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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림팀'''(美林-)은 [[1991년]] [[9월]]부터 [[1998년]] [[11월]]까지 [[대한민국 제6공화국|제6공화국]]과 [[문민정부]] 시절의 [[국가안전기획부]]가 운영하던 비밀 도청팀이었다. 미림팀은 안기부 차원의 정보수집 과학화 방침에 따라 [[1991년]] [[9월]]부터 운영되기 시작했다.<ref name="mirins">[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79&aid=0000049159 오정소 전 안기부 1차장 지시로 미림팀 재건] 노컷뉴스 2005.08.05</ref> [[1993년]] [[2월]] [[문민정부]] 출범 이후에도 계속 운영되었다. 미림팀은 그러나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1993년]] [[7월]] 조직개편과 함께 해체됐다.<ref name="mirins"/> 그러나 [[1994년]] [[6월]] 재조직되었다.
 
미림팀은 [[안기부]]에 의해 야당 인사 외에 정부 고위직 인사, 여당인 [[민주자유당]] 내의 반[[김영삼]] 세력, 재벌을 비롯한 각종 기업인 등 다양한 인사들에 대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미림팀의 도청정보 일부는 [[김영삼]]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정보는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와 [[이원종]]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 등의 실세에 보고돼 정치에 활용되었다.<ref name="daethong">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19&aid=0000123713 "미림팀 도청정보, 대통령에게도 보고"] MBN 2005.12.14 </ref> 미림팀을 운영한 [[안기부]] 직원 [[공운영]] 등은 정보를 [[오정소]] 당시 2국장 또는 [[김덕]] 안기부장 등에게 직접 보고하거나 [[이원종]] 정무수석, [[김현철]] 등에게 보고했다 한다. 일부는 [[대통령]] [[김영삼]]에게도 보고되었다.
 
미림팀의 광범위한 도청이 가능했던 것은 한정식집이나 호텔 음식점 등 주요인사들이 자주 찾는 업소의 지배인·종업원을 망원으로 포섭,활용했기 때문이었다.<ref name="dodochong">[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5&aid=0000228939 <nowiki>[</nowiki>‘2차 미림팀’ 수법 어떠했나<nowiki>]</nowiki> 3년5개월동안 5400여명 도청·사찰] 국민일보 2005.12.14</ref> 이들 식당, 호텔, 골프장, 룸살롱 등의 종업원들에게 [[안기부]] 직원들이 접근, 포섭하여 신뢰감이 쌓이면 도청, 녹음, 감청하는 방법을 직접 가르치거나 특수 요원을 파견하여 가르쳤다. 미림팀은 그 대가로 망원의 민형사상 문제,취직 문제 등을 해결해 주고 경제적 지원을 약속했다. 미림팀은 이들에게 도청실적에 따라 매달 20만∼70만원 정도를 지급했다.<ref name="dodochong"/> 미림팀이 각지에 심어놓은 정보망을 통해 여야 인사, 재벌, 반대 세력, 언론인 등 다양한 계층의 일거수 일투족이 [[청와대]]와 [[문민정부]] 실세에게 수시로 보고되었다. 이때의 일부 보고는 [[2005년]] [[7월]] 언론에도 공개되어 [[삼성 X파일 사건]]으로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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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림팀은 [[안기부]] 차원의 정보수집 과학화 방침에 따라 [[1991년]] [[9월]]부터 운영되었다. 공운영 등을 중심으로 5명의 인원으로 구성됐고 접객업소 근무자의 협조를 받아 주로 정치인과 측근들을 상대로 도,감청 작업을 벌였다.<ref name="mirins"/> 미림팀의 보고라인과 관련해 공씨가 국장이나 차장에게 직보하는 체제였다.<ref name="mirins"/> 그뒤 [[1993년]] [[2월]] [[문민정부]] 출범 이후에도 계속 운영되었다. 미림팀은 그러나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1993년]] [[7월]] 조직개편과 함께 해체됐다.<ref name="mirins"/> 당시 미림팀이 보관 중이던 40-50개의 불법 테이프도 소각 처리됐다.<ref name="mirins"/>
 
