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 전선 (제1차 세계 대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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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은 [[서부 전선 (제1차 세계 대전)|서부 전선]]에서는 결정적인 승리를 놓치고 말았지만 동부 전선에서는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프랑스-러시아 조약에 따르면,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니콜라스 2세]]의 [[러시아]]군은 동원령을 내린 지 16일 이내에 독일군을 공격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최초의 러시아군 부대가 국경을 넘어 동부 [[프러시아프로이센]]로 들어온 것은 동원 후 불과 8일 만인 [[8월 7일]]이었다.
 
러시아군은 두 갈래로 공격해 왔다. 파벨 칼로비치 레넨캄프 장군 휘하의 1개 군은 [[안게라프 강]] 동쪽으로 프러시아프로이센 국경을 넘었고, 알렉산드 바실리예비치 [[삼소노프]] 장군 휘하의 러시아군은 훨씬 남쪽에서 월경했다. 러시아군은 철저하게 요새화된 동(東) [[프러시아프로이센]]의 수도 [[쾨니히스베르크]] 남방에서 거대한 가위처럼 독일군을 협공할 계획이었다.
 
겁 많은 독일군 사령관 막스 폰 프리트비츠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했더라면 러시아군의 이 대담한 계획은 성공을 거두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쾨니히스베르크로 후퇴하거나 [[비스튤라 강]] 이동의 모든 영토를 아예 포기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몰트케와 [[프리트비츠]]의 유능한 작전 장교 막스 호프만 중령은 견해가 달랐다. [[8월 20일]] 몰트케는 프리트비츠를 해임하고, [[벨기에]]의 요새 공략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에리히 [[루덴도르프]] 장군을 급파, 동부 전선의 참모장에 임명했다. 그리고 그의 사령관으로 예비역에서 현역으로 복귀한 명성 높은 [[파울 폰 힌덴부르크]] 장군이 임명되었다. 두 사람이 새로운 임지에 부임한 것은 [[8월 23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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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이나 화력이나 전술 면에서 독일군의 상대가 되지 못한 삼소노프의 러시아 군대는 [[타넨베르크]] 근처에서 측면을 포위되어 참패했다. 10만 명 가까운 러시아군이 포로가 되고, 삼소노프는 자결했다.
 
1주일 뒤 서부 전선으로부터 막 도착한 증원 부대로 보강된 독일군은 레넨캄프를 국경 밖으로 몰아내고 [[마수리아 호 전투]]에서 수만 명을 더 포로로 잡았다. 이리하여 9월 중순쯤에는 동부 프러시아에프로이센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은 사라졌다.
 
한편 남쪽에서 러시아군은 갖춘 장비가 그들 자신보다 별반 나을 게 없는 적수를 만났다. 즉,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군대였던 것이다. 참모총장 콘라트 장군 휘하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은 그 동맹국인 독일이 갖추고 있는 능률적인 철도망과 고도로 훈련된 포병이 없었다. 8월 하순 러시아 국경을 넘은 콘라트군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키예프]]와 [[바르샤바]]를 잇는 철도를 향하여 진격하고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군의 예리한 반격에 밀려 남쪽 국경 밖으로 쫓겨난 그들은 [[갈리시아]] 깊숙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