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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다른 뜻}} '''김용제'''(金龍濟, <small>일본식 이름: </small>金村龍濟, 1909년 2월 3일 ~ 1994년 6월 21일)는 한국의 시인이며 문학평...)
 
1930년대 후반부터는 주로 평론가로 활동하며 적극적인 친일 문학 활동에 나섰다. [[1937년]] [[조선문인보국회]] 상임이사를 맡았고, 친일잡지 《[[동양지광]]》의 주간으로 일하며 이 잡지에 〈전쟁문학의 전망〉(1939)이라는 글을 투고하여 [[태평양 전쟁]]에 대한 문단의 지원 필요성에 대해 선구적인 의견을 밝혔다.
 
일본어 시집 《아세아시집》으로 [[1943년]] 제1회 국어문예총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동양지광》 연재 시를 묶은 이 시집은 [[이광수]]가 '열렬한 일본 정신의 기백'이 있다고 평했을 만큼 친일성이 강한 작품이다. 김용제는 수상과 함께 받은 상금 중 일부를 국방헌금으로 헌납했다. 총 친일 저작물 수는 25편이 밝혀져 있다<ref>김재용, [http://www.artnstudy.com/zineasf/Nowart/penitence/lecture/03.htm 친일문학 작품목록] 《실천문학》 (2002년 가을호)</ref>.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과 [[친일파 708인 명단]], [[민족문제연구소]]가 [[2005년]]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1차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1차 명단]] 문학 부문에 선정되었다. 김용제 본인은 [[1978년]] 〈고백적 친일문학론〉이라는 글을 발표하여 일제 말기의 친일 행적은 독립 운동을 위한 위장이었으며, 《동양지광》은 대표 [[박희도 (1889년)|박희도]], 부대표 [[장덕수]] 등이 결성한 항일 지하단체의 본거지였다고 주장한 바 있다.
 
광복 후에는 뚜렷한 친일 경력 때문에 약 5년간 집필 활동을 중단하였다가, [[한국 전쟁]]과 함께 반공주의 작가로 다시 활동을 재개하여 시와 소설을 발표했다. 서정시집인 《산무정(山無情)》과 소설 《김삿갓 방랑기》가 광복 후 발표한 대표작이다. 《김삿갓 방랑기》는 1950년대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가 되어, 변절한 친일 문인에서 김삿갓 전문가로 김용제의 이미지를 바꾸어놓기도 했다<ref>노정용, [http://www.kcaf.or.kr/zine/artspaper95_10/19951012.htm 주제로 보는 출판정보/ 우리말 큰사전에서 컴퓨서적에 이르기까지 -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를 통해서 본 50년 출판의 역사] 《문화예술》 (1995년 10월호)</ref>.
[[분류:한국의 시인]]
[[분류:한국의 소설가]]
[[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
[[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분류:충청북도 출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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