미림팀은 [[1994년]] [[2월]] [[오정소]] 국내정보 수집 담당국장의 지시에 의해 [[1994년]] [[6월]] 재구성됐다.<ref name="mirins"/> 이 때부터 미림팀은 정,관,재계 인사들에 대해 불법도청을 전개했던 것으로 밝혀졌다.<ref name="mirins"/> 미림팀의 팀원들은 각지의 호텔, 한정식, 룸살롱, 중국집, 일식집 등 다양한 곳의 직원들을 매수 또는 포섭하여 공작원으로 활용하였다. 이들은 [[안기부]]의 직원이 아니었지만 안기부 직원들의 접근과 지시에 의해 움직였다. 그리고 안기부 직원들은 각지의 호텔, 한정식, 룸살롱, 중국집, 일식집 직원들을 시켜서 도감청하였다. 이들은 하루 1,2개 분량의 테이프를 생산했고 중요 테이프는 일시, 장소, 대화자 이름이 명기된 라벨을 붙여 사무실 캐비넷에 보관해 왔다.<ref name="mirins"/>
 
[[1999년]] [[11월]] 당시 [[국정원]] [[천용택]] 원장은 감찰실장에게 불법도청 테이프 등을 회수하도록 지시했고 임동원 원장이 취임한 같은해 12월 전량 소각됐다.<ref name="mirins"/> [[1999년]] [[12월]] 공식 폐지되었지만 미림팀에서 불법으로 도감청한 테이프들의 일부는 외부로 유출되어 논란거리를 야기하였다.
 
미림 팀이 [[1960년대]] 중반 [[중앙정보부]]에 있던 수사팀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그에 의하면 '미림(美林) 특별 수사팀'은 [[1960년]]대 중반 [[중앙정보부]]가 주요 인사들의 동향 파악을 위해 운영하던 [[정보 수집]]팀의 별칭으로, 미림이란 팀명은 고급 술집의 마담 등을 [[정보원]]으로 활용한 데에서 비롯됐다고 한다.<ref name="jungj">[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21207000429&md=20121210003405_AS 비판이 두려운 권력…감시욕에서 탄생한 스캔들 메이커…미림팀·사직동팀] 위크앤드 2012.12.07</ref>
 
=== 재조직 배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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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안기부 미림팀은 대선자금과 관련한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과 [[이학수]] 당시 [[삼성그룹]] 비서실장과의 대화내용을 3차례에 걸쳐 도청하게 된다. 서울 S호텔에서 이루어진 미팅의 일자와 대화내용은 [[1997년]] [[4월 7일]],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 주자들에 관한 지원방안에 관한 대화이며, 같은 해 [[9월 9일]]과 [[10월 17일]]에는 여야 대선후보들에 대한 자금지원방안이었다.
 
미림팀의 존재가 일반에 존재가 드러난 것은 [[2005년]] [[안기부 X파일 사건 ]] 때문이었다. [[1994년]] 2차 미림팀이 재건된 이후 유력 인사들을 상대로 불법 도청을 시도한 내용이 만천하에 드러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것이다.<ref name="jungj"/>
 
== 조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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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림(美林)팀은 1960년대 중반 [[중앙정보부]]가 정치인 등 주요 인사들의 동향 파악을 위해 운영하던 정보 수집팀의 별칭으로 미림이라는 팀명은 고급 술집의 마담 등을 협조자(속칭 '[[망원]]')로 활용한 데서 비롯됐다. 내부적으로는 '여론조사팀'이 공식 명칭이었다. 그러나 [[안기부]]내의 직원들 중에도 '여론조사팀'의 존재 여부를 모르는 직원들도 존재하였다.
 
[[안기부]]는 [[노태우 정부]] 말인 [[1991년]] 9월 공운영을 팀장으로 조직을 정비하면서 [[도청장비]]를 이용한 [[첩보수집]]에 들어갔으나 대통령 선거 직전인 [[1992년]] 12월 보안 문제 등 때문에 활동이 중단되었다가 이어 [[문민정부]] 출범 이후인 [[1994년]] 6월 2차 미림팀으로 재건돼 [[1997년]] 11월까지 활동했다.<ref name="miriness"> {{뉴스 인용 | 제목 = 미림팀 도청 자료, 대통령에게도 보고 | url =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765695 | 언론사 = 중앙일보 | 기자 = 조강수 | 쪽 = | 작성일자 = 2005.12.15 | 수정일자 = 2006.05.11 }} </ref> [[검찰]]은 2차 미림팀이 활동한 3년 5개월 동안 하루 1개, 일주일에 5개씩 모두 1000여 개의 불법 도청 테이프가 생산된 것으로 추산했다. 미림팀의 도청 대상은 여야 최고위 [[정치인]], 언론사주, [[청와대]] 수석, [[국무총리]], [[보안사령관]], [[참모총장]] 등이 망라되었다.<ref name="miriness"/>
 
