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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년]], 모용외는 선비대선우(鮮卑大單于)를 자칭하였으며, 혼란에 빠진 서진에서 유민들이 모용외에게 귀부하여 오는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국력을 크게 키웠다. 이에 서진의 평주자사(平州刺史) 최비(崔毖)가 유민들에게 돌아올 것을 종용하였으나 유민들이 듣지 않자 모용외가 억류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318년]]에 [[우문부]], [[단부]], [[고구려]](高句麗)를 끌어들여 모용외를 협공하게 하였는데 모용외는 [[삼국]]의 [[군사]]를 이간질시켜 위기를 벗어나고 [[우문부]]의 [[군대]]를 크게 격파하였다. 이에 최비는 모용외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결국 [[319년]]에 [[고구려]]로 망명하였으며, 모용외는 [[요동]]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후 모용외는 [[고구려]]와 적대하여 여러 차례 교전하였다.
[[320년]]에 [[동진]](東晉)은 모용외를 안북장군·평주자사(安北將軍平州刺史)로 삼았으며, 이후 모용외는 [[동진]]에 충성하여 [[후조]](後趙)와 대립하였다. [[321년]]에는 [[동진]]에서 모용외에게
[[333년]]에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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