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황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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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치가 전횡하던 시대에는 황족이나 공신들이 살해당하는 등 정계에서는 피를 부르는 사건이 계속되었던 시대였지만, 여치가 대외 원정을 위시한 대사업을 극력 줄여 국민생활안정에 진력했므로, 시정은 매우 평화롭고 안정되었다. 특히 원정하느라고 고조가 부재한 사이에 건국공신이자 고조의 충복인 한신이 반란을 획책했다고 누명을 씌워서 허리를 끊어 살해한 일은, 천하가 재분열되어 전쟁하는 일을 막게 되어 그 공적은 크다. 후의 문제와 경제에 의한 문경의 치와 무제 시대의 대원정을 필두로 하는 대사업의 정치상·경제상 기초는 이 시대에 만들어진 데다가 새롭게 후한에 걸친 동란 때 적미의 군대는 전한 황제들의 묘를 도굴하여 안치되었던 여치의 사체를 훼손하였다. 광무제는 여치에게서 황후 지위와 시호인 고황후 칭호를 박탈하고 문제의 생모인 [[효문태후|박 씨]]를 유방의 정실부인으로 인정하여서 시호 고황후를 추증하였다.
 
==가계==
[[파일:고황후.png]]
 
[[분류:생년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