xakyntos|토론]]) 사용자가 하고 있는 겁니다..그리고 왜 〈가짜 출처〉라고 몰아대지요? 인용된 책자들 중에 하나라도 [[천부경]]에 대한 기록이 있다면 절대 〈가짜 출처〉가 될 수 없고 '''문서 자체가 [[최치원]]라는 문서니까 〈가짜 출처〉는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또한 '''별도로 출처제공으로 인용된 '신문기사'나 '서책'은 이미 그자체로 출처에 대한 진실을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사용자:Xakyntos|Xakyntos]] ([[사용자토론:Xakyntos|토론]]) 사용자의 주장은 어거지고 헛된 주장이라는 것입니다..[[사용자:Lexus|진실탐구]] ([[사용자토론:Lexus|토론]]) 2013년 8월 28일 (수) 16:55 (KST)
: 항목을 설명하는 주요한 개요에 자기 생각을 근거없이 적으면 사실적인 내용이라고 보장할 수도 없고 보는 사람에게 잘못된 지식을 주게 됩니다. 최치원 문서의 옛 판본을 보니 “특히 8l자로 구성된 천부경은 단군의 가르침을 단군의 신하 신지(神志)가 전문(篆文, 전서체의 문자)으로 비석에 새겨 전해오던 것을 최치원이 이를 한자로 번역하여 태백산(묘향산) 꼭대기의 바위에 새긴 경전으로 전해지고 있다.”라는 문장에 방대한 참조 주석을 달았는데 그 중 '''하나라도''' 최치원이 천부경을 한자로 번역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 않으면 이 문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문장에 참조 주석을 달았다는 것은 이 참조에 포함된 '''모든 것'''이 이 문장의 근거가 된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라도 [[천부경]]에 대한 기록이 있다면 절대 〈가짜 출처〉가 될 수 없고”라고 하셨는데, 오히려 하나라도 천부경에 대한 기록이 없다면 절대 진짜 출처가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명백히 Lexus님이 출처에 대한 개념을 잘못 아시는 겁니다.--[[사용자:Synparaorthodox|Synparaorthodox]] ([[사용자토론:Synparaorthodox|토론]]) 2013년 8월 29일 (목) 10:22 (KST)
 
{{인용문|"8l자로 구성된 [[천부경]]은 [[단군]]의 가르침을 [[단군]]의 신하 신지(神志)가 전문(篆文, 전서체의 문자)으로 비석에 새겨 전해오던 것을 최치원이 이를 한자로 번역하여 태백산([[묘향산]]) 꼭대기의 바위에 새긴 경전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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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은 별도의 출처로 제공된 《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이라는 책자에 분명히 수록된 내용입니다. [[1997년]]에 연세대학교출판부에서 출판한 책이라고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저자 유동식 선생에 대해서는 1922년, 황해 평산군 남천 출생. 1973 ~ 1988년 연세대 신과대 교수로 재직했다는 사실과 최치원의 풍류도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수록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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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하지만 《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이라는 책자를 별로 출처로 제공하였고 기타 출처 책자는 [[최치원]] 문서자체의 내용을 복수 출처로 제공하였다는 것입니다..그런데 '''주요한 개요에 자기 생각을 근거없이 적으면 사실적인 내용이라고 보장할 수도 없고 보는 사람에게 잘못된 지식을 주게 됩니다..'''이라는 내용은 어떻게 현 상황에 연결을 지을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됩니다..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책자 376페이지 중 64페이지에 실려 있다는 기록까지 찾을 수가 있습니다..'''정보화시대에 이러한 검색까지 하지말고 오로지 책자를 스스로 찾아 읽어야 출처로만 제공할 수 있다니 이것이 이치에 맞지 않은 [[사용자:Xakyntos|Xakyntos]] ([[사용자토론:Xakyntos|토론]]) 사용자의 주장이라는 것입니다..'''
 
이밖에도 〈'''개천의 본래의 뜻은 단군조선의 건국일을 뜻한다기보다는, 환웅(桓雄)이 천신(天神)인 환인(桓因)의 뜻을 받아 처음으로 하늘문을 열고 태백산 신단수(神壇樹) 아래에 내려와 홍익인간(弘益人間)·이화세계(理化世界)의 대업을 시작한 BC 2457년(上元 甲子年) 음력 10월 3일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라는 내용은 재상 한국편(한국편)(2005년 출판사, 이가서)와 『대종교중과육십년사』(대종교총본사간, 1971)에 수록된 내용으로 검색할 수 있습니다..
 
특히 최치원이 언급했다는 신라 6촌부락(신라 6개 성씨의 기원)의 내용은 『삼국유사(三國遺事)』와 『대종교요감』(대종교총본사간, 1983)에 실려있는 내용이기에 출처로 인용한 것입니다. 이것을 [[사용자:Xakyntos|Xakyntos]] ([[사용자토론:Xakyntos|토론]]) 사용자가 임의로 삭제 및 되돌림, 수정, 짜깁기를 해놓고 〈가짜 출처〉로 몰아대는 현실에 있습니다.. 과연 어떤 방법이 옳고 그른 것인지 명확히 밝혀 앞으로는 쫓아다니며 편집방해를 하는 일이 없도록 확실하게 해둘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위키백과]] 관리자분들의 공정한 판단과 의견이 있으시길 바랍니다..[[사용자:Lexus|진실탐구]] ([[사용자토론:Lexus|토론]]) 2013년 8월 29일 (목) 10:52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