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둔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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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어느 역사학계도 명확하게, 단정적으로 논란이 있을 때는 함부로 비정하지는 않습니다만. 그 부분을 수정한게 문제가 되나요?
182.212.6.95(토론)의 12267231판 편집을 되돌림 / 네. 논란은 애초에 없으니까요. 논란이 있다고 주장하는 극소수의 재야사학자들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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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에 대한 논란 ==
한사군의 4개 군 가운데 위치가 명확하게 확인된 낙랑군을 포함한제외한 3개 군은 위치와 영역에 대해 다수의 논란이 있다. 고려 및 조선시대에는 대체로 [[강릉]]에 임둔이 위치해 있었다고 보았으며<ref>《고려사》〈지리지〉 / 《세종실록》〈지리지〉 등</ref> 강원도 일대라는 주장, 경기도 서부 지역이라는 주장 등이 제기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낙랑군을 발굴 조사하면서 한사군에 대한 비정이 이루어졌을 때, 임둔군은 함경도 남부 및 강원도 일대로 비정되었다.<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37351&cid=1590&categoryId=1590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임둔군 항목] 네이버 제공</ref> 역사학계 및 고고학계에서는 영흥 소라리 유적 및 부조예군 인장 등의 발굴 결과를 토대로 함경남도 남부와 강원도 북부 일대가 임둔군이라 보고 있다.<ref name="임둔군"/> 그러나 일부 재야사학자들은 이러한 발굴 결과가 조작된 것이라 주장하며 임둔태수장(臨屯太守章)이 [[랴오닝 성]] 서부 지역에서 발굴되었다는 사실을 토대로 임둔군이 요서 지방에 설치되었다고 주장한다.<ref>복기대, 〈'임둔태수장'(臨屯太守章) 봉니를 통해 본 한사군의 위치〉, 《백산학보》 61집</ref>
 
== 관련 항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