=== 운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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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감청 대상 ===
[[안기부]]의 미림팀이나 국정원이 불법감청 주요 타깃으로 삼은 대상은 정치인과 언론인 등 주요 인사가 망라돼 있다.<ref name="dochchong">[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2&aid=0000136016 "미림팀" 술집 여주인등 망원 고용…녹음기 설치훈련] 세계일보 2005.12.14</ref> 미림팀의 경우 여야 정치인, 언론사 사주 등 언론인, 청와대 수석과 [[국무총리]], 보안사령관과 참모총장, 심지어 대통령 아들까지 도청대상이 됐다. 정치인이 283명으로 가장 많았고 공무원, 언론계, 재계, 법조계, 학계 순이었다.<ref name="dochchong"/> 야당 인사 외에 정부 고위직 인사, 여당인 [[민주자유당]] 내의 반[[김영삼]] 세력, 재벌을 비롯한 각종 기업인 등 다양한 인사들이 그 대상이었다.
 
도청 테이프 274개에 들어 있는 최고위층 인사 가운데는 유력 정치인들이 가장 많이 포함됐다. 야당에서는 김대중(金大中) 국민회의 총재와 김종필(金鍾泌) 자민련 총재가 집중 감시 대상이었다. 미림팀은 [[1997년]] [[9월]], [[10월]] 김대중 김종필 전 총재가 ‘DJP 연합’을 하기 위해 회동한 장소에서 주로 도청을 했다.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에서는 [[이회창]](李會昌) 후보, 이 총재와 대선 전 연합한 조순(趙淳) 전 민주당 총재, 신한국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한 이인제(李仁濟) 후보,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중진 의원 등이 도청 대상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의 국정 농단을 비판한 여당 중진 의원 상당수도 도청됐다.<ref name="diorais">[http://news.donga.com/3/all/20051207/8254443/1 <nowiki>[</nowiki>미림팀 도청 명단 파악<nowiki>]</nowiki> 최고위층 표적감시…수년간 도청] 동아일보 2005.12.07</ref>
 
언론계의 고위 인사들도 포함됐다. 국내 중앙일간지 사주 4, 5명과 방송사 사장 등 10여 명이 주된 도청 대상이었다. 재계 인사로는 삼성, 현대, LG, 대우, 등 주요 재벌 총수들이 도청당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특히 정권과 국가 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위 4, 5개 재벌 총수가 집중 도청당한 것으로 알려졌다.<ref name="diorais"/> [[2005년]] [[7월]] 무렵 [[검찰]] 당국의 한 관계자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도청 테이프 274개에 들어 있는 인사는 ‘고위층 중의 고위층’으로 한정돼 있다”며 “정부 부처 장관은 명함을 내밀기도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ref name="diorais"/> 공운영은 [[2005년]] [[7월]] “([[김영삼]]) [[대통령]]을 제외한 최고위층 인사를 모두 도청했으며 동아 조선일보 등 신문사 사주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밝혔다.<ref name="diorais"/>
 
한편 [[김현철]] 자신도 미림팀의 도청대상이 되었다.<ref name="dodochong"/> 미림팀의 사찰대상은 연인원이 5000명을 넘었고,정치권·언론·검찰·법원 등 거의 모든 유력인사들이 미림팀의 도청망에 걸려들었다.<ref name="dodochong"/> 도청 대상은 여당과 정부 인사, 당시 총리, 여당 후보자, 군사정권 출신 인사들과 당시 군출신 인사들의 재판을 담당하는 판사, 검사, 변호사들에게도 적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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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사 정권 인사 감시 ===
[[전두환]] [[노태우]] 당시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 문제도 도감청의 대상이었다.<ref name="diorais"/> 94년 [[이기택]] 총재의 [[민주당]] 등 야당 외에도 [[김동길]] 대표의 신민당, [[이종찬]] 대표의 [[새한국당]]의 야권통합 움직임도 22건을 차지했다.<ref name="doemei"/> 95년의 첫 지방자치단체 선거와 관련해 각 당의 자치단체장 후보들의 동향은 19건, 95년 한 정당 대표(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로 추정)의 민자당 탈당 동향이 13건, 95년 [[새정치국민회의|국민회의]] 창당 관련 움직임이 8건이었다. <ref name="doemei"/>
 
[[김영삼]] [[문민정부]]의 ‘역사 바로세우기’로 시작된 [[12·12 사태]], [[5·18]] 사건 수사·공판 과정 및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과 관련한 동향도 열몇 건씩 수집된 것으로 밝혀졌다. 수사에 참여한 검사나 재판을 주재한 판사도 도청됐을 가능성<ref name="doemei"/> 도 존재하고 있다. 도청은 여당 인사, 야당 인사 외에 군사정권 출신 인사들 및 당시 재판중이던 신군부 사건 관련자와 사건 관련 판,[[검사]]들의 일거수일투족까지 담겨 있었다.
 
