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 (오왕):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22번째 줄:
그러나 오나라에서는 구리와 소금이 많아 세금을 거두지 않았고, 돈을 받고 다른 이를 대신하여 병역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그때마다 시세에 맞추어 돈을 주었다. 해마다 사람을 보내 나라 안의 재능 있는 자들의 안부를 묻고, 마을의 어진 이들에게는 상을 주었다. 다른 군과 국에서 도망 온 사람들을 숨겨주어 그곳의 관리가 잡지 못하게 하였고, 도망 온 사람들을 내어주지 않았다. 40여 년을 이와 같이 다스리니, 유비는 사람들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조정의조조의 견제===
[[조조 (전한)|조조]](鼂錯)는 황태자의 가령(家令)이 되어 황태자의 총애를 받자, 한가한 틈을 타 오나라는 죄를 자주 지었으므로 봉지를 깎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문제에게도 여러 차례 상주하였으나, 문제는 관용을 베풀고 차마 벌하지 못하였다. 오나라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멋대로 행동하였다. [[전한 경제|경제]](景帝)가 즉위한 후, 조조는 어사대부(御史大夫)에 임명되었다. 조조는 또 유비를 비난하며 경제를 설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