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혜장황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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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족 정보
|이름 = 효혜장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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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치제]]는 모후(母后)인 [[효장문황후]]의 압권으로 순치 8년(1651년)에 황후로 맞이한 외사촌 누이인 [[폐후 박이제길특씨]]와 불화하여 결국 2년 뒤인 순치 10년(1653년)에 그녀를 폐후하여 후궁인 정비(靜妃)로 강봉하였다.<ref>샹관핑, 《중국사 열전 - 后妃》, 달과소, 2006</ref> 이에 [[효장문황후]]는 질녀 [[폐후 박이제길특씨]]를 대신하여 다음 해인 순치 11년(1654년) 5월에 조카 작이제(폐후의 오빠)의 두 딸을 입궁시켜 [[순치제]]의 후궁(妃)로 삼았다가 다음 달인 6월에 이 자매 중 언니를 황후로 책봉하였는데, 이 여인이 바로 효혜장황후이다. 그러나 그녀 역시 [[순치제]]의 사랑을 얻지 못했으며, 2년 뒤 [[순치제]]의 일생일대의 연인인 [[동악비]]가 등장하여 위태로운 황후 생활을 연명하다가<ref>지앙성난, 《중국을 뒤흔든 여인들》, 시그마북스, 2007</ref> [[동악비]]의 사망과 이어진 [[순치제]]의 급서<ref>일설에는 출가해서 승려가 되었다는 설이 존재한다. 출처: 샹관핑, 《중국사 열전 - 皇帝》, 달과소, 2006</ref>로 [[순치제]]의 서3남 [[강희제]]가 황위에 올라 황태후로 봉숭되어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1717년 궁전에서 76세로 사망하였다. 후사는 없다.
 
 
== 기타 ==
* 중국의 유명 작가이자 언론인인 [[김용 (1924년)|김용]]의 대표작인대표작으로 수차례 영화·드라마화 된 《[[녹정기]]》에 [[순치제]]가 [[동악비]] 모자를 암살한 흉수로 효혜장황후를 의심하여 환관 해로공에게 은밀히 감시해 증거를 찾도록 명한지목한 내용이 있다.<ref>[[김용 (1924년)|김용]], 《[[녹정기]]》 1권, 1972년</ref>
 
 
== 가족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