== 정보 활용 ==
YS정부 시절 실세들은 경쟁적으로 도청정보를 보고받았고, 이를 자신의 세과시용으로 적극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ref name="dodochong"/> 현철씨와 이 전 수석은 '미림팀 도청보고서'를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요한 도구로 활용했다.<ref name="dodochong"/> 이 과정에서 야당 인사는 물론이고 여당 내의 반[[김영삼]]세력에 대한 압력, 통제로 활용되었다. 일부 인사들돠 사회지도층들의 부정축재와 뇌물수수, 이권개입, 폭력 등은 [[문민정부]] 실세들에 의해 약점으로 잡혀 활용되었다.
 
훗날 수사 과정에서 전 수석 [[이원종]]은 "현철씨에게 가는 정보를 보면 안기부 감청정보가 있는데 나에게는 오지 않아 섭섭하다"는 얘기를 [[박일룡]] 전 차장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도청정보에서 '급수'가 있었던 셈이다. 검찰은 YS도 도청자료를 보고받았다는 정황을 확인했으나 구체적으로 어느정도 깊게 알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고 있다. <ref name="dodochong"/>
 
[[2005년]] 당시 [[이원종]] 전 수석은 [[검찰]]조사에서 "현철씨가 나보다 먼저 정국상황을 파악하는 일이 있었고, [[정치]]인들의 대화내용을 정리한 보고서를 보내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ref name="dodochong"/> 한편 미림팀의 도청은 [[김영삼]]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던 [[이회창]] 등에게도 불이익이 가해졌다. [[이회창]]을 지지하는 모임에 다녀온 [[신한국당]] 내 모 인사들은 [[김영삼]]의 측근들 혹은 [[이원종]], [[김현철]] 등으로부터 추궁당하기도 했다.
 
미림팀의 도청 정보는 정치에 광범위하게 활용됐다. [[2005년]] [[12월 14일]] [[검찰]]의 조사 보고에 의하면 이원종 수석은 96년 12월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의 지지세력 확충을 위한 모임의 대화를 미림팀이 도청한 내용을 보고받고 백아무개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벌써 움직이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다 한다.<ref name="doors"/> 서모 당시 [[국회의원]]은 [[1996년]] [[이회창]] 총재 지지모임을 가진 뒤 참석자들로부터 "[[이원종]]과 [[김현철]]로부터 은근히 나무라는 전화가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털어놨다. 정권 실세들이 도청보고서를 통해 정치권 동향을 거의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정치권에 압력을 넣었다.<ref name="dodochong"/>
 
== 미림팀 운영 과정 ==
=== 미림팀 운영 관련 ===
[[안기부]]의 전직 직원 일부의 증언을 통해 도청 의혹이 제기되었다. [[1994년]] 초 인천지부장으로 있다 대공정책실장으로 부임한 뒤 [[미림팀]] 재건을 주도했다는 것이 보좌관을 지낸 전직 국정원 직원 김기삼씨와 전 미림팀장 공씨 등의 공통된 전언이다.<ref name="docong">[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5&aid=0000214110 <nowiki>[</nowiki>도청테이프 파문 확산<nowiki>]</nowiki> 오정소…‘김현철 개입’ 규명 열쇠] 국민일보 2005.08.03</ref> 전 직원 김기삼과 도청팀장 공운영 등에 의하면 당시 그는 [[미림팀]]을미림팀을 운영하며 그 내용을 [[김현철]]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공씨에 의하면 그는 매일 저녁 팀원 2,3명과 함께 한정식집·술집 등으로 작업을 나가 정계·재계·언론계 인사들의 대화내용을 현장에서 도청하는 작업을 지휘했다 한다.<ref name="mirin">[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sectionId=1010030000&subSectionId=1010030000&newsId=20050726000019 <nowiki>[</nowiki>안기부 불법도청 테이프 파문<nowiki>]</nowiki> 공 미림팀장·김기삼씨는 누구]</ref>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녹취록은 곧바로 오정소 실장에게 보고했다. 이는 다시 이원종 김현철씨 등 권력 실세들에게 전달됐다고 한다.<ref name="mirin"/>
 
