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 데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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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bendroth und Deppe.jpg|섬네일|퇴임년(1972)의 볼프강 아벤트로트와 프랑크 데페]]
 
1965년부터 1967년까지 독일사회주의학생동맹 전국대표단으로 활동했다. 이 활동을 통해 마부르크 대학교 정치학과 [[볼프강 아벤트로트]](Wolfgang Abendroth) 교수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게 되었고, 1965년부터 아벤트로트 교수의 학술조교로 일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에서 [[카를 마르크스맑스]](Karl Marx)의 초기저작과 상품과 물신주의 분석, [[죄르지 루카치]](György Lukács)의 사물화 분석, 호르크하이머의 권위주의 분석 등을 배웠지만, “이데올로기 비판”으로는 진보적 정치를 위한 공간을 확보하기가 어렵다고 느낀 반면, 아벤트로트 교수에게서는 [[마르크스 주의맑스주의]]에 대한 다른 접근, 즉 역사적 분석, 부르주아-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정치적 모순, 계급관계와 투쟁의 발전, 정체체제의 변화 등을 배움으로써, 정치적-실천적 함의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ref name="literaturkritik.de">[http://www.literaturkritik.de/public/rezension.php?rez_id=9489&ausgabe=200605 "마부르크 학파"의 (불)연속성에 대하여: 볼프강 아벤트로트의 삶과 저작에 대한 프랑크 데페와의 인터뷰 (2006년 4월 26일)]</ref> 1967년 사회주의센터(Das Sozialistische Zentrum)의 공동발기인이었다.
 
1968년 아벤트로트 교수의 지도 아래 [[루이 오귀스트 블랑키]](Louis Auguste Blanqui)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1년 교수자격심사논문(Habilitation)에 통과했다. 1968년부터 1971년까지 마부르크 대학교 사회학과 학술평의회(Akademischer Rat)에서 활동했다. 1972년 아벤트로트 교수의 후임으로 마부르크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에 취임했다. 보통 교수자격심사논문을 제출한 대학에서 교수직을 맡을 수 없으나, 이는 68혁명의 영향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데페를 비롯한 [[게오르크 퓔버트]](Georg Fülberth, 정치학과), [[디터 보리스]](Dieter Boris, 사회학과) 등 아벤트로트 교수의 제자들이 마부르크 대학교 교수로 취임하자, 마부르크는 독일 좌파이론의 중심지의 하나가 되었고, 부르주아 언론은 이를 "붉은 마부르크(Rotes Marburg)"라고 불렀다.<ref>[http://bloeser.blogspot.nl/2011/10/frank-deppe-zum-70.html "트럼펫 없이 째즈 없고, 노동자계급 없이 마르크스주의맑스주의 없다: 고희 맞은 정치학자 프랑크 데페" (Junge Welt, 2011년 9월 23일)]</ref>
 
이후 [[아벤트로트 학파]](Abendroth-Schule) 혹은 [[마부르크 학파]](Marburger Schule)의 일원으로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정치학과의 유럽공동체 연구그룹(Forschungsgruppe Europäische Gemeinschaften, FEG)(현재 유럽통합 연구그룹, Forschungsgruppe Europäische Integration, FEI)의 책임자였다. 1983년부터 1989년까지 [[마르크스주의연구소맑스주의연구소]](Das Institut für Marxistische Studien und Forschungen, IMSF) 학술자문단으로 활동했다. [[독일노조연합]](Deutscher Gewerkschaftsbund, DGB)의 [[한스 뵉클러 재단]](Hans-Böckler-Stiftung)과 [[로자 룩셈부르크 재단]](Rosa-Luxemburg-Stiftung)의 신임교수를 역임했고, [[아탁]](Attac) 학술자문위원이었다. 2006년 "맑스주의 이론의 위기와 갱신"에 대한 강연을 끝으로 정년퇴임했다.
 
퇴임 후에도 2011년까지 보리스 교수와 함께 마부르크 마르크주의연구회맑스주의연구회(Marxistischer Arbeitskreis)를 이끌었고, 《Z. 마르크주의의맑스주의의 갱신》(Z. Zeitschrift Marxistische Erneuerung) 편집위원으로 계속 활동하고 있다. 2007년 생애 처음으로 당에 직접 참여해 [[좌파당]](Die Linke) 건설에 일조했다. 2012년 로자 룩셈부르크 재단 대표단으로 선출됐다. 2013년 현재도 연구와 저술활동 및 특히 노동자단체와 노동조합에서의 대중강연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대표적인 제자로 노동사회학의 권위자인 [[클라우스 되레]](Klaus Dörre) [[예나 대학교]](Friedrich-Schiller-Universität Jena) 사회학과 교수와 유럽통합의 국제정치경제학의 권위자인 [[한스-위르겐 빌링]](Hans-Jürgen Bieling) [[튀빙엔 대학교]](Eberhard Karls Universität Tübingen) 정치학과 교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