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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효왕 유장려'''(齊孝王 劉將閭, ? ~ [[기원전 154년]])는 [[중국]] [[전한]]의 황족 · 제후왕이다. [[전한 고제]]의 손자며 제도혜왕 [[유비 (제도혜왕)|유비]]의 아들이다.
== 일대기 ==
문제 4년([[기원전 176년]]), 제북왕 [[유흥거]]가 반란을 일으켰다 주살된자살한 이듬해에, [[전한 문제|문제]]에게서 형제들과 함께 열후로 봉해져 양허후(楊虛侯)가 되었다.<ref name="s19">[[사마천]]: 《[[사기 (역사서)|사기]]》 권19 혜경간후자연표제7</ref><ref name="h15u">[[반고 (후한)|반고]]: 《[[한서]]》 권15상 왕자후표제3상</ref><ref name="h38">위와 같음, 권38 고오왕전제8</ref> 문제 12년([[기원전 168년]]), 전년 제문왕 [[유칙]]이 후사 없이 죽어 폐지된 제나라에 제도혜왕의 아들들을 나누어 봉하면서 제나라 왕이 되었다.<ref name="h17">사마천, 전게서, 권17 한흥이래제후왕연표제7</ref><ref name="h38"/>
 
[[전한 경제|경제]] 전3년([[기원전 154년]]), [[오초칠국의 난]]이 일어나자 교동왕 유웅거, 교서왕 유앙, 치천왕 유현, 제남왕 유벽광이 호응하고 제나라와도 함께하고자 했으나 의심하여 거부했다. 이 때문에 교서왕, 치천왕, 제남왕의 공격을 받아 서울 임치에서 포위당했다. 제효왕은 노 중대부를 보내 조정에 구원을 요청했다. 사세가 위급해지자 세 나라와 은밀히 함께하려 했으나 아직 약속이 정해지지 않은 차에 노 중대부가 돌아왔는데, 교서 · 치천 · 제남 연합군에 사로잡혀 조정이 이미 반란군에 굴복했다고 말하라는 협박을 받았음에도 조정에서 굳게 지키고 있으라고 한 말을 전하고 죽었다. 또 여러 신하들이 항복하지 말자고 했다. 때마침 오나라와 초나라를 무찌른 진압군의 대장 [[주아부]]와 조양이 와서 세 나라의 군대를 무찌르고 포위를 풀었다. 그런데 제효왕이 세 나라와 함께하려 했다는 말을 듣자 진압군은 제나라도 공격하려 했고, 제효왕은 두려워 약을 먹고 죽었다. 경제는 원래 제나라가 착하였고 협박에 못 이겨 가담한 것은 죄가 아니라 하여, 태자 유수(제의왕)에게 제왕을 계승하게 했다.<ref name="h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