=== 안기부의 지원 ===
[[2005년]] [[12월 14일]]의 [[대한민국 검찰]]의 최종 조사 결과 [[안기부]]에서 이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안기부]]는 서울 시내 주요 전화국의 회선을 끌어다가 유선 전화도 불법 감청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ref name="docsaci">[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123526 미림팀 '전방위 도청'…테이프만 1000여개] 노컷뉴스 2005.12.14</ref> 일부 전화망, 통신망 등도 활용되었다.
 
또 이들이 확보한 도청 정보는 현장 도청팀인 미림팀에도 전달돼 도청기 설치 장소 파악에 이용됐다.<ref name="docsaci"/>
 
=== 보고 라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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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림팀 재건 폭로 ==
[[2005년]] [[7월]] 안기부 직원인 김기삼 등에 의해 미림팀을 재건한 부분이 폭로되었다. [[김영삼]] 정부시절 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특수도청팀의 실체가 드러났다. 미림팀의 존재를 증언한 전 안기부 직원 김기삼씨는 [[7월 22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나와 당시 활동내용을 전했다.<ref name="mijae">[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sectionId=1010030000&subSectionId=1010030000&newsId=20050722000012 <nowiki>[</nowiki>안기부 불법도청 테이프 파문<nowiki>]</nowiki> 내용과 유출 경위] 부산일보 2005.07.22</ref> 김기삼에 의하면 [[1994년]] 오정소 신임 대공정책실장이 문민정부 출범 이후 활동이 없던 미림팀을 재조직, 공 모씨를 팀장으로 미림팀을 운영했다고 밝혔다. 미림팀은 매일 저녁 장소를 정해 불법도청을 했으며 도청 테이프의 내용을 오정소 실장에게 서면보고했다<ref name="mirim">[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112&aid=0000011595 전 안기부 직원, 불법도청 진상 털어놔]</ref> 는 것이다. [[김기삼]]은 이 폭로를 한 후 몇차례 언론사들에 추가로 밝혔다. 그러나 협박 또는 체포에 시달렸다.
 
[[김기삼]]에 의하면 '미림자료는 매우 폭발력있는 것이어서 오 실장이 직접 관리했으며 당시 안기부장도 거치지 않고 청와대에 직접 보고했다.<ref name="mirim"/>' 한다. 김기삼은 "[[안기부]] 인천지부장으로 있던 오정소 실장이 94년초 대공정책실장으로 부임하면서 미림팀을 재조직,공모라는 사람을 팀장으로 팀원을 2~3명 꾸렸다"며 "당시 매일 한군데 도청작업을 나갔다"고 밝혔다.<ref name="mijae"/> 그는 또 "그 내용은 당시 [[김덕]] [[안기부|안기부장]]에게는 보고하지 않고 오 실장에게만 보고했으며 그가 내용을 선별,청와대에 보고를 했다"며 "팀 자체에 대해 김 부장은 몰랐다고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ref name="mij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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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 파일 사건 ===
{{참고|안기부 X파일 사건}}
[[1995년]] 당시부터 일부 [[안기부]] 퇴직자들이 테이프 등으로 기업인 혹은 반대파 인사를 협박하는 일이 있어 물의를 빚어왔다. 그런데 [[1998년]] 공운영은 [[국정원]]에서 면직(免職)당하게 된다. 이에 동료 임모를 통해 소개받은 재미교포 박인회에게 문제의 도청테이프를 전달한다.(전달한 동기에 대해서는 당사자간 의견이 갈린다)<ref name="inhoi"> {{뉴스 인용 | 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47&aid=0000067812 | 출판사 = 오마이뉴스 | 제목 = <nowiki>[</nowiki>일지<nowiki>]</nowiki> 안기부 '미림팀' 결성에서 검찰 수사까지 | 작성 일자 = 2005-07-28}} </ref> 공운영이 박인회에게 건넨 테이프들 중에는 일부 재벌과 정치인, 정경유착과 재벌, 정치인들의 축재, 뇌물, 접대 등 다양한 정보들이 담겨 있었다.
 
한편 안기부 퇴직자들이 테이프로 기업인들을 협박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를 이용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공운영에게 일부 테이프를 건네받은 재미교포 박인회는 [[1999년]] [[이학수]] 당시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 등 삼성 관계자들을 수차례 만나 거액의 금품을 요구하였으며, [[김대중 정권]]의 실세였던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에게도 녹취록을 전달한다.<ref name="inhoi"/> [[삼성]]은 박인회의 거액의 금품 제의를 모두 거절하였다. 삼성의 제보를 받은 [[천용택]] 당시 [[대한민국 국가정보원|국정원장]]은 [[국정원]] 감찰실에 X파일 회수를 지시하기도 하였다.<ref name="in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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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 X파일 폭로 ===
[[2005년]] [[1월 12일]] 양문석 [[EBS]]정책위원은 ‘이상호기자 미국취재출장 그것이 궁금하다’라는 칼럼을 [[경향신문]]에 기고하였다<ref>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772</ref>. 이 글에서 필자는 이상호 기자가 취재하는 내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취재내용에 대해서 [[MBC]]가 이 사안의 취재 및 보도권을 보장해줄 것을 주장하였다. [[2005년]] [[1월 13일]] 이상호기자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출장이 정언유착에 관한 내용임을 언급하였고, [[MBC]]는 특별취재팀을 가동하여 보충취재에 나선다. 이때부터 ‘이상호 기자가 수구언론의 결정적인 비리를 포착했다’, ‘이상호 기자가 목숨보다 소중한 것을 취재했다’는 소문이 언론가에 돌기 시작한다. [[2005년]] [[6월 8일]], 양문석 [[EBS]]정책위원은 다시 [[데일리 서프라이즈]]에 ‘MBC와 이상호, 이제는 말할 때’라는 칼럼을 기고한다.
 
[[2005년]] [[6월 16일]] [[MBC]] 보도국 간부회의는 삼성 X파일 보도를 불허한다. 법률 자문 결과 [[통신비밀보호법]]에 저촉되어 보도가 불가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결정에 반대하는 [[MBC]][[노조]] 민주방송실천위원회는 강성주 당시 보도국장에게 보도불가에 대한 항의서한을 전달하였고 MBC기자회에서도 다음날 보도국장에게 구두로 항의하였다. 한편 일부 기자들을 통하여 이 사건의 존재가 새어나가 2005년 7월 21일, [[조선일보]]는 [[안기부]]의 극비조직이었던 ‘미림팀’의 존재에 관하여 먼저 보도한다.<ref>http://www.chosun.com/politics/news/200507/200507210010.html</ref> 이를 의식한 [[MBC]]는 마침내 7월 22일, [[MBC뉴스데스크]]에서 삼성 X파일을 집중보도한다. 보도의 내용은 [[삼성그룹]]이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을 통해 97년 대선에서 약 100억원의 대선자금을 제공하였으며, 전ㆍ현직 [[검사]]들에게 수천에서 수억에 달하는 뇌물을 전달했다는 내용이었다.
 
=== 삼성 X파일 폭로 이후 ===
방송국 내부사정으로 이 사건에 대한 취재가 중단되었다가 이상호 기자가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남긴 <기자의 아내>라는 글이 [[한겨레]]를 통해 보도된 [[2005년]] 2월경부터 언론계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MBC]]는 도청자료의 출처가 명확해지고 [[안기부]]가 도청을 하여 작성하였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인정되지 않는 한 보도가 불가능 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던 중 인터넷 언론매체인 ‘[[데일리 서프라이즈]]’가 [[2005년]] [[6월 8일]] ‘MBC와 이상호 기자는 침묵을 깰 때’라는 기사를 게재함으로써 ‘x파일’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으며, 그 후 [[7월 21일]] [[조선일보]] 및 [[KBS]]가 안기부 도청실태와 X파일의 대강의 내용을 보도하자 [[MBC]]도 내부적으로 이를 보도하기로 결정하였다.
 
사건 이후 미림팀의 각종 정치, 언론, 관계, 여야 인사 도청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안기부]]의 불법 도감청 문제에서 [[삼성그룹]]의 운영 상 부조리와 비자금 문제로 주제가 바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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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청 테이프 압수 ==
[[2005년]] [[7월 26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삼성 X파일에 대한 [[특검]]을 요구한다. 하지만 특검을 둘러싼 여야 각당의 입장차이와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X파일 특검법안은 결국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였다. [[검찰]]은 X파일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에 배당하였으며, 홍석현 주미대사가 X파일 파문의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하였다. 같은 날 전 미림팀장 공운영은 [[경기도]] [[분당]]의 자택에서 딸을 통해 기자들을 불러모은 뒤, A4 13장 분량의 친필 자술서를 전달한다. 그리고 당일 오후 6시 15분경, 자택에서 복부에 4차례의 자해를 시도하였다. 공운영은 자해 직후 발견되어 [[분당]]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긴급수술을 받아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ref> {{뉴스 인용 | url =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05072620570856804&outlink=1 | 출판사 = 머니투데이 | 제목 = 안기부 '미림팀' 팀장 공운영씨 자해(종합) | 작성 일자 = 2005.07.26}} </ref> 결국 [[대검찰청]]은 [[서울지방검찰청]]에 지시하여 테이프들을 압수한다. 공운영, 박인희 외에도 미림팀 조직에 관여했던 [[안기부]] 전직 직원들 역시 압수수색대상이 되었고 도청테이프는 1천여 개가 발견되었다.
 
압수된 도청테이프에 등장하는 도청 피해자는 646명이었고, 내용은 대선 동향과 정당활동 등 정치권과 관련된 내용이 가장 많았던 것으로 확인됐디.<ref name="daethong"/> 누군가에 의해 MBC 방송국과 언론에 테이프가 유포되었는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테이프의 존재와 일부 내용을 보도한 언론사와 방송사들에게는 압력이 가해져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다. 검찰은 불법도청의 결과물임을 알고도 보도한 것은 실정법 위반이라며 MBC 이상호 기자와 월간조선 김연광 편집장을 불구속 기소했다.<ref name="daethong"/> 첫 유출 이후 1만여 건의 녹음 테이프들이 돌아다녔고, 테이프들은 대부분 압수되었다. 나중에는 공운영 팀장도 일부 내용을 유출시켰다. 공운영 전 미림팀장이 유출한 도청테이프 274개에는 정치인 273명과 고위 공직작 84명 등 주요인사 646명이 도청됐고, 내용별로는 대통령 선거 관련 동향과 대책과 정당활동에 관한 사항이 300여건으로 가장 많았다.<ref name="docsa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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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보고 논란 ===
미림팀이 입수한 정보가 어느 선까지 올라갔느냐에 대한 것도 수사 당시 쟁점이 되었다. 미림팀이 작성한 보고서가 누구 선까지 도달했는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김영삼]]의 측근인 [[박종웅]]은 [[2005년]] [[7월 22일]] '도청에 대해서는 안기부에서 한 일이라 사실 여부를 알 수 없다"면서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YS는 그런 보고를 받지도 않았고 받으려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라고 연계성을 부인했다.<ref name="julsim"/> 그러나 [[서울중앙지검|서울지검]]의 수사 결과 [[안기부]] 도청조직 미림팀의 불법도청 내용은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되었다. 다만 보고서는 첩보를 종합한 정제된 형태로, 대통령은 도청에 의한 자료인지 인식할 수 없었다는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불법 정보가 정치 권력의 최상부에서 활용됐다는 것만은 확인된 셈이었다.<ref name="daethong"/>
 
[[안기부]]에서 획득한 이 정보는 [[김영삼]] [[대통령]] 외에도 [[이원종]]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과 [[김현철]], 일부 [[김영삼]]의 측근들에게로도 흘러들어갔다. 이 정보는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와 이원종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 등의 실세에 보고돼 정치에 활용되었다.<ref name="daethong"/> 수사 결과 이들은 불법 정보라는 것은 제외하고 [[김영삼]]에게 보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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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부터 [[1996년]]까지 안기부가 사찰, 도청한 내용 중에는 당시 [[문민정부]]의 부패에 관련된 내용이 들어 있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도청내용에 명절 떡값제공 리스트도 포함돼 있으며 리스트에는 정치인 뿐 아니라 전·현 검찰 고위관계자들도 들어있다고 한다.<ref name="mijae"/> 도청 내용 중에는 일부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 법조인들의 추악한 사생활도 담겨 있어서 정보가 알려질까봐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당시 [[미림팀]]을미림팀을 운영하던 공씨는 정권이 바뀐 98년초 직권면직 당했다.<ref name="sosongs">[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sectionId=1010030000&subSectionId=1010030000&newsId=20050726000019 <nowiki>[</nowiki>안기부 불법도청 테이프 파문<nowiki>]</nowiki> 공 미림팀장·김기삼씨는 누구] 부산일보 2005.07.26</ref> 공씨는 소송을 제기했고,복직 결정을 받고는 곧바로 명예퇴직했다.<ref name="sosongs"/> 이후 공운영 등이 취득한 비밀의 민감성을 감안해 안기부는 그후에도 오랫동안 그를 관리하였다. 언론에 의하면 [[2005년]] 무렵까지도 그를 특별관리 대상으로 분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f name="sosongs"/> [[안기부]]의 불법 도감청을 폭로한 다른 직원인 [[김기삼]]은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직후 비행기편으로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 추가 자료 존재 의혹과 별도의 도청팀 운영 의혹 ===
[[2005년]] [[11월 22일]] [[열린우리당]] [[최재천]]에 의해 미림팀 이외에도 [[안기부]]가 별도의 도청 조직을 활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2005년]] [[11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개혁을 위한 제2차 공청회’에서 “[[문민정부]] 시절, 미림팀과는 별개의 안기부 조직이 유선전화에 대한 조직적인 도청을 자행한 사실이 최근 검찰수사 결과 확인됐다.”고 주장했다.<ref name="gongchi">[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0066851 “미림팀외 별도 도청조직 있었다”] 서울신문 2005.11.23</ref> 최 의원은 “KT의 협조하에 일주일에 2∼3차례 (KT에)요청을 했고 한 번에 수십 건까지 넣어서 유선전화 도청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미림팀 외에도 별도의 도청 조직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ref name="gongchi"/>
 
또, [[최재천]]은 미림팀의 불법 도감청을 강력 규탄했다.최 의원은 “공씨의 도청은 특정 목적이나 특정 장소, 인물, 대화를 녹음한 것이기 때문에 막연한 도청보다 더 위험하다.”며 “이런 부분에 대해 검찰이, 그리고 국정원의 수사협조가 형평성 시비가 일지 않도록 잘 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최 의원은 또 “공운영(미림)팀이 출장을 나가 도청한 횟수가 550회를 넘어선 것으로 검찰 등에서 확인됐다.”고 말했다.<ref name="gongchi"/> 그는 그밖에도 많은 도청자료가 있으리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최재천]]에 의하면 “550여회 출장 갔다면 테이프가 몇개나 되겠느냐.”면서 “테이프가 274개가 전부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더 많을 가능성이 있다.<ref name="gongchi"/>”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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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 도청사건과의 비교 ==
미림팀의 도청은 [[국가정보원 불법감청]]과 방식만 달랐을 뿐 ‘대통령만 빼고 주요 인사들은 대부분 도청했다’는 점이나 도청으로 얻은 정보가 윗선에 보고된 과정에서 적잖은 유사점을 보여줬다. 하지만 도청 정보가 외부로 유출된 흔적 등에선 차이점을 보였다.<ref name="dochchong"/>
 
[[안기부]]와 [[국정원]]이 수집한 도청 정보를 유통하는 체계도 매우 흡사했다.<ref name="dochchong"/> 안기부의 경우 도청 시작은 과학보안국이 도청 대상자 명단과 회합 장소 등을 수집하는데서 출발한다. 이를 총괄하는 4국장에게 서면 또는 내부 [[통신망]]을 통해 회합 장소를 알려 주면 미림을 총괄하는 국장이나 과장이 미림팀장인 공운영에게 [[도청]]을 지시한다.<ref name="dochchong"/> 이후 미림팀이 [[도청]]을 통해 얻은 정보는 국장이 보고서의 내용에 따라 배포선을 정한 후 보고서를 만들어 밀봉, 'M보고'라는 별칭으로 [[안기부]]장 [[비서]]실, 국내담당 차장 보좌관실 등에 배포된다.<ref name="dochchong"/>
 
국정원 역시 도청 정보를 '통신첩보'라는 제목으로 밀봉해서 A·B·C급으로 구분한 뒤 국정원장이나 차장에게 배포한 것으로 밝혀진 만큼 사실상 거의 동일한 셈이다. 하지만 이번 검찰 수사를 통해 미림팀의 도청 정보가 보고 과정에서 외부로 유출된 정황은 포착된 데 반해 [[국정원]]의 불법[[감청]]으로 얻은 정보가 정치권 등에 빠져나간 단서는 잡히지 않았다.<ref name="dochc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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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 [[박창수 (1960년)|박창수]]
* [[대한민국 제6공화국|제6공화국]]
* [[문민정부]]
* [[김영삼]]